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두 앓았던 아이 몸에 잠복한 바이러스 재활성화, 소아 대상포진의 원인과 증상 심층 해부
일곱 살 김 모 군의 어머니는 최근 아이의 몸에 나타난 붉은 발진을 보고 당황했다. 3년 전 수두를 앓고 깨끗하게 나았기에 피부 질환에 대한 염려를 덜고 있었다. 하지만 김 군의 오른쪽 가슴 부위에서 시작된 발진은 띠 모양으로 번지며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다.
소아청소년과를 찾은 김 군은 ‘소아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대상포진은 흔히 면역력이 떨어진 고령층의 질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에서 이처럼 수두를 앓았던 아이들이 대상포진으로 고통받는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이는 수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완치 후에도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재활성화되는 현상으로, 성인 대상포진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신경통을 남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ZV)의 이중생활: 잠복과 재활성화 메커니즘
소아 대상포진의 근본적인 원인은 수두를 일으키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VZV)다. 아이가 수두에 걸려 회복된 후, VZV는 몸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척수 신경절이나 뇌신경절과 같은 감각 신경절에 숨어들어 비활성화 상태로 잠복한다. 이 잠복 기간은 수년에서 수십 년에 이르며, 일반적으로는 별다른 증상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조건 하에서 바이러스는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VZV가 재활성화되는 주요 방아쇠는 면역력 저하다. 소아의 경우, 심한 감기나 독감과 같은 급성 질환을 앓은 후, 스트레스, 영양 불균형, 혹은 항암 치료나 장기 이식 등으로 인한 면역 억제 상태가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수두를 앓은 시기가 어릴수록, 즉 생후 1년 이내에 수두에 걸렸거나 어머니로부터 받은 항체가 부족했던 경우, 잠복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될 위험이 더 높다고 알려졌다.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면 신경 섬유를 따라 피부 표면으로 이동하면서 염증을 일으키고, 이는 신경절이 지배하는 특정 피부 분절(Dermatome)에 띠 모양의 발진을 유발한다.
성인과 다른 소아 대상포진의 특징적인 증상 발현
소아 대상포진의 증상은 성인과 유사하지만, 통증의 강도와 합병증 발생률에서 차이를 보인다. 초기에는 발진이 나타나기 며칠 전부터 피부가 가렵거나 따끔거리는 전구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후 붉은 반점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나기 시작하며, 이 반점들은 곧 물집(수포)으로 변한다. 이 수포는 대개 몸의 한쪽 편에만 국한되어 띠 모양으로 분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아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부위는 흉부와 복부지만, 얼굴이나 눈 주위 신경을 침범할 경우 시력 손상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성인 대상포진의 가장 큰 고통은 극심한 신경통이지만, 소아는 성인에 비해 통증을 호소하는 정도가 비교적 약하거나 경미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통증이 약하다고 해서 질병 자체가 가볍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부 소아 환자들은 발진이 사라진 후에도 수개월간 지속되는 포진 후 신경통(PHN)을 겪을 수 있으며, 이는 아이의 수면과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 따라서 소아 대상포진 역시 조기 진단과 신속한 항바이러스제 투여가 필수적이다.
박양동 서울패밀리병원 병원장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은 “소아 대상포진은 성인처럼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지 않아 단순 피부염으로 오인하기 쉽다”며, “몸의 한쪽에만 국한된 띠 모양의 수포가 관찰되면 즉시 대상포진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아 대상포진의 치료 골든타임과 예방 전략
소아 대상포진의 치료는 항바이러스제 투여가 핵심이다.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여 증상의 심각도를 낮추고, 특히 포진 후 신경통과 같은 합병증 발생 위험을 줄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 시기다. 발진이 나타난 후 72시간 이내에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야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치료 기간이 길어지고 합병증 위험이 높아지므로, 부모의 신속한 대처가 요구된다.
소아 대상포진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수두 예방 접종이다. 수두 예방 접종은 VZV에 대한 면역력을 형성하여 수두 발병 자체를 막거나, 설령 수두에 걸리더라도 증상을 경미하게 만든다. 이는 궁극적으로 신경절에 잠복하는 바이러스의 양을 줄여 대상포진 발생 위험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연구에 따르면, 수두 백신 접종은 대상포진 발병률을 현저히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평소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균형 잡힌 식단, 충분한 수면을 통해 아이의 면역력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잠복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를 막는 중요한 생활 속 방어 전략이다.
소아 대상포진은 성인병이라는 통념 뒤에 숨어 부모들의 경각심을 낮추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아이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장기적인 신경계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이다. 수두를 앓았던 아이가 갑자기 이유 없는 통증이나 띠 모양의 발진을 호소한다면, 지체 없이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잠복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며,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조기 대응만이 소아 대상포진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