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독이 될 수 있다, 생명의 근원 ‘물’, 과연 안전한가?
뜨거운 여름날, 극한의 훈련을 마친 마라톤 선수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우리는 흔히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많이 마실수록 건강에 좋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선수가 단 몇 시간 만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면? 이는 단순한 탈수가 아니라, 물이 독이 되어 인체를 공격하는 ‘물 중독(Water Intoxication)’ 현상일 수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물이 어떻게 치명적인 독으로 변할 수 있는지, 그 과학적 메커니즘과 위험성을 심층적으로 파헤친다.

물 중독의 본질: 혈액 속 나트륨 농도 파괴하는 저나트륨혈증
물 중독은 의학적으로 ‘저나트륨혈증(Hyponatremia)’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인체는 혈액 속 나트륨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항상성을 갖고 있다. 나트륨은 세포 내외의 수분 균형을 조절하는 핵심 전해질이다. 그러나 단시간 내에 신장이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하는 과도한 양의 물이 유입되면, 혈액이 희석되면서 나트륨 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혈중 나트륨 농도가 리터당 135mEq 이하로 떨어지면 저나트륨혈증으로 진단한다.
나트륨 농도가 낮아지면, 인체는 삼투압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혈액 속의 물을 세포 안으로 밀어 넣는다. 특히 뇌세포는 이 삼투압 변화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이 뇌세포로 과도하게 유입되면 뇌세포가 팽창하고, 이는 곧 뇌부종(Cerebral Edema)으로 이어진다. 두개골 안에 갇힌 뇌가 부풀어 오르면 압력이 상승하고, 두통, 구토, 혼란 등의 초기 증상을 넘어 발작, 혼수상태,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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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물의 역설: 신장의 처리 능력과 치사량의 경계
그렇다면 물의 치사량은 정확히 얼마일까? 이는 개인의 신장 기능, 체중, 활동량, 그리고 물을 마시는 속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일률적인 수치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건강한 성인의 신장이 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수분량은 대략 0.8리터에서 1리터 사이다. 이 처리 속도를 훨씬 초과하여 물을 마실 경우 위험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체중 70kg의 성인 기준, 수 시간 내에 5리터에서 10리터 이상의 물을 마시면 치명적인 저나트륨혈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07년 미국에서 물 마시기 대회에 참가했던 한 여성이 7.5리터의 물을 단시간에 마신 후 사망한 사례는 물 중독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물 중독은 단순히 물을 많이 마시는 행위 자체보다, ‘단시간에’ 과도하게 마시는 속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윤호 윤호21병원 병원장은 “신장은 일정 수준 이상의 수분을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히 극한 환경에서 땀을 많이 흘린 후에는 전해질이 없는 순수한 물을 급하게 마시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며, “나트륨이 이미 고갈된 상태에서 물만 보충하면 혈액 희석이 가속화되어 저나트륨혈증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라고 강조했다.

마라토너와 특수 환경 근무자 등 고위험군 주의보
물 중독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드물지만, 특정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인 위험으로 다가온다. 가장 대표적인 고위험군은 장거리 마라톤 선수나 철인 3종 경기 참가자들이다. 격렬한 운동 후 땀으로 나트륨을 많이 배출한 상태에서, 갈증 때문에 전해질 보충 없이 순수한 물만 과도하게 마실 경우 저나트륨혈증에 매우 취약해진다.
또한, 군대 훈련이나 극한의 노동 환경에서 물 섭취를 강요받거나, 특정 정신과적 질환(예: 심인성 다음증)을 앓는 환자들도 위험군에 속한다. 일부 이뇨제나 특정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에도 신장의 수분 배출 능력이 저하되어 물 중독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이들은 물을 마실 때 단순히 양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전해질 균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안전한 수분 섭취를 위한 가이드라인: 갈증에 집중하라
물 중독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체의 자연스러운 신호인 ‘갈증’에 집중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억지로 정해진 양을 채우기보다는 갈증을 느낄 때마다 적당량을 마시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격렬한 운동 중이거나 장시간 땀을 흘렸을 때는 순수한 물 대신 스포츠 음료나 전해질이 포함된 음료를 섭취하여 나트륨과 기타 전해질을 함께 보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물을 마실 때는 한 번에 많은 양을 들이켜기보다는, 시간당 1리터를 넘지 않도록 나누어 마시는 습관이 중요하다. 물 중독의 초기 증상인 두통, 메스꺼움, 구토 등이 나타날 경우 즉시 물 섭취를 중단하고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생명의 근원인 물이지만, 과유불급의 원칙은 여기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물의 치명적인 역설을 이해하고 안전하게 수분을 관리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핵심이 됐다.
이윤호 윤호21병원 병원장은 “일반적인 생활 환경에서는 물 중독이 흔치 않지만, 고강도 운동 후나 폭염 속에서는 전해질 균형을 잃기 쉽다”며 “수분 섭취 시 소금이나 전해질 보충을 병행하고, 특히 신장 기능이 약한 노인이나 특정 질환자는 의사와 상담하여 하루 적정 수분 섭취량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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