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트에서 라면이 누들로 팔리지 않는다: 5.5% 계란 고형물 규정의 비밀. 미국 라벨링 법규: ‘라면’과 ‘누들’의 차이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아시아산 인스턴트 라면 제품들이 포장지에 ‘누들(Noodle)’ 대신 ‘라면(Ramen)’ 또는 ‘라면 누들 수프(Ramen Noodle Soup)’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배경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엄격한 식품 표준 규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규정은 단순한 언어적 선택이 아닌, 제품의 성분 구성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특히, 면 제품에 대한 ‘표준 정체성(Standard of Identity)’을 정의하는 연방 규정은 특정 성분의 최소 함량을 명시하고 있다.
미국 연방법 21 CFR 139.110에 따르면, ‘누들’ 또는 ‘에그 누들(Egg Noodle)’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건조 중량을 기준으로 최소 5.5% 이상의 계란 고형물(Egg Solids)을 포함해야 한다. 이는 전통적인 이탈리아식 파스타나 일부 유럽식 면류를 염두에 둔 규정으로, 밀가루와 물, 그리고 알칼리성 염수(Kansui)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아시아식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 방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아시아 라면은 제조 과정에서 계란을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하더라도 5.5%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규제 환경은 글로벌 식품 제조사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라벨링 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게 만들었다. 법적 정의를 충족하지 못하는 제품에 ‘누들’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경우, 이는 미국 식품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통관상의 문제나 소비자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제조사들은 법적 위험을 피하고 제품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일본어에서 유래한 고유 명칭인 ‘라면(Ramen)’을 사용하거나, 제품의 형태를 설명하는 ‘라면 누들 수프’와 같은 우회적인 표현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엄격한 ‘면’ 표준 정체성
미국 FDA는 소비자가 제품의 성분과 품질에 대해 오인하지 않도록 식품의 명칭별로 구체적인 표준 정체성을 설정하고 있다. 이 기준은 1938년 제정된 연방 식품·의약품 및 화장품법(FD&C Act)에 근거하며, 특히 ‘마카로니 제품(Macaroni Products)’ 카테고리 내에서 면류의 정의를 명확히 규정한다. 이 규정의 핵심은 특정 필수 성분의 최소 함량을 강제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에그 누들’은 5.5%의 계란 고형물을 요구하며, 이는 면의 질감과 영양적 특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됐다.
이러한 규정은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전통적인 파스타 제품에는 쉽게 적용될 수 있지만, 아시아 국가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수출되는 인스턴트 라면에는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아시아 라면은 면을 튀기거나 건조하는 과정에서 계란 대신 밀가루의 글루텐 구조를 강화하는 알칼리성 첨가물을 주로 사용한다. 따라서 미국 법규상 ‘누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제조 공정을 변경하거나, 계란 고형물을 추가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 만약 제조사가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누들’이라고 표기할 경우, 이는 ‘오표시(Misbranding)’에 해당하여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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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라면, ‘라면’ 명칭을 선택한 실용적 이유
아시아 식품 제조사들이 미국 시장에서 ‘누들’ 대신 ‘라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법적 준수와 마케팅 전략을 결합한 실용적인 선택이다. ‘라면’은 FDA의 표준 정체성 규정에 정의되지 않은, 즉 규제 대상이 아닌 고유 명칭(Common or Usual Name)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제조사는 계란 고형물 함량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더라도 제품을 판매하는 데 법적인 문제가 없다.
더 나아가, 1990년대 이후 K-푸드와 J-푸드의 확산과 함께 ‘라면(Ramen)’이라는 단어 자체가 특정 종류의 인스턴트 면 요리를 지칭하는 국제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마케팅 효과도 가져왔다. 즉, 제조사들은 법적 리스크를 회피하는 동시에,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라면’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하여 제품을 포지셔닝하는 이중 효과를 얻게 됐다. 이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은 ‘누들’이 아닌 ‘라면’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인스턴트 면 제품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됐다.

글로벌 식품 무역과 규제 장벽의 복잡한 관계
미국의 5.5% 계란 고형물 규정은 단순히 라벨링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제 식품 무역에서 비관세 장벽의 한 형태로 작용한다. 각 나라마다 식품 안전과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고유의 표준 정체성 규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러한 차이는 수출입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발생시킨다. 특히, 아시아 라면 제조사들은 미국 수출용 제품에 대해 국내 판매용 제품과 다른 라벨링 및 성분 구성을 적용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됐다.
일부 제조사들은 미국 시장의 규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실제로 계란 성분을 추가하거나, 면의 제조 방식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하지만, 이는 제품의 고유한 맛과 질감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쉽게 실행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법적 정의를 회피하는 명칭 선택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규제 차이는 국제적인 식품 표준화 논의가 필요함을 시사하며, 특히 빠르게 성장하는 K-푸드와 같은 글로벌 품목에 대한 유연한 규제 해석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 혼란 방지와 라벨링의 투명성
FDA의 엄격한 라벨링 규정은 궁극적으로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소비자가 ‘누들’이라고 기대하는 제품에는 최소한의 계란 성분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제품의 영양적 가치와 품질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발생한 ‘라면’과 ‘누들’의 구분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내 아시아 식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FDA 역시 이 카테고리에 대한 규제 해석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5.5% 계란 고형물 기준은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제조사들이 라벨링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제조사들은 제품의 성분 목록(Ingredient List)에 계란 성분 유무와 함량을 명확히 표기하고, ‘라면’이라는 명칭을 통해 제품의 특성을 정확히 전달함으로써 소비자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연방법에 따른 면 제품의 엄격한 정의는 글로벌 식품 제조사들에게 독특한 라벨링 과제를 안겨줬다. 5.5% 계란 고형물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아시아 라면은 법적 준수를 위해 ‘라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으며, 이는 미국 시장에서 아시아 인스턴트 면류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규제 환경은 앞으로도 국제 식품 무역에서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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