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턴의 사과 사실은 없었다 – 만유인력 법칙, 사과 하나로 깨달은 진리가 아니다
아이작 뉴턴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과학 일화 중 하나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교과서와 대중매체를 통해 전파되며, 과학적 발견의 순간을 상징하는 강력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많은 이들이 이 일화를 뉴턴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순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과학사가들의 연구와 사료 검토 결과, 이 유명한 사과 이야기가 단순한 목격담을 넘어 후대에 의해 과장되고 재구성된 신화적 요소가 강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뉴턴의 실제 발견 과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과학적 업적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뉴턴의 사과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부터, 이 신화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어떻게 확산되고 변형됐는지, 그리고 만유인력 법칙 발견의 진정한 배경은 무엇이었는지를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뉴턴의 사과 이야기: 사실과 과장의 경계는?
뉴턴의 사과 일화는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다. 뉴턴 자신도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켰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뉴턴의 친우이자 전기 작가인 윌리엄 스터클리가 1752년 저술한 ‘아이작 뉴턴 경의 생애 회고록’에서 뉴턴이 정원에서 사과를 관찰하며 중력의 개념을 떠올렸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스터클리에 따르면 뉴턴은 이 대화에서 “왜 사과는 항상 땅으로 수직으로 떨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원리와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 사이에 공통된 힘이 작용할 것이라고 추론했다고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기보다는, 이미 진행 중이던 뉴턴의 깊이 있는 사유 과정에 사과 낙하가 하나의 촉매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사과가 뉴턴의 사색을 촉발한 계기가 됐을 수는 있으나, 그 자체가 만유인력의 모든 것을 설명한 결정적인 순간은 아니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만유인력 법칙, 사과 하나로 깨달은 진리가 아니다
만유인력 법칙은 떨어지는 사과 하나를 보고 순식간에 깨달음을 얻은 단순한 발상이 아니었다. 뉴턴은 당시 영국을 휩쓴 흑사병을 피해 고향 울즈소프에 머물던 1665~1666년경, 미적분학, 광학, 중력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집중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행성의 운동과 지구상의 물체 운동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려는 장기간의 지적 노력을 기울였다. 뉴턴 이전에도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철학자부터 갈릴레이 같은 근대 과학자들까지 지상의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을 지구의 인력 때문으로 설명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천상계와 지상계의 운동 원리가 다르다고 여겼다. 뉴턴의 진정한 업적은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과 갈릴레이의 낙하 운동 연구를 종합하여, 지구상의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과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현상이 동일한 중력 법칙, 즉 만유인력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고 통일된 패러다임을 확립한 데 있다. 이는 수십 년간의 복잡한 계산과 관찰, 그리고 깊이 있는 사색의 결과였다.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같은 방대한 저술들은 그의 업적이 결코 단발적인 영감의 산물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준다.

계몽주의 시대가 만든 ‘천재 신화’의 산물
뉴턴의 사과 신화가 대중에게 널리 퍼지게 된 데에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1727년 뉴턴 서거 이후 자신의 저서와 편지를 통해 이 사과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전파했다. 볼테르가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뉴턴의 조카딸 캐서린 바턴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전해진다.
계몽주의 사조는 ‘천재’의 개념을 강조하며, 위대한 발견이 번뜩이는 영감과 직관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과 같은 거대한 발견을 오랜 시간의 근면한 연구와 복잡한 수학적 증명의 산물로 설명하기보다는, 사과 하나를 보고 단박에 깨달음을 얻는 극적인 순간으로 묘사하는 것이 당시 대중의 이해와 감성에 훨씬 부합했다.
뉴턴의 사과나무, 과학적 영감의 상징으로 재탄생하다
비록 뉴턴의 사과 이야기가 상당 부분 신화적 요소가 가미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 일화는 과학적 영감과 발견의 상징으로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뉴턴의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있던 사과나무는 ‘뉴턴의 사과나무’로 불리며 전 세계 각지로 가지가 분양돼 심겼다.
우리나라의 일부 연구기관에도 이 사과나무의 후손이 자라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과학적 호기심과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뉴턴의 사과 이야기는 단순한 사실 여부를 넘어, 과학적 탐구 정신과 위대한 발견에 대한 인류의 열망을 담고 있는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과학사에서 신화가 어떻게 탄생하고,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어떻게 흐려지며, 결국에는 한 시대를 넘어선 상징으로 남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과학 지식을 쉽고 흥미롭게 전달하는 데 기여하며 대중의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발견 과정에 얽힌 사과 이야기는 단순한 일화로 치부될 수 없다. 이는 한 과학자의 심오한 연구와 시대적 맥락이 결합하여 위대한 과학적 업적이 어떻게 탄생하고 대중에게 수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였다. 비록 사과가 만유인력의 모든 진실을 단번에 알려준 ‘마법의 순간’은 아니었지만, 뉴턴이 우주와 지상의 모든 움직임을 하나의 법칙으로 묶어냈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위대한 업적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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