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세계 최초의 통신망: 페르시아 ‘차파르카네’와 현대 우편의 비공식 모토
기원전 5세기, 광활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수사에서 소아시아의 사르디스까지, 약 2,600km에 달하는 왕도(王道)를 따라 한 명의 기수가 말을 달리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막의 찌는 듯한 더위나 겨울 산맥의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그가 짊어진 것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제국의 생명줄이었다. 이들은 지친 말을 갈아탈 역참(驛站)을 따라 쉼 없이 질주했으며, 그들의 헌신을 상징하는 표어는 2500년이 지난 현대 우편 시스템의 비공식적인 모토로까지 계승됐다.
바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뜨거운 열기나 어둠이 닥쳐도, 이들은 지정된 코스를 신속하게 완주한다(Neither snow, nor rain, nor heat, nor gloom of night stays these couriers from the swift completion of their appointed rounds)”는 문구다. 이 문구는 어떻게 고대 페르시아의 역참 제도에서 출발하여 오늘날까지 ‘임무 완수’의 상징이 됐는지 그 역사적 서사를 추적한다.

다리우스 대왕의 통치 철학이 낳은 ‘세계 최초의 통신망’
페르시아 제국은 역사상 가장 광활했던 제국 중 하나였다. 기원전 522년 즉위한 다리우스 1세(Darius I, 다리우스 대왕)는 이 거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획기적인 통신 시스템이 필요함을 인지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역참 제도인 ‘차파르카네(Chapar Khaneh)’ 혹은 ‘아이가르(Aigar)’다. 이 제도는 단순히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중앙 정부의 명령을 신속하게 지방 총독(사트라프)에게 전달하고, 지방의 소식을 중앙에 보고하여 제국의 응집력을 유지하는 핵심 인프라였다.
다리우스 대왕은 왕도(Royal Road)를 정비하고, 약 25~30km 간격으로 역참을 설치했다. 각 역참에는 신선한 말과 기수(차파르, Chapar)가 상시 대기하고 있었다. 기수는 도착하는 즉시 소식을 다음 기수에게 인계하고, 신선한 말을 타고 다시 출발했다. 이 릴레이 방식 덕분에, 일반적인 여행자가 몇 달이 걸릴 거리를 단 며칠 만에 주파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는 고대 세계에서 전례 없는 속도와 효율성을 자랑하는 시스템이 됐다.
악몽의 어원과 신화적 기원: ‘Mare’는 암말이 아닌 악령이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 불멸의 모토가 된 ‘차파르’의 헌신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자신의 저서 《역사(Histories)》에서 페르시아의 역참 시스템을 상세히 묘사하며, 특히 기수들의 불굴의 의지를 찬양했다. 그는 페르시아 역참 기수들의 임무 수행 방식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뜨거운 열기나 어둠이 닥쳐도, 이들은 지정된 코스를 신속하게 완주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 문구는 단순한 관찰 기록을 넘어, 당시 페르시아 제국이 요구했던 공직자의 윤리와 책임감을 상징하는 표어가 됐다. 헤로도토스는 “세상에 이란 사람들보다 더 빨리 여행하는 것은 없다”고 극찬하며, 이 문구는 이후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인용되며, 시대를 초월하여 ‘공공 서비스’의 헌신적인 태도를 대변하는 문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 우편 시스템으로의 계승: USPS의 비공식 모토가 된 배경
고대 페르시아의 이 문구가 현대에 가장 유명하게 부활한 곳은 바로 미국이다. 이 문구는 미국 우정청(USPS, United States Postal Service)의 비공식적인 모토로 널리 알려졌다. 이 문구가 USPS와 연결된 결정적인 계기는 1912년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제임스 팔리(James Farley) 우체국 건물에 새겨지면서부터다.
이 건물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윌리엄 미첼 켄달(William Mitchell Kendall)은 고대 역사에 조예가 깊었으며, 우편 서비스의 숭고한 임무를 표현할 적절한 문구를 찾고 있었다. 그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에서 영감을 받아 이 문구를 건물 외벽에 새겼다. 비록 USPS는 이 문구가 공식적인 표어가 아니라고 밝히지만, 수십 년 동안 이 문구는 우편 직원들의 사명감과 공공 서비스 정신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문구로 기능해왔다.
이처럼 페르시아의 역참 정신은 로마 제국의 공공 도로 시스템, 몽골 제국의 역참(얌) 등 여러 문명에 영향을 미쳤으며, 궁극적으로는 근대 국가의 우편 및 물류 시스템의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특히 ‘눈이 오나 비가 오나’라는 문구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공공 서비스의 본질을 완벽하게 포착해냈다.
2500년을 관통하는 ‘임무 완수’의 서사: 페르시아 역참 정신의 현대적 의미
고대 페르시아의 역참 기수들이 가졌던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 사회는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소식 전달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지만, 물리적인 물류와 배송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택배 기사, 배달원, 우편 직원들은 여전히 ‘눈이 오나 비가 오나’의 정신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이 문구가 단순한 표어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개인의 편의나 안락함보다 공공의 이익과 약속을 우선시하는 윤리적 책임감을 담고 있다. 다리우스 대왕이 광대한 제국을 묶기 위해 필요로 했던 신뢰와 속도의 가치는, 오늘날 복잡하게 얽힌 글로벌 물류망과 사회 인프라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정신적 토대가 됐다. 페르시아 역참의 서사는 2500년의 시간을 넘어, 공공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변함없는 헌신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불멸의 메시지로 남아있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기사
악몽의 어원과 신화적 기원: ‘Mare’는 암말이 아닌 악령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