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2월 11일, 라테라노 조약으로 공고해진 바티칸 비밀 기록 보관소의 위상
바티칸 시국 지하 깊숙한 곳, 수백 년간의 침묵과 비밀이 응축된 공간이 존재한다. 이곳은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궤적을 뒤바꿀 수 있는 금단의 지식과 교황청의 사적인 진실이 봉인된 거대한 아카이브다.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미스터리의 근원지로 묘사됐던 ‘바티칸 비밀 기록 보관소(Vatican Secret Archives)’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전 세계 역사학자와 음모론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보관소의 위상이 결정적으로 공고해진 시점은 1929년 2월 11일이다. 이탈리아와 교황청 간에 체결된 라테라노 조약(Lateran Treaty)은 바티칸 시국을 독립된 주권 국가로 인정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조약 체결과 함께 교황청은 세속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했고, 수천 년간 축적해 온 방대한 문서들을 국가 주권의 보호 아래 두게 됐다. 이로 인해 바티칸 비밀 기록 보관소는 단순한 교황청의 행정 기록 보관소를 넘어, 독립된 주권 국가의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국립 기록 보관소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85km 서가에 담긴 교황청의 모든 것
바티칸 비밀 기록 보관소는 그 규모 면에서 압도적이다. 총 서가 길이가 85km에 달하며, 이는 로마 시내를 가로지르는 지하철 노선보다 긴 거리다. 이곳에는 12세기부터 현재까지 약 1200년 동안 교황청이 생산하고 수집한 공식 문서, 법률 문서, 외교 서신, 그리고 교황들의 사적인 기록물들이 보관돼 있다. 이 기록들은 서유럽 역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종교, 정치, 문화 교류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보관소 내에는 역사적 반전을 담은 문서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17세기 과학 혁명의 상징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종교 재판 기록이 있다. 태양 중심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이단 판결을 받았던 갈릴레오 재판의 모든 과정과 관련 서신들이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또한,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처형된 스코틀랜드의 여왕 마리아 스튜어트가 처형 직전 교황에게 보낸 편지 등, 당대 유럽 왕실의 권력 투쟁과 종교적 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서들이 보관됐다. 이처럼 보관소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당대 권력자들의 고뇌와 결정이 담긴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비밀’이라는 이름이 주는 미스터리와 접근성 변화
보관소의 원래 명칭은 라틴어로 ‘아르키비움 시크레툼 바티카눔(Archivum Secretum Vaticanum)’이었다. 여기서 ‘시크레툼(Secretum)’은 오늘날의 ‘비밀(Secret)’이라는 의미보다는 ‘사적(Private)’ 또는 ‘개인적(Personal)’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즉, 교황의 개인적인 기록 보관소라는 뜻이었으나, 대중에게는 ‘바티칸 비밀 기록 보관소’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미스터리한 추측을 낳았다.
과거에는 극히 제한된 학자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으나, 교황청은 기록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점차 공개 범위를 확대해 왔다. 특히 2019년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 보관소의 명칭을 ‘바티칸 사도 기록 보관소(Vatican Apostolic Archive)’로 변경하며, ‘비밀’이라는 단어가 주는 폐쇄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현재는 특정 기간(보통 교황 사망 후 75년)이 지난 문서에 한해 전 세계 역사학자들에게 접근이 허용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교황 비오 12세와 관련된 문서들이 공개돼, 당시 교황청의 홀로코스트 대응에 대한 역사적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미공개 문서에 대한 끊임없는 추측과 인류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
바티칸이 제한적으로 문서를 공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방대한 양의 문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미스터리를 증폭시킨다. 학계와 대중 사이에서는 이 미공개 문서들 속에 인류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나, 기독교 교리의 근본을 뒤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미공개 기록,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 기록, 혹은 고대 문명에 대한 금단의 지식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물론 바티칸 측은 대부분의 미공개 문서는 단순한 행정 기록이거나 민감한 개인 정보가 포함된 서신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수천 년간 유럽의 정신적, 정치적 중심지였던 교황청의 기록 보관소라는 특성상, 미공개 문서가 갖는 역사적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종교개혁 시기나 십자군 전쟁과 같이 논란이 많은 시대의 교황청 내부 결정 과정이 담긴 기록들은 여전히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역사적 진실을 향한 바티칸 비밀 기록 보관소의 역할
바티칸 비밀 기록 보관소는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역사적 진실을 탐구하는 중요한 장소다. 보관소의 제한적 공개는 교황청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역사적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학자들은 여전히 접근의 폭과 속도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문서가 디지털화되지 않은 상태이며, 접근 허용 기간이 길어 연구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바티칸 비밀 기록 보관소는 인류가 스스로의 과거를 얼마나 투명하게 마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대와 같다. 교황청은 기록 보관소의 명칭을 변경하며 투명성을 강조했지만, 진정한 투명성은 모든 학자들이 시간의 제약 없이 기록에 접근할 수 있을 때 완성될 것이다. 이 85km의 서가에 잠든 기록들은 단순한 교황청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의 잃어버린 기억이자,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의 조각들이다. 이러한 기록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세상의 빛을 보게 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