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독 치료의 어두운 역사, 수은, 매독의 구원자인가 파괴자인가? ‘독이 된 약’의 비극을 돌아보다
18세기 유럽의 어느 병원, 매독으로 고통받는 환자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의사가 내미는 처방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바로 수은(Mercury)이었다. 당시 의학계에서 수은은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의 약’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 치료는 환자를 질병에서 구원하기는커녕, 또 다른 지옥으로 몰아넣는 잔혹한 아이러니를 낳았다.
환자들은 매독의 고통과 함께 수은 중독의 극심한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으며, 때로는 치료 자체가 질병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수은은 매독의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비극적인 페이지를 장식한 ‘독이 된 약’으로 기록됐다.

매독의 확산과 수은의 등장: ‘신성한 불’을 잡으려는 절박한 시도
매독은 15세기 말 유럽에 급속도로 퍼지며 ‘신성한 불’ 또는 ‘프랑스 병’이라 불릴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 됐다. 이 질병은 피부 궤양, 발진, 신경계 손상, 그리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성병이었다. 당시 의사들은 매독의 원인이나 치료법에 대해 무지했고, 절박한 상황에서 수은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수은은 이미 고대부터 다양한 질병 치료에 사용돼 왔으며, 특히 매독 초기 증상인 궤양에 수은 연고를 바르거나 경구 투여했을 때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되는 듯한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수은이 트레포네마 팔리둠(매독균)을 죽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긴 했으나, 당시에는 그저 경험적인 관찰에 의존한 처방이었다.
수은 치료는 16세기부터 20세기 초 페니실린이 등장하기 전까지 매독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치료 방식은 다양했는데, 수은을 연고 형태로 피부에 바르거나(마찰법), 알약으로 복용하거나, 심지어는 수은 증기를 쐬는 방식(훈증법)까지 사용됐다. 특히 훈증법은 환자를 밀폐된 공간에 두고 수은을 가열하여 증기를 흡입하게 하는 방식으로, 환자에게 고통과 함께 치명적인 독성을 빠르게 전달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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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의 대가: 수은 중독의 끔찍한 부작용
수은은 독성 물질이며, 매독 치료에 사용된 용량은 독성 용량과 거의 구분이 불가능했다. 당시 의사들은 환자의 몸에서 침이 과도하게 흐르거나(타액 분비), 구토를 하는 것을 ‘독소가 빠져나가는 증거’로 여기며 오히려 치료가 잘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수은 중독의 징후였다. 수은 중독의 부작용은 매독 자체의 증상만큼이나 끔찍했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구강 내 문제였다. 환자들은 극심한 구내염과 잇몸 출혈을 겪었고, 치아가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한, 수은은 신장과 신경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환자들은 신장 기능 부전으로 고통받았으며, 신경계 손상으로 인해 떨림(진전), 언어 장애, 정신 착란, 심지어 영구적인 정신 질환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수은 중독 증상 중 일부(신경계 문제)는 매독 3기 증상과 혼동되기도 했기 때문에, 의사들은 환자의 악화가 매독 때문인지 수은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당시 “매독으로 죽는 것보다 수은 치료로 죽는 것이 더 흔하다”는 냉소적인 말이 돌았을 정도였다.
조정호 강남골드만비뇨의학과의원 대표원장은 “수은 치료의 역사는 당시 의학이 얼마나 절박했고, 안전성이 결여된 채 관행적으로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잔혹한 사례”라며, “매독균을 죽이는 독성을 가졌으나 환자의 신체까지 파괴했던 수은과 달리, 현대의 페니실린 치료는 압도적인 효과와 최소한의 부작용을 제공하는 인류 과학사의 위대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수은의 퇴장과 현대 의학의 승리: 살바르산과 페니실린의 등장
수은 치료의 비효율성과 위험성에 대한 비판은 19세기 후반부터 점차 커졌다. 과학자들은 수은보다 덜 유독하면서 효과적인 치료제를 찾기 시작했다. 1910년, 독일의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는 매독균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최초의 화학요법제인 살바르산(Salvarsan, 비소 화합물)을 개발했다. 살바르산 역시 독성이 있었지만, 수은보다는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매독 치료의 역사를 완전히 바꾼 것은 1940년대 초, 페니실린의 등장이다. 페니실린은 매독균에 대한 탁월한 살균 효과를 보였으며, 수은이나 살바르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작용이 적었다.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과 보급은 수백 년간 인류를 괴롭혀 온 매독을 치료 가능한 질병의 범주로 끌어내렸다. 이로써 수은은 매독 치료의 역사에서 완전히 퇴출됐다. 수은이 매독 치료에 사용된 기간은 약 400년 이상이었으나, 그 역사는 고통과 중독으로 얼룩진 비극의 기록이었다.
과거의 잔혹한 교훈: 현대 의료 윤리와 공중 보건의 중요성
수은 치료의 역사는 현대 의학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첫째, 치료제는 질병을 치료하는 동시에 환자의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수은 치료는 환자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독성으로 고통받게 했다. 둘째, 과학적 검증의 중요성이다. 당시 수은 사용은 엄격한 임상시험이나 독성학적 이해 없이 경험과 관습에 의존했다. 현대 의학은 철저한 임상시험과 부작용 모니터링을 통해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오늘날 매독은 페니실린 덕분에 조기 진단과 치료가 매우 용이해졌다. 하지만 성병 발병률이 다시 증가하는 추세는 공중 보건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수백 년 전, 인류가 수은이라는 ‘독이 된 약’에 의지해야 했던 비극적인 역사는, 우리가 현재 누리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이 얼마나 소중한 과학적 성과인지를 되새기게 한다. 수은, 매독의 구원자인가 파괴자인가? 역사는 명확히 후자였음을 증명한다.
조정호 원장은 “수백 년 전 수은 치료라는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매독이나 기타 성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매독 발병률이 다시 증가하는 추세는 공중 보건 시스템이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고 안전하고 효과적인 현대 치료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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