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직격탄 맞은 굴 일본 주요 산지서 80프로 폐사, 식탁 위 ‘바다의 우유’가 사라진다
겨울철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굴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통통하게 살이 올라야 할 굴들이 일본의 주요 산지에서 집단 폐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출하철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양식장들은 적막에 휩싸였고 지역 경제는 깊은 시름에 잠겼다. 단순한 작황 부진을 넘어 기후 위기가 수산업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침묵에 잠긴 양식장, 껍데기만 남은 참담한 현실
일본 세토내해 전역, 특히 굴 양식의 핵심 지역인 히로시마현, 효고현, 오카야마현의 상황은 그야말로 참사 수준이다. 현지 보도와 수산업계의 전언을 종합하면, 이들 지역 양식 굴의 평균 폐사율은 무려 80%에 달한다. 바다 위 양식 뗏목을 들어 올리면 묵직한 굴망 대신 가벼운 빈 껍데기들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라오는 실정이다.
효고현에서 47년째 굴 양식업을 이어오고 있는 한 수산업체 대표는 “굴들이 전부 입을 벌린 채 죽어 있다. 이것도 죽었고, 저것도 죽었다. 말 그대로 전멸에 가까운 수준”이라며 망연자실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반세기 가까이 바다와 함께 살아왔지만, 이토록 광범위하고 처참한 집단 폐사는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살아남은 굴조차 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가까스로 생존한 개체들을 살펴보면 알맹이가 지나치게 작거나, 특유의 유백색을 띠지 못하고 투명하거나 물기가 많은 상태다. 껍데기 안을 가득 채워야 할 살이 차지 않아 상품으로서 가치가 거의 없는 것이다. 현장 관계자들은 정상적으로 출하가 가능한 수준까지 성장한 굴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양식 굴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히로시마현 구레시의 한 양식장 관계자는 “10개 중 10개가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나라도 살아 있으면 다행인 상황”이라며, 창업 이후 60년 만에 처음 겪는 재난급 상황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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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사라진 제철의 맛, 자영업자들의 한숨
산지의 비극은 곧바로 소비지와 요식업계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효고현의 굴 전문점들을 비롯해 전국의 식당들은 제철 굴을 확보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통상 10월 중순이면 햇굴이 입고되어야 하지만, 올해는 공급 자체가 끊긴 상태다. 한 음식점주는 “산지에서 ‘살이 너무 적고 수량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하를 계속 미루고 있다”며 “손님들은 제철 굴을 찾는데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간판 메뉴인 지역산 굴을 확보하지 못한 식당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홋카이도 등 타지역 산지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그마저도 물량 확보가 쉽지 않다. 연말연시 대목을 앞두고 선물용 굴 주문이 쇄도해야 할 시기지만, 사실상 출하가 불가능해지면서 지역 특산물 판매업체들의 매출 타격도 불가피해졌다. 이는 단순한 식재료 부족을 넘어, 굴 양식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지역 경제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수온과 가뭄의 협공, 생체 리듬 잃은 굴의 비극
이번 집단 폐사 사태의 원인은 명확하게 기후변화로 귀결된다. 전문가들은 기록적인 폭염에 따른 해수온 상승과 강수량 부족을 핵심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히로시마 인근 해역의 수온은 예년보다 약 2도가량 높게 형성됐다. 바다는 대기보다 천천히 데워지고 천천히 식는데, 지난여름의 기록적인 더위가 늦가을까지 바다에 머물며 굴의 생존 환경을 파괴한 것이다.
굴의 생태학적 특성을 살펴보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굴은 보통 수온이 높은 6~8월에 산란을 한다. 이후 수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산란을 멈추고 겨울을 나기 위해 몸에 영양분을 축적하며 살을 찌운다. 이것이 우리가 겨울철에 통통한 굴을 맛볼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가을이 되어도 수온이 떨어지지 않자 굴들은 산란을 멈추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계속해서 알을 낳느라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진했고, 결국 영양부족과 탈진 상태에 빠져 집단 폐사하거나 성장이 멈춰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비가 적게 온 것도 치명타였다. 강수량이 줄어 육지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영양염류가 감소했고, 빗물에 의한 해수 희석이 이루어지지 않아 염분 농도가 지나치게 높은 상태가 지속됐다. 고수온으로 지친 굴들에게 고염분 환경은 숨통을 끊는 결정타가 됐다.
“먹어서 응원하자”… 위기 극복을 위한 필사의 노력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본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즈키 노리카즈 농림수산상은 지난 19일 피해 현장을 시찰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직접 확인했다. 그는 “수십 년간 본 적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어민들의 절규를 듣고,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경영 안정을 지원하고 원인 규명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폐사한 굴을 되살릴 수는 없기에, 당장의 피해 복구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민간 차원에서도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온라인 직거래 플랫폼 ‘타베초쿠’는 11월 초부터 위기에 처한 굴 생산자들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소비자가 굴을 구매하면 그 수익의 일부가 생산자에게 기부되는 방식이다. 현지 언론인 간사이TV 역시 방송을 통해 “작아진 굴은 바다가 우리에게 보내는 분명한 경고 신호”라며 “어려움에 부닥친 생산자들을 위해 ‘먹어서 응원하기’ 캠페인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굴 집단 폐사 사태는 기후변화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당장 우리의 식탁과 생업을 위협하는 현실임을 경고하고 있다. 바다의 수온이 2도 올랐다는 수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태계의 붕괴를 의미하는 방아쇠가 됐다. 자연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바다의 우유’를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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