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에 숨겨진 네 번째 색각, 유전학이 밝힌 성별 색각 차이
“이 옷은 베이지색이 아니라 아이보리색이야.” 미술관에서 친구에게 “이 그림의 벽은 연한 청록색이 아니라 민트색”이라고 정정하는 여성이 있다. 남성에게는 그저 ‘흰색 계열’이나 ‘푸른색 계열’로 보이는 미묘한 색의 차이를 여성은 훨씬 더 정확하게 구별해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취향이나 훈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색각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X염색체에 위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과학적 가설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색채를 인지하는 능력은 망막의 원뿔세포(Cone Cell)에 달려 있으며, 이 원뿔세포가 빛의 파장에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색각이 결정된다. 일반적인 사람은 빨강, 초록, 파랑에 반응하는 세 종류의 원뿔세포를 가지는 삼색각자(Trichromat)다. 하지만 여성은 X염색체를 두 개(XX) 가지는 반면, 남성은 하나(XY)만 가진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이 색채 세계의 문을 다르게 열고 있다.

X염색체 이중 구조: 색각 다양성의 근원
색각에 관여하는 유전자 중 특히 적색(L-원뿔)과 녹색(M-원뿔)을 인지하는 유전자는 X염색체에 존재한다. 남성은 X염색체가 하나이므로, 이 유전자에 결함이 생기면 곧바로 색약이나 색맹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남성의 약 8%가 적록색약인 반면, 여성은 0.5% 미만으로 그 비율이 현저히 낮다. 이는 여성이 X염색체를 두 개 가지기 때문에, 하나의 염색체에 결함이 있어도 다른 정상적인 염색체가 기능을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이중 구조가 단순한 결함 보완을 넘어 여성에게 잠재적으로 더 넓은 색채 스펙트럼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성은 두 개의 X염색체를 가지므로, 각 염색체에 미세하게 다른 버전의 색각 유전자(대립유전자)를 보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X염색체에는 일반적인 녹색 감지 유전자가 있고, 다른 X염색체에는 파장이 약간 변이된 녹색 감지 유전자가 있다면, 이 여성은 네 종류의 원뿔세포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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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라크로마시(Tetra-chromacy)의 가능성
네 종류의 원뿔세포를 가진 사람을 ‘4색각자(Tetra-chromat)’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삼색각자는 약 100만 가지의 색을 구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4색각자는 수백만, 혹은 1억 가지 이상의 색을 구별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일반인이 구분하지 못하는 미세한 색의 차이, 예를 들어 특정 노란색과 녹색 사이의 미묘한 변이를 독립적인 색으로 인지한다.
과학자들은 유전적으로 볼 때, 색약 유전자를 보유한 아버지와 정상 유전자를 보유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 중 일부가 이 4색각자가 될 잠재력을 가진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두 개의 X염색체에 서로 다른 파장에 민감한 두 종류의 녹색/적색 수용체를 모두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실제 4색각 능력자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일부 연구에서는 여성 인구의 2~3%가 잠재적인 4색각자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남성 색약의 높은 발현율, X염색체 열성 유전의 결과
반면, 남성은 X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기 때문에 색각 유전자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보완할 대체 유전자가 없다. 색약은 보통 열성 유전 형질로 나타나는데, 여성은 두 개의 X염색체 중 하나에 색약 유전자가 있어도 다른 X염색체가 정상이라면 색약이 발현되지 않고 보인자(Carrier)로 남는다. 그러나 남성은 하나의 X염색체에 해당 유전자가 존재하면 무조건 색약이 발현된다.
이러한 유전학적 메커니즘은 남성이 진화적으로 색채 인지 능력의 변동성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학자들은 고대 수렵 채집 사회에서 남성은 주로 사냥을 담당하며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유리한 명암 대비 시각이 발달했고, 여성은 채집을 담당하며 미묘한 색상 변화(예: 익은 열매와 덜 익은 열매)를 구별하는 능력이 발달했을 수 있다는 진화론적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성별에 따른 색각 차이가 생존 전략과 연결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색채 인지 능력의 다양성: 단순한 우열을 넘어
여성이 남성보다 색을 더 잘 구별한다는 가설은 인간의 시각 시스템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유전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X염색체의 이중 구조 덕분에 여성은 색채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경험할 잠재력을 갖게 됐으며, 이는 예술, 디자인, 패션 등 색채가 중요한 분야에서 여성의 탁월한 감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결국, 색각의 차이는 생물학적 다양성의 결과이며, 남성이 색약에 취약한 대신 명암 대비나 움직임 포착에 유리할 수 있듯이, 각 성별은 진화적 필요에 따라 다른 시각적 강점을 갖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X염색체에 담긴 이 유전적 비밀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얼마나 개인적이고 독특한 경험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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