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이름 승인 제도: 7,000개 목록을 벗어난 이름은 허용되지 않는다
자녀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독특하고 창의적인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부모의 소망은 전 세계 어디서나 흔하다. 그러나 북유럽의 복지국가 덴마크에서는 이러한 부모의 자유로운 작명 권리가 국가의 엄격한 통제 아래 놓인다. 덴마크 정부는 공공장소에서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부모가 정부가 사전에 승인한 약 7,000개의 이름 목록 중에서 골라야 하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만약 이 목록에 없는 이름을 사용하고 싶다면, 부모는 특별한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 과정은 까다롭고 복잡하다.
이러한 덴마크의 ‘이름 승인 제도(Navneloven)’는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개입, 그리고 아동 보호라는 가치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덴마크는 왜 이토록 엄격하게 이름 짓는 행위를 관리하는가? 그리고 이 제도가 덴마크 사회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국가가 이름 짓는 행위를 규제하는 이유: 아동 보호와 문화 보존
덴마크 정부가 이름 승인 제도를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동 보호’에 있다. 정부는 부모가 너무 기괴하거나, 성적으로 모호하거나, 혹은 조롱거리가 될 수 있는 이름을 자녀에게 부여하여 아이의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한다. 덴마크 법무부 산하의 ‘이름 위원회’와 코펜하겐 대학교의 ‘이름 연구소’는 이러한 이름들이 아이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 제도는 1960년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왔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적이 더욱 명확해졌다. 이름은 단순히 개인을 지칭하는 호칭을 넘어,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반이 된다. 따라서 덴마크는 이름이 성별을 명확히 구분해주고, 덴마크어의 철자법과 발음 규칙을 준수하며, 문화적 전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용되도록 규제한다. 예를 들어, 흔치 않은 외래어 이름이나 성별 구분이 불분명한 이름은 승인받기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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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개 목록을 벗어나기 위한 까다로운 절차
현재 덴마크에서 승인된 이름 목록은 약 7,000개로 알려져 있으며, 이 목록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된다. 부모가 이 목록에 없는 이름을 사용하고 싶다면, 먼저 지역 교구 사무소나 관할 행정 기관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신청서는 이후 코펜하겐 대학교의 이름 연구소로 보내져 해당 이름의 언어학적, 문화적 적합성을 심사받는다.
이름 연구소는 신청된 이름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성별에 적합한지, 그리고 덴마크의 명명 전통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지를 면밀히 검토한다. 만약 연구소에서 ‘불가’ 판정을 내리면, 부모는 법무부 산하의 이름 위원회에 최종 항소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수개월이 걸릴 수 있으며, 대부분의 특이한 이름은 최종적으로 거부되는 경우가 많다. 2020년대 들어 외국 이민자 증가로 인해 새로운 이름에 대한 수요가 늘었지만, 심사 기준 자체는 여전히 엄격하게 유지된다.

개인의 자유 vs. 국가의 책임: 끊이지 않는 논쟁
덴마크의 이름 승인 제도는 국제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으며, 개인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 사이의 딜레마를 상징한다. 비판론자들은 이 제도가 부모의 기본적인 자유와 창의성을 침해하며, 국가가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과도하게 개입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글로벌 시대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름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반면, 옹호론자들은 이 제도가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아이들을 보호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덴마크 사회는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의 안녕과 아동의 복지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름 규제 역시 이러한 복지국가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덴마크 국민 대다수는 이 제도가 아이들이 놀림을 당하거나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것을 막아주는 ‘보호 장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유럽 내 다른 국가의 이름 규제 현황
덴마크 외에도 독일, 스웨덴 등 유럽의 여러 국가가 이름 규제 법률을 가지고 있지만, 덴마크만큼 엄격하고 포괄적인 ‘승인 목록’을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이름이 아이에게 명백한 불쾌감을 주거나 부적절할 경우에만 개입하며, 독일 역시 성별을 명확히 구분하도록 요구하는 수준이다.
덴마크의 7,000개 목록 시스템은 이러한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국가 개입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이는 덴마크가 전통적으로 사회적 평등과 안전을 중시하며, 개인의 선택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북유럽 모델의 특징을 명확히 반영한다. 부모의 작명 자유와 아동의 사회적 보호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덴마크가 선택한 길은 국가가 사적인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는 독특한 형태의 복지 시스템을 구축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덴마크의 이름 승인 제도는 단순한 행정 규제가 아니라, 아이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하겠다는 복지국가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이 7,000개의 목록은 덴마크 사회가 추구하는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라는 이상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논의되는 개인의 권리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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