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돈이 전부가 아니다, ‘국민총행복(GNH)’이 던지는 질문
국가의 성공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 공장을 지었는지로 측정되지 않는 국가가 있다. 대신, 그 국가의 성공이 국민들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환경이 얼마나 깨끗한지, 그리고 전통 문화가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히말라야 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은 왕국 부탄은 이러한 이상을 현실화하며 전 세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부탄은 1970년대부터 경제 성장의 표준 척도인 국내총생산(GDP) 대신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을 국가 발전의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이는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통찰에서 출발한, 21세기 개발 철학의 가장 급진적인 실험으로 평가된다.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는 GDP를 국가 번영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겨왔다. GDP는 생산량과 소비를 측정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소득 불평등, 환경 파괴, 정신 건강 악화 등 성장의 부작용을 간과하는 치명적인 한계를 지닌다.
부탄의 제4대 국왕 지그메 싱예 왕축은 이미 1970년대 초, 서구식 경제 개발 모델이 가져올 수 있는 문화적, 환경적 훼손을 우려했다. 그는 국가의 진정한 발전은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환경적 가치의 균형 잡힌 추구에 달려있다고 선언했다. 이 철학적 전환이 바로 GNH의 탄생 배경이 됐다.
북극곰의 간, 치명적인 수준의 비타민 A를 품은 ‘하얀 독약’
‘국민총행복(GNH)’ 4대 기둥과 9개 영역
GNH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국가 정책 수립과 예산 집행을 위한 정교한 프레임워크다. GNH는 네 가지 핵심 기둥을 기반으로 한다. 이 기둥들은 상호 보완적이며, 경제 성장이 다른 가치를 희생시키지 않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첫째,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 발전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공평한 기회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둘째, 환경 보전이다. 부탄은 헌법으로 국토의 최소 60% 이상을 산림으로 유지하도록 규정했으며, 실제로 국토의 70% 이상이 숲으로 덮여 있다. 셋째, 문화 보존 및 증진이다. 고유의 전통과 불교적 가치를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도 지켜내고자 한다. 넷째,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이다.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정부 운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네 가지 기둥은 다시 9개의 세부 영역으로 나뉘어 측정된다. 9개 영역에는 심리적 웰빙, 건강, 시간 활용, 교육, 문화 다양성, 공동체 활력, 생태적 회복력, 생활 수준, 그리고 거버넌스가 포함된다. 부탄 정부는 정기적으로 대규모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국민들이 이 9개 영역에서 얼마나 행복한지를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GNH, 단순한 구호가 아닌 국가 정책의 기준
GNH는 부탄에서 단순한 철학적 개념을 넘어 실질적인 정책 도구로 활용된다. 모든 신규 정책이나 프로젝트는 GNH 심사 도구를 통과해야 한다. 이 도구는 해당 정책이 9개 GNH 영역에 미치는 긍정적 및 부정적 영향을 분석하며, 만약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판단되면 정책은 수정되거나 폐기된다. 예를 들어, 대규모 산업 개발 프로젝트가 환경 보전이나 문화 다양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고 판단될 경우, 경제적 이익에도 불구하고 승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접근 방식 덕분에 부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 국가로 남아있다. 배출하는 탄소량보다 흡수하는 탄소량이 더 많다는 의미다. 또한, 국민의 심리적 안정과 공동체 활력을 중시하는 정책 덕분에, 부탄 국민들은 물질적 빈곤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만족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GNH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국가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실용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행복 측정의 역설과 지속 가능한 도전
물론 GNH 모델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GNH의 가장 큰 도전 과제는 ‘행복’이라는 주관적이고 복합적인 개념을 어떻게 객관적이고 일관성 있게 측정하고 관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부탄 정부는 정량적 지표와 정성적 지표를 결합하여 측정의 신뢰도를 높이려 노력하지만, 서구식 개발 압력과 젊은 세대의 욕구 변화는 지속적인 시험대다. 특히, 글로벌화와 인터넷의 확산은 부탄 사회에 외부 문화를 유입시키고 있으며, 이는 전통 문화 보존이라는 GNH의 핵심 가치와 충돌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부탄의 GNH는 전 세계적으로 GDP 만능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에 영감을 주었다. 유엔(UN)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부탄의 사례를 참고하여 ‘행복’과 ‘웰빙’을 국가 발전 의제에 통합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부탄은 물질적 성장이 아닌 인간 중심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개발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번영의 의미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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