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한데 당뇨병, 한국인 ‘마른 당뇨’의 진짜 이유: 췌장 베타세포 기능의 유전적 차이
한국인의 당뇨병 발병 양상이 서구권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 의학계의 이목을 끈다. 서양에서는 주로 비만과 연관된 인슐린 저항성이 제2형 당뇨병의 주요 원인으로 여겨지나, 한국인과 같은 아시아인에게는 정상 체중이거나 오히려 마른 체형임에도 당뇨병이 발생하는, 이른바 ‘마른 당뇨’ 환자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생활 습관의 차원을 넘어선 근본적인 생물학적 요인, 즉 췌장의 기능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최근 여러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췌장이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의 기능이나 양적인 측면에서 서양인과 다른 고유한 유전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당뇨병의 발병 연령을 낮추고, 예상치 못한 합병증의 위험을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처럼 고유한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이 당뇨병 발병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은 무엇이며, 이러한 과학적 통찰이 향후 당뇨병 예방 및 치료 전략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한국인 ‘마른 당뇨’ 현상의 확산과 그 심각성
최근 국내 당뇨병 유병률 조사에 따르면, 체질량지수(BMI)가 정상 범위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당뇨병 진단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공개한 202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서 국내 30세 이상 성인의 당뇨병 유병률은 13.6%로 집계됐다. 특히 마른 체형에서 발생하는 ‘마른 당뇨’ 환자 비율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비만 인구 증가와 함께 당뇨병 유병률이 상승하는 서구권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인은 비만하지 않더라도 췌장 기능에 이상이 생겨 혈당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잦은데, 이러한 현상을 ‘마른 당뇨’ 또는 ‘비만하지 않은 제2형 당뇨병’이라 부른다. 의료계는 이러한 마른 당뇨의 증가가 단순히 개인의 식습관이나 운동량 부족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요인, 특히 강한 유전적 소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는 한국인의 당뇨병 관리 전략이 서양의 지침과는 다르게 접근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문제는 마른 당뇨 환자가 비만 당뇨 환자보다 췌장 베타세포 기능이 더 빠르게 저하될 가능성이 높고, 초기 진단이 지연되어 심혈관 질환, 신장 질환, 망막 병증 등 치명적인 합병증 발생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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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 베타세포 기능의 유전적 차이
한국인에게서 ‘마른 당뇨’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에 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의 췌장 베타세포는 서양인에 비해 인슐린을 분비하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약하거나, 인슐린 분비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의 변이를 가질 확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는 서양인이 일정 수준의 인슐린 저항성을 겪더라도 췌장이 보상적으로 인슐린을 더 많이 분비하여 혈당을 조절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인의 췌장은 이러한 보상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췌장 피로’가 더 빠르게 찾아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민병원 김종민 병원장 겸 당뇨대사수술센터장(내분비 외과 전문의)은 “한국인의 췌장은 서양인에 비해 인슐린 분비 능력이 선천적으로 약한 경향이 있으며, 이는 단순히 비만 여부를 넘어선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며,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한국인 당뇨병 관리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특성은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에게도 고혈당이 나타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비만이 아니어도 췌장이 감당할 수 있는 인슐린 요구량이 서양인보다 적어, 스트레스나 일상적인 식생활의 변화에도 혈당 조절에 실패할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탄수화물 섭취량이 늘고 신체 활동량이 줄면서, 선천적으로 취약한 한국인의 췌장에 더 큰 부담이 가해져 당뇨병 발병 연령이 점차 낮아지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췌장 DNA’ 연구 성과와 맞춤형 치료의 가능성
최근 유전체 연구는 한국인의 췌장이 지닌 독특한 유전적 특징을 더욱 명확히 밝혔다. 2023년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국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에게서 인슐린 분비 능력을 저하시키는 특정 유전자 변이(예: TCF7L2 유전자 외 KCNQ1, CDKAL1, SLC30A8 등)의 발현율이 서양인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 유전자들은 췌장 베타세포의 성장, 증식, 인슐린 분비 경로 등에 영향을 미쳐, 인슐린 분비량을 감소시키거나 세포 손상에 취약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비만 여부와 관계없이 당뇨병에 걸릴 위험을 높이는 생물학적 근거가 됐다. 특히 이들 유전자 변이는 인슐린 저항성보다는 인슐린 분비 능력 결함과 더욱 밀접한 관련을 보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한국인의 당뇨병 진단 및 치료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체중 감량만을 강조하는 서구식 당뇨 관리 지침으로는 한국인에게 효과적인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하며,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보존하고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개인 맞춤형 치료법 개발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특정 유전자형을 가진 환자에게는 췌장 베타세포 기능을 보호하는 약물이나 인슐린 분비를 직접 촉진하는 약물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인의 당뇨병은 비만 여부와 상관없이 췌장의 인슐린 분비 능력 저하라는 유전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서양인과 다른 ‘췌장 DNA’ 때문이며, 이러한 이해는 당뇨병 예방과 치료에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한다. 따라서 비만 중심의 접근을 넘어,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췌장 기능을 고려한 맞춤형 관리가 중요해졌다. 앞으로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당뇨병 고위험군을 조기에 선별하고, 췌장 베타세포 기능을 보호하고 재생을 유도하는 데 집중하는 치료 전략이 더욱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인공지능(AI) 기반의 개인 맞춤형 식단 및 운동 프로그램 개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한국인에게 최적화된 당뇨 관리 해법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민병원 내과 김경래 대표원장(내분비 내과 전문의)은 “한국인 당뇨병 환자에게 비만 여부와 관계없이 췌장 기능 평가를 조기에 시행하고,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생활 습관 및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마른 당뇨 환자의 경우 췌장 기능 저하 속도가 빠를 수 있으므로 더욱 적극적인 관리와 연구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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