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탕과의 전쟁, 비만세(설탕세)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비만율과 당뇨병 유병률이 급증하면서, 각국 정부는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혁신적인 정책 수단을 모색하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것이 바로 ‘비만세’ 또는 ‘설탕세’로 불리는 가당 음료 대상 소비세다. 이 세금은 단순히 재정 수입을 늘리는 것이라기 보다는 소비자의 구매 행동을 변화시켜 설탕 함유량이 높은 음료의 소비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설탕세 도입을 권고했으며, 멕시코, 영국 등 여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이를 성공적으로 시행하며 공중 보건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됐다. 하지만 이 정책은 저소득층에게 불균형적인 부담을 지우는 역진성 문제, 산업계의 반발, 그리고 소비자들이 설탕이 덜 든 다른 고칼로리 식품으로 대체하는 ‘대체 효과(Substitution Effect)’ 등 여러 논란에 직면해 있다.
이 글에서는 설탕세 도입을 추진하는 국가들의 현황과 그들이 달성한 구체적인 성과, 그리고 정책 설계 시 고려해야 할 주요 쟁점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설탕세 도입, 전 세계적인 보건 정책 혁신으로 자리 잡다
설탕세는 공중 보건 문제 해결을 위해 재정 정책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가당 음료(SSBs, Sugar-Sweetened Beverages)에 세금을 부과하여 가격을 인상하고, 이를 통해 소비를 억제하며 제조업체의 제품 재구성(Reformulation)을 유도하는 강력한 정책 도구다.
이 정책의 핵심은 세금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수입을 건강 증진 프로그램이나 의료 시스템 개선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50개국 이상이 설탕세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논의하고 있으며, 이는 더 이상 일부 국가의 실험적인 정책이 아니라 글로벌 보건 정책의 주류 트렌드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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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세 도입의 주요 목적과 배경
설탕세가 도입되는 배경에는 만성 질환의 증가와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라는 절박한 현실이 있다. 가당 음료는 영양가는 거의 없으면서 칼로리가 높아 비만, 제2형 당뇨병, 심혈관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세금 부과를 통해 이러한 외부 비용(External Cost)을 내부화하고, 시장 실패를 교정하고자 한다. 첫째, 소비 행태 변화 유도다. 가격 탄력성을 활용하여 소비자들이 설탕 함량이 낮은 제품이나 물, 우유 등 건강한 대안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세금 부과 후 가당 음료의 판매량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됐다.
둘째, 제품 재구성 촉진이다. 세금 부과 기준을 설탕 함량에 따라 차등화할 경우, 음료 제조사들은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설탕 함량을 낮추도록 강제된다. 이는 소비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전체 시장의 평균 설탕 섭취량을 줄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된다.
셋째, 공공 재원 확보다. 징수된 세수는 보건 예산, 학교 급식 개선, 비만 예방 캠페인 등 공중 보건 사업에 투입되어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사용된다. 이는 설탕세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주요 국가별 설탕세 도입 사례와 구체적인 효과
설탕세 정책은 국가별 경제 상황과 식습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설계됐으며, 그 결과 역시 주목할 만하다. 특히 멕시코와 영국은 설탕세의 효과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멕시코 (2014년 1월 도입):
멕시코는 세계적으로 비만율이 높은 국가 중 하나였으며, 2014년 가당 음료 1리터당 1페소(약 10%)의 세금을 부과했다. 도입 직후인 2014년 한 해 동안 가당 음료 구매량이 평균 6% 감소했으며, 특히 저소득층에서는 10% 이상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2015년에는 감소 폭이 10%를 넘어섰다. 이 세금은 소비자가 더 건강한 선택(예: 생수 구매 증가)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됐다.영국 (2018년 4월 도입):
영국은 ‘소프트 드링크 산업 부담금(SDIL)’이라는 이름으로 설탕 함량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과하는 계층적 시스템을 도입했다. 설탕 100ml당 5g 이상이면 낮은 세율, 10g 이상이면 높은 세율을 적용했다. 이 정책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재구성 효과’였다. 세금 시행 전까지 시장에 출시된 음료의 50% 이상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설탕 함량을 낮추는 방향으로 재구성됐다. 이는 설탕세가 소비자의 행동뿐만 아니라 제조업체의 생산 전략까지 바꿀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다.프랑스 (2012년 도입):
프랑스는 유럽연합(EU) 국가 중 초기에 설탕세를 도입한 국가 중 하나다. 초기에는 단일 세율을 적용했으나, 2018년에는 설탕 함량에 비례하여 세금을 부과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이 정책은 가당 음료 소비를 줄이는 데 기여했으며, 특히 청소년층의 설탕 섭취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됐다.남아프리카 공화국 (2018년 4월 도입):
남아공은 ‘건강 증진 부담금(HPL)’을 도입하여 100ml당 4g을 초과하는 설탕에 세금을 부과했다. 도입 후 1년 만에 가당 음료 판매량이 28.8% 감소했으며, 특히 설탕 함량이 높은 제품의 판매 감소가 두드러졌다. 남아공 정부는 이 세수를 공공 보건 프로그램에 전용하여 건강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고자 했다.
