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북삼성병원 연구팀이 성인 남녀 9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비타민C 섭취량과 우울 증상 발생 위험도 사이의 관련성을 평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AI 제작 이미지
비타민C와 우울증, 비타민C 섭취량과 우울 증상 발생 위험: 한국인 9만 명 대상 장기 추적 연구 결과 분석
최근 몇 년간, 아스코르브산으로 알려진 비타민C가 신체의 항산화 작용을 넘어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어려움 해소에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학계와 대중 사이에서 확산됐다. 특히 일부 해외에서 진행된 소규모 실험이나 동물 연구에서 비타민C가 기분 장애를 호전시키는 데 긍정적인 이점을 보였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많은 이들이 정신 건강 개선을 목적으로 비타민C 보충제를 복용하는 경향이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광범위한 기대와는 상반되는 대규모 임상 연구 결과가 국내에서 발표돼 주목받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건강한 성인 남녀 약 9만 명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비타민C 섭취와 우울 증상 발생 위험 간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두 요소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단편적이거나 소규모였던 해외 보고들과 달리, 한국인 집단을 대상으로 장기간 추적 관찰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신뢰도를 높였다. 국내 대형 의료기관 소속 교수팀은 식이를 통한 비타민C 공급 수준이나 영양제 형태의 보충 여부와 관계없이, 비타민C 섭취가 우울 증상 발생 위험을 유의미하게 낮추는 과학적 뒷받침을 찾지 못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해외 소규모 연구가 촉발한 비타민C 효능 논쟁
비타민C가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주장은 주로 해외에서 수행된 기초 연구나 제한적인 임상 실험에서 비롯됐다. 이들 연구는 비타민C가 강력한 항산화 물질로서 뇌의 산화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신경 전달 물질의 합성에 관여함으로써 정서적 불안정 상태를 완화할 수 있다는 기전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일부 동물 모델 실험에서는 비타민C 투여가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우울증과 유사한 행동 변화를 개선하는 효과를 보였다고 보고됐다.
이러한 초기 연구 결과들은 비타민C가 정신과적 질환의 보조 치료제로 활용될 가능성을 시사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들이 대부분 실험실 환경이나 소규모 집단에 국한된 것이었으며, 한국인과 같은 특정 인종 집단을 대상으로 장기간의 임상적 유효성을 검증한 사례는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규모 코호트 연구의 설계와 방법론
이번 연구는 강북삼성병원 서울건진센터의 박성근, 정주영 교수팀이 주도했으며,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건강검진을 받은 총 9만 1113명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 시작 시점에 이미 우울 증상이 없는 건강한 참가자들을 선별하여, 비타민C 섭취 수준에 따른 장기적인 우울 증상 발생 위험을 평가하는 전향적 코호트 설계가 적용됐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작성한 식품 빈도 설문지를 활용해 식사를 통한 비타민C 섭취량을 정밀하게 측정했고, 이를 기준으로 섭취량이 가장 낮은 그룹부터 가장 높은 그룹까지 네 개의 사분위 그룹으로 분류했다.
이후 약 5.9년 동안 이들을 추적 관찰하며, 참가자들의 우울증 척도(CES-D, Center for Epidemiologic Studies Depression Scale) 점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우울 증상의 발생 위험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이처럼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섭취량과 발병률을 분석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중요한 접근 방식이었다.

비타민C 섭취 수준별 우울 증상 발생 위험 분석 결과
5.9년의 추적 기간 동안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구팀은 비타민C 섭취량이 높은 그룹이 낮은 그룹에 비해 우울 증상 발생 위험이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과학적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 식사를 통해 비타민C를 가장 많이 공급받는 그룹과 가장 적게 공급받는 그룹 간에 우울 증상 발병률 차이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식이를 통한 섭취 외에 별도로 비타민C 영양 보충제를 복용하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도, 보충제 복용 여부가 우울 증상 발생 위험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았다. 이는 비타민C가 정신 건강에 직접적인 예방 효과를 제공할 것이라는 대중의 기대와는 배치되는 결과였다. 이 연구 결과는 비타민C의 섭취 수준이 정서적 안정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거나, 적어도 우울 증상 발생 위험 자체를 낮추는 데는 직접적인 역할을 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정신 건강 목적의 과도한 기대 지양과 향후 연구 방향
이번 연구를 주도한 박 교수는 “비타민C의 섭취량과 우울 증상 발생 위험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 “비타민C가 항산화 작용을 통해 전반적인 신체 건강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소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나, 정신 건강 개선을 목표로 비타민C의 효과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기대나 권고를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인 신경정신생물학(Neuropsychobiology)에 게재되며 학술적 검증을 마쳤다.
다만, 연구팀은 비타민C가 우울증 외의 다른 정신 건강 문제, 예를 들어 불안 장애나 인지 기능 저하 등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국인 집단 내에서 비타민C의 대사 특성이나 유전적 요인 등을 고려한 보다 심층적인 분석이 향후 연구 과제로 제시됐다.
비타민C는 신체 필수 영양소로서의 가치를 유지하지만, 우울 증상 발생 위험 감소라는 특정 목표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대규모 한국인 코호트 연구를 통해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신 건강 관리는 검증된 치료법과 생활 습관 개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보충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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