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의 주치의 소견서 요청, ‘제출 의무 논란’의 법적 쟁점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보험 청구 건과 관련하여 의료기관, 특히 요양병원에 임종한 환자의 ‘주치의 소견서’ 제출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산재보험 심사의 투명성과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단의 당연한 행정 절차로 보일 수 있으나, 일선 의료 현장에서는 이러한 요청이 과연 법적으로 의무 사항인지, 혹은 의료인의 정당한 거부권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첨예한 논란을 낳고 있다.
특히 사망한 환자에 대한 소견서 요청은 단순한 진료기록 제출을 넘어, 해당 환자의 사망 원인과 산재 연관성에 대한 의학적 판단을 요구하는 행위다. 이는 의료인의 전문적 판단 영역이자 동시에 환자의 비밀을 보호해야 하는 윤리적 의무와 직결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과 의료법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주치의가 소견서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무엇이며, 공단의 자료 요청 권한은 어디까지 미치는지 심도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산재보험법 제31조의 한계: ‘자료’와 ‘소견서’의 법적 경계
근로복지공단이 자료 제공을 요청할 때 주로 근거로 삼는 것은 산재보험법 제31조다. 이 조항은 공단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단체, 즉 의료법 제3조에 따른 의료기관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받은 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산재보험법 시행령(별표1의2)은 공단이 요청할 수 있는 자료의 구체적인 범위를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의료법에 따른 진료·조제기록부, 진료비 계산서 및 세부 산정 내역서’ 등이 포함된다.
문제는 ‘주치의 소견서’가 이 목록에 명시된 ‘자료’에 직접적으로 포함되느냐는 점이다. 진료기록부는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한 문서인 반면, 소견서는 주치의의 의학적 판단과 의견이 담긴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다. 때문에 산재보험법 제31조 자체만으로는 공단이 의료기관에 의학적 판단이 담긴 ‘소견서’ 제출을 강제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이에 만약 공단이 소견서를 요구한다면, 이는 단순한 자료 요청을 넘어선 ‘진료에 관한 보고’ 또는 ‘서류 제출 요구’의 성격을 띠게 되며, 이 경우 의료법 제21조의 적용을 받게 된다.
따라서 공단은 진료기록부, 영상 자료 등 객관적 사실 자료는 산재보험법 제31조에 근거하여 요청할 수 있으나, 주치의의 의학적 견해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소견서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법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는 행정기관의 정보 수집 권한과 의료인의 전문성 및 환자 비밀 보호 의무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중요한 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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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제21조가 부여하는 ‘제출 의무’와 산재보험 의료기관의 특수성
산재보험법 제31조의 한계를 보완하며 소견서 제출 의무를 발생시키는 핵심 조항은 의료법 제21조 제3항 제8호다. 이 조항은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이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사본을 교부하는 등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제8호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8조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이 보험급여를 받는 근로자를 진료한 산재보험 의료기관(의사를 포함한다)에 대하여 그 근로자의 진료에 관한 보고 또는 서류 등 제출을 요구하거나 조사하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요양병원 주치의가 산재보험 의료기관 소속이거나 산재 환자를 진료했다면, 공단의 ‘진료에 관한 서류 제출 요구’는 원칙적으로 응해야 하는 의무 사항이 된다. 소견서 또한 진료에 관한 서류에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산재보험 제도가 공공 복리를 목적으로 하며, 보험급여 지급의 적정성을 심사하기 위해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협조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발생한 특수한 법적 관계다.
즉, 산재보험 의료기관은 일반적인 의료기관보다 공단에 대한 정보 제공 의무가 더욱 강화된다고 볼 수 있다. 공단이 보험급여 심사를 위해 진료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산재보험 제도의 근간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의료기관은 이 과정에서 성실하게 협력해야 할 공적 책무를 지게 됐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주치의 소견서 제출은 원칙적으로 의료법 21조에 따른 의무 이행으로 간주된다.

의사의 ‘진료 불가피성’ 판단: 거부권 행사의 정당한 사유 기준
그러나 의료법 제21조는 이러한 정보 제공 의무에 중요한 단서를 달고 있다. 바로 “의사가 환자의 진료를 위하여 불가피하다고 인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규정이다. 이 단서 조항은 주치의에게 공단의 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판단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한다. 이 조항이 바로 소견서 제출 의무 논란의 핵심 쟁점이다.
그렇다면 ‘진료를 위하여 불가피하다고 인정한 경우’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법적 해석은 이 단서 조항이 환자의 생명이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진료 행위와 관련이 있거나, 정보 제공으로 인해 환자(또는 유족)에게 심각한 불이익이 초래되어 진료 관계 자체가 훼손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소견서 제출이 환자의 심리적 안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치료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을 때를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임종한 환자의 경우, ‘진료를 위하여 불가피하다’는 사유를 주장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주치의가 소견서 제출을 거부하는 주된 이유는 보통 ‘진료 기록만으로 충분하며 추가적인 소견 작성은 행정 부담이 크다’, 혹은 ‘사망 원인에 대한 확정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전문적 판단의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법이 요구하는 ‘진료 불가피성’은 단순한 행정적 불편함이나 의학적 불확실성을 넘어선, 환자 보호를 위한 적극적이고 긴급한 사유여야 하므로, 거부권 행사는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경우, 의료법 및 산재보험법에 따른 행정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법적 의무와 의료 윤리적 판단의 균형점 모색
근로복지공단의 주치의 소견서 요청은 산재보험 제도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절차이나,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환자 정보 보호와 과도한 행정 부담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게 된다. 법률적으로 볼 때, 산재보험 의료기관의 주치의는 의료법 제21조 제3항 제8호에 해당 할 경우 소견서 제출 요구에 응할 의무가 원칙적으로 발생한다. 다만, 이 의무는 ‘의사가 진료를 위하여 불가피하다고 인정한 경우’라는 단서 조항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온 공문에서 관련 근거 조문이 어떤 조문이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주치의는 공단의 요청을 무조건 거부해서는 안 되지만, 소견서 내용이 객관적 진료기록의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의학적 추론을 요구하거나, 환자 비밀 보호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명확한 법적 근거(진료 불가피성)를 제시하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의료기관은 공단과의 소통을 통해 소견서의 작성 범위를 명확히 하고, 객관적인 진료 사실에 근거한 보고서 형태로 협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응 방안이다. 법적 의무와 의료 윤리적 판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공단 역시 자료 요청 시 소견서의 필요성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의료기관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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