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든 한국인 여성의 손이 잔잔한 빛 속에서 차분하게 찻잔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늙은 킬러 파과: 삶의 마지막 조각을 찾아서
구병모 작가의 소설 ‘파과’는 출간 이후 줄곧 독자들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이 작품은 전문 킬러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60대 여성 ‘조각’ 계옥의 삶을 조명한다. 날카롭던 실력은 나이와 함께 무뎌졌고, 기억력은 희미해졌으며, 신체는 노쇠함에 접어들었다. 조직으로부터 강제적인 은퇴를 종용받는 그녀의 이야기는 비범한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를 담고 있다.
계옥은 폭력과 피가 난무하는 세계에서 평생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 익숙한 세계를 떠나 평범한 삶에 발을 디뎌야 하는 기로에 섰다. 마지막 임무들을 수행하며 과거를 되짚어보고, 낯선 젊은 수습 킬러 산과의 묘한 관계 속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 과정은 이 소설의 핵심 서사다. 은퇴 후 평범한 일상을 시도하는 계옥에게 과거의 그림자는 끊임없이 드리워졌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그녀를 다시금 위험 속으로 몰아넣었다.
‘파과’는 단순히 킬러의 이야기를 넘어선다. 이 소설은 폭력에 익숙한 인물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혼란과 고독,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의 유대감과 연대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특히, 주인공의 이름 ‘조각’처럼 파괴와 상실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계옥이 자신을 돌보고 타인과 관계 맺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 노화, 죽음, 그리고 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렇다면 ‘파과’가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무엇일까?

은퇴를 앞둔 킬러, ‘조각’ 계옥의 복합적인 내면
‘파과’ 속 주인공 계옥은 킬러라는 직업이 주는 차갑고 강인한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노년의 연약함과 고독을 동시에 보여주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6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과거의 예리함이 점차 무뎌지고, 기억은 희미해지는 신체적 변화를 겪고 있다. 이는 그녀가 몸담았던 폭력의 세계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조직은 그녀의 은퇴를 강요하지만, 평생 살인을 직업으로 삼아온 그녀에게 ‘평범한 삶’이란 미지의 영역 그 자체다.
소설은 계옥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오랜 시간 억눌러왔던 감정들과 인간적인 욕구가 노년기에 접어들며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그녀의 복잡한 심리를 이해하게 된다. 특히, 자신을 ‘조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감정의 파편화된 삶을 살아온 계옥이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온기와 유대를 갈망하는 모습은 많은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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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인연, 수습 킬러 산과의 기묘한 유대
계옥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젊은 수습 킬러 산과의 만남이다. 산은 계옥과는 전혀 다른 세대의 인물로, 킬러로서의 삶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단계에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사제지간을 넘어선다. 계옥은 산을 통해 자신의 젊은 시절을 투영하기도 하고, 동시에 예상치 못한 따뜻한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계옥이 오랜 시간 외면했던 인간적인 감정들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산과의 관계는 계옥이 폭력으로 가득했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게 만드는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독하고 파편화된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에게 위안과 이해를 주는 모습은 소설에 깊이를 더한다. 이들의 관계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플롯 중 하나로, 노화와 죽음이라는 주제 속에서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폭력의 세계를 떠나 평범함을 꿈꾸다: 정체성 혼란
계옥이 은퇴 후 ‘평범한 삶’을 시도하는 과정은 그녀에게 크나큰 정체성 혼란을 안겨준다. 평생 살인 도구로 살아왔던 그녀에게 일반적인 사회생활은 낯설고 불편한 도전이다. 은퇴 후 시작한 과일 장사, 그리고 이웃과의 교류는 그녀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그림자는 그녀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위협한다. 과거의 동료들이나 적들은 그녀를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충돌은 ‘과거의 나’와 ‘새로운 나’ 사이에서 갈등하는 계옥의 내면을 더욱 부각한다. 평범해지고자 하는 욕망과, 몸에 배어버린 폭력의 습성 사이에서 그녀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한다. 소설은 계옥이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행복과 동시에, 언제든 폭력의 세계로 다시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노화와 죽음, 그리고 파과가 던지는 삶의 의미
‘파과’는 노화와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킬러라는 특이한 설정을 통해 매우 심도 있게 다룬다. 계옥의 노쇠함은 그녀의 직업적 생명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의 유한성을 상기시킨다. 소설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이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가치를 지키려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계옥은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인물이지만, 역설적으로 노년이 되어서야 삶의 진정한 의미와 온기를 찾아 헤맨다.
작품은 계옥이 자신을 ‘돌보는’ 과정, 그리고 타인과 관계 맺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생존’을 탐색한다. 이는 폭력의 상실과 파괴 속에서 인간적인 연대와 치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025년 7월 10일 현재, 많은 독자들이 여전히 이 소설을 통해 노년의 삶, 인간관계, 그리고 생의 유한함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어가고 있다. ‘파과’는 단순한 장르 소설을 넘어,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파과’는 킬러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가장 현실적인 삶의 질문들을 던지는 소설이다. 노화, 고독, 상실, 그리고 인간적인 유대감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들은 폭력으로 얼룩진 계옥의 삶을 통해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이 소설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결국 계옥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삶의 끝자락에서, 진정한 의미의 ‘완성’이 무엇인지를 묻는 강력한 메시지가 됐다. 구병모 작가는 ‘파과’를 통해 파괴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력과 상실 속에서 발견되는 희망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인간적인 온기와 삶의 의미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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