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기 너무 일찍 태우면 발달 저해, 육아 편의 넘어선 아이 성장의 딜레마
생후 6개월 전후의 아기를 둔 부모들에게 보행기(Baby Walker)는 잠시나마 육아의 수고를 덜어주는 ‘구원자’처럼 여겨진다. 아이가 보행기에 앉아 집 안을 스스로 이동하는 모습은 부모에게 큰 만족감을 주지만, 소아 발달 전문가들은 이 편리함이 아이의 필수적인 운동 발달 단계를 건너뛰게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비정상적인 보행 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특히 아이가 스스로 앉거나 기는 단계를 완전히 숙달하기 전에 보행기에 의존하게 되면, 근육 발달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까치발 걸음’과 같은 이상 보행 패턴이 고착될 위험이 매우 높다. 보행기는 아이의 걷기 훈련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발달 지연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보행기가 유발하는 ‘까치발 걸음’의 메커니즘
보행기 사용이 발달에 미치는 가장 흔하고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는 ‘까치발 걸음’ 또는 ‘발끝 보행(toe-walking)’ 습관의 형성이다. 아이가 보행기에 앉게 되면, 체중이 보행기 프레임에 분산돼 스스로 몸무게를 완전히 지탱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로 인해 아이는 발바닥 전체를 땅에 딛지 않고 발가락 끝이나 발의 앞부분만 이용해 미는 동작을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반복적인 움직임은 종아리 근육(비복근, 가자미근)을 과도하게 긴장시키고 단축시킨다. 반면, 보행에 필수적인 정강이 앞쪽 근육(전경골근)과 발목 관절의 유연성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다.
소아 재활 의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보행기를 일찍, 그리고 장시간 사용한 아동일수록 발목의 배측 굴곡(발등을 정강이 쪽으로 당기는 동작) 범위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아이가 보행기를 벗어나 스스로 걸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까치발 보행이 습관으로 굳어지기 쉽다. 이는 단순한 걸음걸이 문제가 아니라, 균형 감각과 자세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쳐 추후 운동 능력 발달에 복합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필수 발달 단계의 건너뛰기: 앉기와 기기의 중요성
인간의 운동 발달은 순차적인 단계를 거치며 진행된다. 목 가누기(3개월) → 뒤집기(4~5개월) → 혼자 앉기(6~8개월) → 기기(7~10개월) → 붙잡고 서기(9~12개월) → 독립 보행(12~15개월)의 순서가 일반적이다. 이 중 ‘앉기’와 ‘기기’ 단계는 독립적인 걷기를 위한 핵심 기초 능력을 형성한다. 특히 기기(Crawling)는 좌우 뇌의 협응력을 높이고,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코어 근육(복근, 등 근육)과 어깨, 골반 근육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보행기에 너무 일찍 태우면 아이는 이러한 중요한 바닥 놀이(Floor Time) 시간을 빼앗긴다. 아이는 기기나 앉기를 통해 얻어야 할 공간 지각 능력, 균형 감각, 그리고 코어 근육의 힘을 보행기에 의존함으로써 발달시키지 못한다. 보행기는 아이의 몸을 지지해주기 때문에, 아이는 불안정한 자세에서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보행기를 탄 상태에서는 움직일 수 있지만, 보행기 밖에서는 독립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걷는 시기가 오히려 지연되는 양상을 띤다. 여러 연구 결과는 보행기 사용이 걷는 시기를 평균 2~3주 늦추는 것으로 분석된다.
백경우 나음재활의학과의원 원장은 “보행기는 아이가 발바닥 전체로 지면을 지지하지 않고 발끝만 사용해 미는 동작을 반복하게 만들어 종아리 근육이 과도하게 긴장하고 단축된다”며, “이는 아이가 보행기를 벗어난 후에도 발목의 유연성을 떨어뜨려 까치발 걸음과 같은 비정상적인 보행 습관을 고착화시킬 위험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소아과 학회의 권고: 안전과 발달을 위한 올바른 사용 시점
미국소아과학회(AAP)를 비롯한 다수의 국제 소아 건강 기관들은 보행기 사용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아예 사용 금지를 권고한다. 이는 발달 저해 문제뿐만 아니라 심각한 안전사고 위험 때문이다. 보행기는 아이가 예상치 못한 속도로 움직이게 하여 계단 추락, 화상, 가구 충돌로 인한 머리 부상 등 치명적인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만약 부득이하게 보행기를 사용해야 한다면, 전문가들은 아이가 스스로 앉기 단계를 완벽히 마스터하고, 붙잡고 서는 연습을 시작한 이후인 생후 9~10개월 이후로 사용 시점을 늦출 것을 권고한다. 이때도 사용 시간은 하루 15분 이내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보행기는 걷기 훈련 도구가 아니라, 잠시 동안의 놀이 기구로만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발달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성장 경로이다.
보행기 대신, 아이의 성장을 돕는 대안적 환경 조성
보행기의 단점을 인지한 부모들은 아이의 운동 발달을 촉진하면서도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닥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안전한 매트 위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게 하고, 터미 타임(Tummy Time)을 통해 목과 상체 근육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보행기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고정형 활동 센터(Stationary Activity Center)’나 ‘점퍼루(Jumperoo)’가 있다. 이 기구들은 아이가 한정된 공간에서 제자리에서 뛰거나 돌면서 놀 수 있도록 설계되어, 보행기처럼 빠르게 이동하며 사고를 유발할 위험이 적다. 또한, 아이가 발바닥 전체를 이용해 지지하는 감각을 익히도록 돕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과도한 사용은 지양하고, 아이가 스스로 기고 앉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확보해야 한다. 아이의 발달은 부모의 편의가 아닌, 아이 스스로의 노력과 탐색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박양동 서울패밀리병원 병원장은 “걷기 이전에 필수적인 기기와 앉기 단계는 아이의 좌우 뇌 협응력과 코어 근육, 균형 감각을 형성하는 핵심 기간”이라며, “보행기는 아이의 몸을 인위적으로 지지해주어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독립적인 걷기 시기를 오히려 늦추게 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