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병원장협의회 2025 추계학술대회 성료, “AI 도입, ‘책임’과 ‘전략’이 핵심”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물결은 두렵고 낯선 위협이 아니라, 환자 돌봄의 질을 높이고 병원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입니다. 이 자리가 중소병원의 내일을 밝히는 지혜를 모으는 불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한병원장협의회(회장 이상운)가 주최한 ‘2025년 추계학술대회’가 26일 광주광역시 김대중센터에서 전국의 병원장 및 의료 관계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AI 환경에 대응하는 중소병원의 전략’이라는 대주제 아래, 이번 학술대회는 AI가 의료 현장에 가져올 혁신적인 변화를 법률, 정책, 임상, 그리고 병원 경영이라는 4개의 핵심 축으로 나누어 심도 있게 조명했다.
이상운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지난 6월 정권이 바뀌고 의료계의 흐름도 변화했지만, 엄혹한 상황은 여전하다”고 진단하며, “이러한 시기에 AI를 새로운 희망의 도구로 삼아, 의료인의 마음이 환자에게 더 집중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고 대회의 포부를 밝혔다.

AI 도입의 법적 토대 – “AI는 ‘도구’, 최종 책임은 ‘의사'”
학술대회의 포문은 AI 도입 시 병원장들이 가장 우려하는 ‘법적 책임’ 문제에 대한 필수 교육 세션이 열었다.
첫 번째 연자로 나선 법무법인 우리누리의 변창우 대표변호사는 ‘의료법과 연계한 AI 기반 진단 및 치료의 법적 효력’을 주제로, 현행법상 AI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했다. 변 변호사는 “AI 시스템이 환자 증상을 검토해 치료법을 제안하더라도, 현행 의료법상 이는 의료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현재 의료 AI는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보조 도구’로 인식된다”고 강조했다.
변 변호사는 2026년 1월 22일 시행될 ‘인공지능기본법’이 의료 현장에 미칠 영향을 집중 분석했다. 그는 “이 법에 따라 의료 분야 AI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고영향 인공지능(High-Impact AI)’으로 분류된다”며, “AI 사업자에게는 AI 사용 사실의 ‘사전 고지 의무’와 AI 생성물에 대한 ‘표시 의무’ 등 투명성 확보 의무가 부과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고영향 AI 사업자는 위험관리방안 수립, 설명가능성 확보, 사람에 의한 관리·감독 체계 등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
그는 “AI를 활용한 진료 시 의사의 ‘설명의무’ 범위도 중요해진다”며, “AI의 기술적 원리인 ‘블랙박스’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병원이 AI 진료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면 AI가 제안한 치료법의 신뢰성과 한계 등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설명할 필요성이 생긴다”고 조언했다.
오후 필수 교육 세션에서 법무법인 CNE 최청희 대표변호사는 ‘AI 활용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 의료 과실 및 분쟁 해결’ 발표를 통해 더 구체적인 실무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최 변호사는 “단순히 AI가 오진했다는 사실만으로 의사의 과실이 되지는 않는다”면서도 “AI의 진단 결과를 맹신하여 재확인하지 않거나, 오류를 인지하고도 방치한 경우에는 명백한 의료인의 과실 책임이 성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향후 의료 분쟁에서 법원이 ▲AI의 오류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예측가능성) ▲의료인이 의학적으로 결과를 수정할 수 있었는지(통제가능성) ▲그리고 그 검증 과정이 명확히 기록되었는지(기록성)를 핵심 판단 요소로 삼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변호사는 “AI의 사용 여부, 정확도, 오류 가능성을 환자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별개의 불법행위 책임을 유발할 수 있다”며 설명의무 준수를 거듭 강조했다. 또한 “병원 역시 소속 의사의 과실에 대해 민법상 ‘사용자책임’을 공동으로 부담할 수 있다”며, 병원 차원의 대응으로 ▲AI 사용기록 및 판독결과 관리 시스템 구축 ▲의료진 교육 및 내부 표준운영지침(SOP) 마련 ▲오류 발생 시 신속 보고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정책과 전략 – “법률 제정, ‘증거 기반’ 도입 전략 필요”
AI 도입의 법적 기반이 ‘책임’이라면, 정부 정책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김은철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센터장은 ‘AI 기반 의료기기 도입 및 활용에 대한 정부 정책 기조와 전망’ 발표에서, 2025년 1월 24일 세계 최초로 시행되는 ‘디지털의료제품법’의 의미를 역설했다.
