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 침묵의 합병증이 발끝부터 몸을 잠식한다
만성 질환인 당뇨병 환자에게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합병증 중 하나인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Diabetic Peripheral Neuropathy, DPN)이 환자들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 및 관련 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국내 당뇨병 환자 10명 중 3명에서 5명가량이 이 신경병증을 겪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질환은 통증이나 저림 같은 초기 증상이 발끝과 손끝 등 신체의 말단 부위에서부터 서서히 시작되는 특징을 보이며, 환자들이 단순한 혈액순환 장애로 오인하기 쉬워 진단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고혈당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신경 섬유와 미세혈관에 비가역적인 손상을 초래하는 이 질환은, 심할 경우 발의 감각을 완전히 마비시켜 치명적인 족부 궤양과 감염, 나아가 사지 절단에까지 이르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은 당뇨병 관리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작용하며,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혈당 조절이 필수적이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의 발생 기전과 초기 경고 신호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은 기본적으로 고혈당 환경이 신경 세포에 독성 물질을 축적시키고, 신경에 영양을 공급하는 미세혈관을 손상시키면서 발생한다. 혈당이 높으면 신경 세포 내에서 포도당 대사 경로에 문제가 생겨 소르비톨과 같은 물질이 과도하게 쌓이는데, 이 물질들은 삼투압 변화를 유발하며 신경 부종을 일으키고, 결국 신경 기능을 저하시킨다. 동시에 미세혈관 손상은 신경에 산소와 영양분 공급을 방해하여 신경 섬유를 점진적으로 괴사시킨다. 이러한 손상은 주로 신체의 가장 긴 신경이 분포하는 발과 다리에서부터 시작된다.
DPN의 초기 증상은 매우 미묘하여 간과하기 쉽다. 환자들은 주로 발가락이나 발바닥에서 시작되는 ‘저림’이나 ‘따끔거림’을 호소한다. 이는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상감각)이나, 뜨거운 모래 위를 걷는 듯한 작열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밤에 증상이 심해져 수면 장애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통증이 주를 이루지만, 병이 진행될수록 감각이 무뎌지는 ‘무감각’ 상태로 전환된다. 환자들은 발에 양말을 신은 듯한 둔한 느낌을 받거나, 날카로운 물체에 찔려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이러한 무감각 상태는 후술할 치명적인 합병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고 전문의들은 경고한다.
당뇨발 침묵의 경고, 작은 상처 방치하면 ‘이것’ 된다?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발 건강 신호
무감각이 부르는 치명적인 결과: 당뇨발과 사지 절단 위험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의 가장 무서운 결과는 바로 ‘당뇨발(Diabetic Foot)’이다. 신경 손상으로 인해 발의 감각이 소실되면, 환자는 작은 상처나 물집, 굳은살 아래의 염증을 인지하지 못한다. 여기에 당뇨병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와 혈액순환 장애가 겹치면서, 작은 상처가 쉽게 낫지 않고 급속도로 악화되어 궤양(당뇨발 궤양)으로 발전한다. 궤양이 깊어지면 뼈까지 감염되는 골수염으로 이어지며, 결국 패혈증을 막기 위해 발이나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국내외 연구 자료를 종합한 결과, 당뇨병 환자의 입원 원인 중 비외상성 하지 절단의 50% 이상이 당뇨발 합병증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한번 절단 수술을 받은 환자는 5년 이내에 반대쪽 발을 절단할 확률이 매우 높으며, 사망률 역시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높게 나타났다. 따라서 신경병증의 진행을 막고 발의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생존율과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가 정기적인 발 검진과 철저한 자가 관리를 시행할 경우, 하지 절단 위험을 최대 85%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내다봤다.

조기 진단과 혈당 조절: 신경병증 진행을 늦추는 핵심 전략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의 치료는 손상된 신경을 완전히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병의 진행을 늦추고 통증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치료법은 철저한 혈당 관리다. 당화혈색소(HbA1c) 수치를 목표 범위(일반적으로 6.5%~7.0% 미만)로 유지하는 것이 신경 손상의 속도를 늦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고혈압과 고지혈증 같은 동반 질환을 함께 관리하여 미세혈관 손상을 최소화해야 한다.
진단은 신경전도 검사(NCS)나 정량적 감각 검사(QST)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환자 스스로도 일상생활에서 정기적인 자가 검진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의들은 조언한다. 매일 발을 관찰하여 상처, 물집, 변형, 색깔 변화 등을 확인하고, 1년에 최소 한 번은 모노필라멘트 검사(감각 테스트)를 포함한 전문적인 발 검진을 받아야 한다. 통증이 심한 경우에는 프레가발린이나 둘록세틴 같은 신경병성 통증 치료제를 사용하여 증상을 완화한다. 최근 연구에서는 알파리포산이나 비타민 B군 제제 등이 신경 기능 개선에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으나, 이는 주된 치료법이 아닌 보조 요법으로 활용된다.
김경래 서울 민병원 내과 대표원장(내분비 내과 전문의)는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미 신경 손상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며, “따라서 당뇨병 진단 초기부터 적극적인 혈당 조절은 물론, 정기적인 신경 검사를 통해 미세한 변화라도 놓치지 않고 조기에 개입하는 것이 신경병증의 악화를 막고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일상 속 예방과 관리: 발 관리 5계명 준수해야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의 예방은 곧 일상생활에서의 철저한 발 관리와 직결된다. 전문의들은 당뇨병 환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발 관리 5계명’을 제시한다. 첫째, 매일 미지근한 물로 발을 씻고, 발가락 사이의 물기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습기는 무좀균이나 세균 번식의 온상이 되어 감염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둘째, 발에 보습제를 바르되, 발가락 사이는 피해야 한다. 셋째, 발톱은 일자로 깎아 살을 파고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굳은살이나 티눈은 자가 치료를 시도하지 말고 반드시 전문 의료진에게 맡겨야 한다. 넷째, 자신의 발에 맞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신발을 착용하고, 맨발로 걷는 행위는 절대 피해야 한다. 신발 속 이물질이나 작은 돌멩이에도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매일 발을 꼼꼼히 관찰하여 작은 상처라도 발견 즉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이러한 일상적인 관리는 신경병증으로 인한 감각 소실을 보완하고, 당뇨발로의 진행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책으로 평가된다. 특히 당뇨병 유병 기간이 길거나 혈당 조절이 불량했던 환자일수록 발 관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최근에는 발의 압력을 분산시키는 특수 신발이나 깔창을 활용하여 족부 궤양 발생 위험을 줄이는 보조 요법도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은 만성 고혈당이 초래하는 피할 수 없는 합병증 중 하나이지만, 철저한 혈당 관리와 정기적인 신경 검사, 그리고 일상에서의 세심한 발 관리를 통해 그 진행 속도를 늦추고 치명적인 결과를 예방할 수 있다.
김경래 서울 민병원 내과 대표원장(내분비 내과 전문의)은 “당뇨병 환자에게 발은 ‘제2의 심장’이 아니라 ‘생명선’과 같다”며, “신경병증으로 인한 무감각은 환자에게 안심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치명적인 위험을 알리는 경고이므로, 환자 본인과 가족 모두가 발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장기적인 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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