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1500원 현실화되나? 통화가치 하락률 세계 1위…원화값만 곤두박질, 왜
원화 가치가 주요국 통화는 물론 동남아 신흥국 통화와 비교해도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며 글로벌 최약체 통화로 전락했다. 2025년 11월 21일 기준, 달러당 원화값은 1475원대까지 떨어져 약 7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연평균치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특히 이달 들어 원화는 달러 대비 3.29% 하락하며 일본 엔화(-2.11%)보다도 큰 낙폭을 나타냈다.
과거 원화값이 1450원 아래로 무너진 경우는 IMF 외환위기(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그리고 2024년 비상계엄 사태를 제외하면 드물었다. 현재 한국은 수출 호조와 사상 두 번째로 큰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국가 신용 위험도 안정적이지만, 원화 가치는 오히려 폭락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환율판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가 단순히 달러 강세 요인을 넘어, 국내적 요인에 기인한 ‘한국 고유의 위험 프리미엄’이 반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특히 개인, 기업, 연기금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달러 사냥’과 정책 불확실성, 취약한 내수 구조, 그리고 편중된 산업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원화 가치 하락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글로벌 달러 강세 넘어선 원화의 독자적 약세
최근 원화 약세는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 속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인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종료 기대감과 12월 미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작아지면서 달러인덱스(DXY)는 9월 저점(96.63) 이후 100을 돌파하며 강세로 돌아섰다. 달러 강세는 원화 약세의 자연스러운 배경이지만, 원화의 낙폭이 이보다 훨씬 깊고 넓다는 점이 문제다.
2025년 11월 21일 종가 기준으로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3.29% 하락해, 새 정부의 확장재정 기대감으로 약세를 보인 일본 엔화(-2.11%)보다도 낙폭이 컸다. 같은 기간 유로와 파운드가 달러 대비 강세를 보였고, 동남아 신흥국 통화인 말레이시아 링깃(0.75%) 역시 강세를 나타냈다. 태국 바트(-0.11%)나 필리핀 페소(-0.44%)도 약세였으나 원화의 하락률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는 한국 경제에 내재된 고유의 위험 프리미엄이 원화 가치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 무력화시킨 ‘달러 사냥’ 고착화
한국 경제는 2025년 3분기까지 경상수지 누적 흑자가 827억 7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증가하는 등 견조한 수출 실적을 보였다. 그러나 이처럼 외화를 벌어들이는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는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다시 해외 투자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5년 9월까지 해외 투자 등 금융계정을 통한 달러 유출 규모는 809억 9000만 달러에 달해 같은 기간 경상수지 누적 흑자 규모와 거의 맞먹었다. 원인은 최근 환율 움직임이 국내 거주자의 해외 투자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 기업, 연기금 등 국내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달러 자산을 사들이는 ‘달러 사냥’이 환율 결정 요인을 ‘무역수지’에서 ‘자본 이동’으로 완전히 옮겨놓은 결과로 풀이된다.
자본의 ‘탈(脫)한국’ 현상 밑바탕에는 국내 정책의 불확실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경제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한 정책 일관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책이 자주 바뀌거나 갑작스러운 조치가 취해질 경우 국내 자금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최근 한국 경제는 부동산, 노동, 투자 분야에서 법과 제도가 수시로 바뀌며 정책 변동성이 높아진 상태다. 이러한 잦은 정책 변경과 경제의 정치화는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자본 이탈과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는 것.
또한, 한국의 취약한 내수 구조 역시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국내 요인이다. 한국이 민간 소비와 서비스수지 부진으로 외부 충격에 더 취약한데,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신흥국은 관광, 송금, 젊은 인구 등 내수 버팀목이 강해 외부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있지만, 한국은 고령화, 높은 가계부채(GDP 대비 91.7%), 서비스수지 적자가 겹쳐 환율 변화가 내수에 곧바로 전가되는 구조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 편중과 대중국 의존도의 구조적 취약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에 대한 높은 편중도 역시 원화 약세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작용한다. 대만을 제외하면 한국의 AI 및 반도체 산업 비중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아, 인공지능(AI) 리스크가 부각될 때 글로벌 자금이 가장 먼저 빠져나오는 시장이 바로 한국인 것이다. 호황기에는 성장의 동력이 되지만, AI 고평가 논란이나 반도체 규제 가능성 등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곧바로 원화 약세로 이어지는 구조다.
여기에 한국은 대중(對中) 교역 의존도가 높아 중국 경기 변동에도 환율이 민감하게 흔들린다. 때문에 한국이 수출과 수입 모두에서 중국 비중이 높아 중국 경기 둔화나 미·중 리스크가 커질 때 환율이 더 크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 즉 국내 정치 불안정,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그리고 산업 편중이 누적되며 원화는 외환시장에서 상대적 최약체 통화로 평가받는 상황이다.
현재 시장은 달러당 원화값이 연저점인 1484.1원을 넘어 ‘1차 저항선’인 1480원을 깰지에 집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달러 강세 대비 원화 낙폭이 상당해 하단으로 갈수록 부담이 커지지만, 1480원대에서는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나 외환당국의 미세 조정 개입이 나올 수 있어 급격한 추가 하락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환율이 오르든 말든 달러 유출이 멈추지 않는 구조가 됐기 때문에 1500원 같은 저점 예측은 의미가 없다고 경고하는 전문가도 있다. 1500원이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경계선이므로 단기적으로 당국이 방어할 가능성이 크지만, 외환보유액 소진으로 개입 여력이 약해지면 1500원선 터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굿이라도 해야할 판이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기사
‘꿈의 시총’ 1조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둔 일라이 릴리, 제약업계의 역사를 새로 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