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장비와 화물은 그대로, 선원만 사라진 ‘완벽한 유령선’: 메리 셀레스트호 미스터리 재조명 배경
1872년 12월 5일, 포르투갈령 아조레스 제도 인근 대서양을 항해하던 영국 상선 데이 그라티아(Dei Gratia)호의 선원들은 돛이 찢어진 채 표류하는 한 브리간틴(Brigantine)선을 발견했다. 이 배는 뉴욕에서 이탈리아 제노바로 산업용 알코올을 싣고 가던 메리 셀레스트(Mary Celeste)호였다. 데이 그라티아호의 선원들은 구조를 위해 배에 올랐으나, 그들이 마주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배는 항해를 막 멈춘 듯 완벽하게 보존돼 있었으며, 6개월치 식량과 선원들의 개인 소지품, 1,700여 통의 화물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선장 벤자민 브릭스(Benjamin Briggs)와 그의 아내, 두 살 난 딸, 그리고 7명의 선원 등 총 10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폭풍우나 해적의 습격 흔적도 없었고, 구명정 한 척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이처럼 완벽한 침묵 속에 선원들만 증발한 사건은 1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해양 역사상 가장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끊임없이 논란을 일고 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단지 사람이 없을 뿐: 발견 당시의 상황
메리 셀레스트호는 발견 당시 유령선(Ghost Ship)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기이한 상태를 보였다. 배의 항해 장비는 대부분 제자리에 있었으나, 나침반은 제자리를 벗어나 깨져 있었고, 선장실 책상 위에는 항해 일지가 펼쳐져 있었다. 일지의 마지막 기록은 1872년 11월 25일, 아조레스 제도에서 서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지점이었다. 이 기록 이후 10일간의 항해 기록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더욱 이상한 점은 선실 테이블에 식사가 준비된 흔적이나, 선원들의 개인 물품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선원들이 급박한 상황에 처했으나, 그것이 폭력적인 상황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누군가 배를 버리고 떠나야 할 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그들이 떠나기 전까지는 일상적인 생활이 유지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배의 가장 중요한 화물인 1,701통의 산업용 주정(알코올)은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그대로 적재돼 있었다. 만약 해적이나 강도가 침입했다면 귀중품이나 화물을 약탈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화물은 온전했다. 또한, 데이 그라티아호의 선장 모어하우스는 메리 셀레스트호의 펌프가 부분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약 3.5피트(약 1.07m) 정도의 물이 선창에 고여 있었다고 보고했다. 이는 배가 침몰할 정도의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선원들에게는 불안감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선원들을 바다로 내몬 결정적 순간에 대한 과학적 추론
메리 셀레스트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지난 150년간 수많은 가설이 제기됐다. 초기에는 해적의 습격이나 선원들의 반란(Mutiny)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폭력의 흔적이 전혀 없어 곧 폐기됐다. 현재까지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해양 지진(Seaquake) 및 화물 폭발 공포’와 ‘독성 증기’ 관련 이론이다.
첫 번째 가설은 화물인 산업용 알코올에 초점을 맞춘다. 알코올 증기는 밀폐된 공간에서 폭발할 위험이 매우 높다. 일부 과학자들은 배가 항해 중 해양 지진이나 급격한 기상 변화로 인해 알코올 통의 마개가 느슨해졌고, 이로 인해 독성 증기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선장 브릭스는 폭발 위험을 감지하고, 배가 폭발하기 전에 가족과 선원들을 구명정에 태워 잠시 배에서 떨어져 대기하려 했을 수 있다. 구명정은 밧줄로 본선에 연결된 채 대기했을 것이며, 이들이 본선으로 돌아오기 전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나 밧줄의 파손으로 인해 구명정이 본선에서 멀리 표류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선원들이 자발적으로 배를 버렸다는 사실과, 배에 폭발 흔적이 없다는 점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분석으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가설은 해양 지진 자체에 의한 공포다. 1872년 대서양에서는 해저 지진 활동이 활발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지진으로 인해 선체가 심하게 흔들리거나 파손되는 소리가 났을 수 있다. 선장 브릭스는 배가 곧 침몰할 것이라는 오판을 하고, 구명정에 탑승을 명령했을 수 있다. 당시의 항해 기술과 장비로는 해저 지진의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으므로, 선장의 판단 착오가 비극을 낳았다는 해석이다.

미궁 속 진실, 그리고 아서 코난 도일이 만든 전설
메리 셀레스트호는 해양 보험금 청구 재판 과정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나, 선원들의 실종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미제 사건으로 종결됐다. 이 배는 이후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으며, 1885년 아이티 해안에서 난파됐다. 하지만 이 난파 역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고의적인 침몰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명확히 입증되지는 못했다.
이 사건이 오늘날까지도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문학적 영향이 크다. 특히 셜록 홈즈의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은 1884년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단편 소설 ‘제이 호프 디킨슨의 진술(J. Habakuk Jephson’s Statement)’을 발표했다. 도일은 소설에서 배의 이름을 ‘마리 셀레스트(Marie Celeste)’로 바꾸고, 실종 원인을 복수심에 불타는 흑인 선원의 소행으로 묘사했다. 비록 소설 속 내용은 허구였으나,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메리 셀레스트호는 ‘유령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으며, 해양 괴담과 미스터리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이처럼 문학 작품을 통해 사건이 재해석되면서, 단순한 해상 사고가 아닌 영원한 전설로 승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던지는 해양 안전의 교훈
메리 셀레스트호의 미스터리는 현대 해양 과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연구 과제를 던진다. 선원들이 자발적으로 배를 버릴 만큼 공포를 느꼈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발생할 수 있는 해상 재난 상황에서의 인간 심리와 대처 방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화물 안전 관리와 선박 내 독성 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선원들의 실종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메리 셀레스트호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과, 미지의 공포 앞에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최악의 결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다. 이 유령선은 150년 전 대서양의 침묵을 통해, 현대 항해사들에게도 여전히 경각심을 주는 해양 안전의 교훈으로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