김 센터장은 “기존 의료기기법은 하드웨어 중심이어서, 지속적인 성능 개선과 변경이 이뤄지는 AI 소프트웨어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려웠다”며 , “신법은 AI의 빠른 변경 주기를 반영한 ‘전주기 관리’ 체계를 도입한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 법은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디지털의료기기(AI, 로봇 등) ▲디지털융합의약품(의약품+디지털기기) ▲디지털의료·건강지원기기(건강관리, 웰니스) 등 세 가지로 명확히 분류한다. 또한, 허가 단계에서부터 사이버보안 지침 준수를 의무화하고, 허가 후에도 ‘실사용 평가(Real-World Use Evaluation)’를 도입해 실제 의료 현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을 관리하게 된다.
정책적 기반 위에 병원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정중화 교수는 ‘AI 기반 의료시장의 전망과 의료기기의 발전방향’ 발표에서 “AI는 이제 EMR, PACS와 통합되는 ‘워크플로 네이티브’ 제품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병원은 명확한 임상적 성과(KPI)와 재무적 효과(ROI)를 동시에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투자 대비 효과(ROI)가 명확한 분야로 ▲뇌졸중 triage(응급환자 분류 시간 단축) ▲소화기 내시경 CADe(용종 발견률(ADR) 15~20%p 상승) ▲흉부 X선 및 심초음파(판독 지연 해소 및 비전문가 검사 질 향상) 등을 꼽았다.
그는 병원 규모별로 차별화된 도입 전략을 제안했다. 권역·상급종합병원은 응급환자 triage나 전문의의 워크플로 효율화에 집중해야 하는 반면, 중소병원 및 일차의료기관은 당뇨망막 스크리닝을 위한 ‘자율형 AI’나 흉부 X선 판독 보조 AI 등을 도입해 ‘전문의 부족으로 인한 진료 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임상 적용 – “AI는 ‘안전망’, 그러나 ‘환각’ 경계해야”
B룸에서 진행된 ‘최신임상 업데이트’ 세션에서는 AI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가 공유됐다.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 내과 오지선 교수는 ‘의학에서 AI 활용법’을 주제로 AI의 가능성과 명확한 한계를 동시에 제시했다. 오 교수는 “AI는 진단 보조, 환자 상태 악화 예측, 병원 운영 최적화 등에서 의미 있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최근 급부상한 생성형 AI는 의료기록 요약, 환자 질의응답 등을 통해 의료진의 행정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AI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며, ▲학습 데이터의 편향성 문제 ▲판단 근거를 설명하기 어려운 ‘블랙박스’ 문제 ▲특히 생성형 AI가 거짓 정보를 사실처럼 만들어내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능이 저하되는 ‘드리프트(Drift)’ 현상 등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했다. 오 교수는 “AI는 의료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업무 부담과 오류를 줄이는 ‘안전망’으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카카오헬스케어 김준환 이사가 생성형 AI의 다양한 활용법을,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손명희 교수 또한 ‘AI를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발표를 통해, 특히 소아청소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의 적용 사례와 발전 방향을 공유했다.
오후에 이어진 ‘최신임상 업데이트 2’ 세션은 AI 기술의 구체적인 임상 적용과 최신 약물 치료 지견을 다루며 큰 호응을 얻었다.