설탕세의 경제적 영향과 논란점
설탕세는 공중 보건 개선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여러 논란을 야기한다.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러한 비판점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역진세 논란: 설탕세는 저소득층의 가계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역진적(Regressive)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즉,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더 큰 경제적 부담을 지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저소득층이 가당 음료를 더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 있어 건강 개선 효과 또한 저소득층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제기된다.
산업계의 반발 및 일자리 영향: 음료 산업 및 관련 유통업계는 세금 부과가 매출 감소와 공장 폐쇄,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력하게 반발한다. 영국 사례처럼 제조업체가 제품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경우 일자리 감소는 제한적일 수 있으나, 세금 회피가 어려운 구조에서는 경제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대체 효과(Substitution Effect): 소비자들이 세금으로 인해 비싸진 가당 음료 대신, 설탕세가 부과되지 않는 다른 고칼로리 식품(예: 과자, 빵, 아이스크림)이나 주류를 더 많이 소비할 경우 정책 효과가 희석될 수 있다. 따라서 설탕세 정책은 다른 식품군에 대한 포괄적인 영양 정책과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설탕세의 성공을 위한 제도적 설계 방안
설탕세가 단순한 징벌적 세금이 아닌, 실질적인 공중 보건 도구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설계가 필수적이다. 성공적인 정책 도입을 위해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핵심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계층적 세율 구조 채택: 설탕 함량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과하는 계층적 구조는 제조업체의 재구성을 유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이는 단순히 특정 제품을 비싸게 만드는 것을 넘어, 시장 전체의 설탕 함량을 낮추는 구조적 변화를 촉진한다.
세수 사용의 투명성 및 전용: 징수된 세금을 보건 분야에 명확히 전용(Earmarking)하고 그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멕시코의 경우, 세수를 학교 내 건강한 식습관 교육 프로그램 등에 사용함으로써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평가: 세금 도입 후 소비 행태, 제조업체의 반응, 건강 지표 변화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평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책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예상치 못한 대체 효과나 부작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포괄적인 건강 정책과의 연계: 설탕세만으로는 비만 문제 전체를 해결할 수 없다. 학교 내 가당 음료 판매 금지, 건강한 식품에 대한 보조금 지급, 영양 정보 표시 의무화 등 포괄적인 공중 보건 전략의 일부로 통합되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설탕세는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비만과 만성 질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하고 실질적인 정책 수단으로 입증됐다. 멕시코와 영국 등 선도적인 국가들의 사례는 세금 부과가 소비 감소와 제조업체의 제품 재구성이라는 두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정책 시행 시 발생할 수 있는 역진세 논란이나 산업계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계층적 세율 구조와 세수 전용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수적이다. 향후 설탕세는 단순히 세금 징수라는 차원을 넘어,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속 가능한 보건 시스템 구축의 핵심 축으로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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