간호사의 골수검체 채취, 진료 보조와 진료행위의 경계 재조명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지난 12일 간호사의 골막 천자(골수 검체 채취)가 의사의 독점적 의료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하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3도10286 판결)
이번 판결은 간호사가 일정 자격과 숙련도를 갖추었다면 진료 보조의 범위 내에서 골수검체 채취를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이목이 쏠린다.
전문간호사의 골막 천자
이번 사건은 2018년 서울아산병원을 운영하는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전문간호사가 환자의 골수를 채취한 사실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골막 천자를 간호사가 수행한 것은 무면허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며 법적 조치를 요구했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재판에 넘겼다.
골막 천자는 주사 바늘을 이용해 골막을 뚫고 골수강에서 골수를 채취하거나 조직을 생검하는 침습적 의료 행위로, 종양성 질환이나 혈액 질환의 진단에 필요한 검체를 얻는 과정이다.
피고 측은 전문간호사가 이 행위를 의사의 지시 및 감독 아래 수행했기 때문에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이를 무면허 진료로 간주해야 한다고 맞섰다.
무죄에서 유죄, 그리고 다시 무죄로
1심 법원은 간호사가 수행한 골막 천자가 의사의 지시와 감독 아래 이루어졌고, 의료법상 의사가 직접 행해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 법원은 “골막 천자는 의사가 직접 수행해야 할 진료행위에 해당하며, 간호사가 이를 수행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 골막 천자는 침습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으며 검사 과정에서 해부학적 차이가 크지 않아 일정한 자격과 숙련도를 갖춘 간호사라면 수행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또한, “골막 천자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특별히 높은 위험이 없는 한, 의사가 현장에 입회하지 않아도 일반적인 지도·감독만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구체적 판단 근거
대법원은 골막 천자가 반드시 의사만이 수행해야 할 의료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판결의 주요 근거는 간호사의 전문성과 골막 천자의 성격, 그리고 의료 환경 변화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에서 도출됐다.
우선, 대법원은 골막 천자는 의사가 수행하는 진료행위 중에서도 핵심적이거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보조적 과정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는 진단·치료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위험성을 가진 절차로, 정형화된 매뉴얼에 따라 수행될 경우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일정한 자격과 숙련도를 갖춘 간호사가 이 행위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전문간호사로서 관련 교육과 훈련을 받은 경우, 해부학적 지식과 기술적 숙련을 바탕으로 골막 천자를 시행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의료 환경 변화와 역할 분담의 필요성도 고려됐다. 의료 현장에서 의사의 진료 업무를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환자들에게 적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간호사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 것. 특히, 감독을 전제로 한 간호사의 골막 천자는 의료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면서도 의료 현장의 부담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이에 환자의 상태와 의료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간호사의 골막 천자가 의료법상 진료 보조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병원의사협의회의 반발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즉각적으로 강한 반발을 표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은 간호사가 의사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길 위험이 있다”며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의료법의 근간을 흔드는 판결로, 엄중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역시 “침습적 의료 행위는 의사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수행해야 한다”며,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간호조무사나 비의료인에게까지 의료 행위를 허용하는 위험한 논리를 낳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진료 보조의 새로운 기준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진료 보조와 진료행위의 경계 사이의 중요한 법적 기준을 제시했다. 간호사의 진료 보조는 의사의 전적인 입회 없이도 자질과 숙련도, 환자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또한, 의료 현장에서 간호사와 의사의 역할 분담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간호사의 역할 확대에 새로운 길을 열어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발과 국민 건강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만큼, 향후 유사한 판례와 정책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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