씨어스테크놀로지 송희석 부사장은 ‘AI를 활용한 환자 상태악화 조기예측 솔루션(스마트 병상 모니터링 솔루션)’을 소개했다. 그는 AI가 환자의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상태 악화를 조기에 감지하는 스마트 모니터링 시스템이, 인력 부족을 겪는 중소병원의 환자 안전 관리에 어떻게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이어, 임상 현장에서 관심이 높은 최신 약물 치료 지견이 공유되었다. 조선대학교 내분비내과 류영상 교수는 ‘GLP-1 기반 비만약물 최신 임상 적용’을 주제로, 최근 비만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GLP-1 작용제의 기전과 효과, 그리고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 등 최신 데이터를 리뷰하며 안전한 처방 및 관리 노하우를 상세히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 김병채 교수는 ‘치매치료의 최신지견’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고령화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환 중 하나인 치매의 최신 진단법과 함께, 최근 FDA 승인을 받아 임상 적용이 시작된 아밀로이드 표적 치료제 등 새로운 치료제들의 데이터를 심층적으로 공유하며, 치매 정복을 위한 의학계의 노력과 향후 전망을 소개했다.

2026년 중소병원 경영 핵심 이슈 – “노무·세무·마케팅”
AI 기술 도입과 별개로, 병원 경영의 근간이 되는 ‘경영 이슈’ 세션은 병원장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다뤘다.
노무법인 미래 정화정 노무사는 ‘2026년 중소병원이 꼭 알아야 할 고용·노무 제도’를 발표하며,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이라도 반드시 준수해야 할 법적 의무를 강조했다. 정 노무사는 “2021년 11월부터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임금명세서 교부’가 의무화되었다”며, “임금 구성항목, 계산방법 등이 명시된 명세서를 이메일, SNS 등으로라도 반드시 교부해야 과태료 처분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근로계약서 서면 명시 및 교부, 주휴일 보장, 퇴직급여제도 설정 등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는 규정들을 재점검할 것을 촉구했다.
‘2026년 세무조사의 최신 방향과 대응전략’을 발표한 삼일회계법인 손철주 전무는 “과거의 무작위 조사가 아닌, 국세청의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패턴 타겟팅’ 조사가 강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손 전무는 중소병원의 3대 국세 리스크로 ▲MSO(병원경영지원회사), 광고회사 등 특수관계법인과의 부당거래 ▲불법 PG사를 이용한 수수료 페이백 구조 ▲갤러리와의 가공 그림 렌탈을 통한 비자금 조성을 꼽았다. 또한 2대 지방세 리스크로 ‘휴면법인’ 및 ‘허위본점’을 이용한 취득세 중과 회피 시도를 지적하며 , “문제가 터진 후의 대응은 효과가 미미하다”며 “사전에 정상적인 거래 구조를 설계하고 계약서, 사진 등 증빙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유일한 대응책”이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광주전남본부 임상희 본부장은 ‘보건 의료 자원 관리’ 발표를 통해 병원 경영의 핵심인 ‘차등제’를 설명했다. 임 본부장은 “입원환자 간호관리료, 요양병원 입원료, 중환자실 간호관리료 등은 병원이 확보한 간호사, 의사 인력 대비 환자 수에 따라 수가가 차등 지급된다”며, “분기마다 이뤄지는 인력 현황 신고를 누락하거나, 휴직자 등을 착오 신고할 경우 수가 감산 및 현지 확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AI는 마케팅 영역에서도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을지대학교 강민수 교수는 ‘AI를 이용한 병원 마케팅 전략’에서 “환자들의 행동 패턴이 ‘지인 추천 후 전화 문의’에서 ‘온라인 리뷰, SNS, 유튜브 교차 검증’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AI 마케팅 도입의 가장 큰 장벽은 기술이 아니라 ‘AI는 거창하다’는 선입견과 의료광고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제도적 장벽”이라며 , “챗GPT를 활용한 콘텐츠 생성, AI 기반 24시간 응대 챗봇 등 ‘작고 빠르게 시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AI라는 기술적 혁신부터 노무, 세무, 수가라는 현실적 경영 문제까지, 중소병원이 나아갈 길을 총체적으로 조망한 이번 학술대회는 AI 시대를 맞이하는 병원장들에게 구체적인 전략과 법적 안전장치를 동시에 제공했다는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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