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들을 덮친 비극… 북극곰의 간에 숨겨진 ‘급성 독성’의 비밀
영하 수십 도의 극한 환경, 식량은 바닥났고 체력은 한계에 달했다. 이때 눈앞에 거대한 북극곰이 쓰러져 있다면, 그 고기와 내장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희망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극지방 생존 지식의 가장 중요한 경고 중 하나는 바로 북극곰의 간(肝)을 절대 섭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간은 단순한 고단백 식품이 아니라, 인간에게 치명적인 수준의 비타민 A를 농축하고 있는 ‘하얀 독약’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기록된 비극, 탐험가들의 고통
북극곰 간의 독성은 현대 과학이 밝혀내기 훨씬 이전부터 극지 탐험가들의 비극적인 경험을 통해 증명됐다.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19세기 북극 탐험가들이 겪은 일이다. 1820년대 북극을 탐험했던 영국 해군 장교 존 프랭클린(John Franklin) 경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탐험대는 북극곰을 사냥하여 고기를 섭취했으나, 간을 먹은 대원들이 심각한 질병에 시달렸다고 기록됐다. 이들은 극심한 두통, 구토, 피부 박리 등의 증상을 보였으며, 일부는 사망에 이르렀다.
이러한 증상은 당시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지병’으로 치부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북극곰의 간에 비정상적으로 농축된 비타민 A(레티놀)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북극곰 간 100g에는 인간의 일일 권장 섭취량의 수백 배, 심지어 수천 배에 달하는 비타민 A가 함유돼 있으며, 이는 성인에게도 급성 중독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치명적인 수준이다.
수술 후 회복 2L 물 섭취 핵심… 탈수 방지 및 장운동 촉진, 합병증 위험 감소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의 비타민 A 농축 메커니즘
북극곰은 왜 이토록 많은 비타민 A를 간에 저장하게 됐을까? 그 비밀은 북극곰이 속한 먹이사슬의 구조에 있다. 비타민 A는 지용성 비타민으로, 체외로 쉽게 배출되지 않고 주로 간에 저장된다. 북극곰의 주식은 지방 함량이 높은 물범(Seal)이다. 물범은 다시 비타민 A를 풍부하게 함유한 어류를 섭취하고, 이 어류는 해양 식물성 플랑크톤에서 비타민 A의 전구체인 카로티노이드를 얻는다.
이러한 먹이사슬을 거치면서 비타민 A는 생물 농축(Biomagnification) 과정을 겪는다. 먹이사슬의 상위 단계로 갈수록 독성 물질이나 특정 영양소가 고농도로 축적되는 현상이다. 북극곰은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하므로, 수많은 물범을 포식하며 그들이 축적한 비타민 A가 북극곰의 간에 고스란히, 그리고 엄청난 양으로 농축되는 것이다. 북극곰 자체는 이러한 초고농도 비타민 A에 내성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간은 이 정도의 독성을 해독할 능력이 없다.

급성 비타민 A 중독(하이퍼비타민증 A)의 치명적인 수준
인간이 북극곰의 간을 섭취했을 때 발생하는 증상은 ‘급성 비타민 A 중독(Hypervitaminosis A)’이다. 이 중독은 단순히 소화 불량 수준을 넘어선다. 섭취 후 몇 시간 이내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초기에는 격렬한 두통, 현기증, 구토, 복통이 발생한다. 특히 두개골 내 압력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발생하는 두통은 참기 힘들 정도다.
중독이 심화되면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하고, 점막 출혈, 시야 장애, 심각한 간 손상 등이 뒤따른다. 특히 비타민 A는 신경계에 독성을 미치기 때문에 혼수 상태에 빠지거나, 뇌압 상승으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북극곰 간에 포함된 비타민 A의 양이 워낙 치명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성인 남성이라도 북극곰 간 한 조각만으로도 급성 중독을 피하기 어렵다.
극지 생존 전문가들은 북극곰의 간은 물론, 바다표범(물범)이나 허스키견과 같은 다른 극지 포유류의 간 역시 비타민 A 농축 위험이 있으므로 섭취를 피해야 한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특히 북극곰 간은 다른 포식자들보다도 농축 정도가 월등히 높아 가장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 상황에서의 ‘금기’와 과학적 교훈
극한의 상황에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지만, 북극곰의 간 사례는 단순히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구분하는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 지식은 단순히 경험이나 미신이 아니라, 먹이사슬과 생물학적 농축이라는 과학적 원리에 기반을 둔 생존의 철칙이다.
북극곰 간의 치명적인 수준의 비타민 A는 우리에게 자연계의 복잡성과 위험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 오히려 죽음을 앞당길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따라서 극지 환경에 발을 들이는 모든 이들은 이 ‘하얀 독약’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고, 극지 포식자의 간은 절대적인 금기 사항으로 취급해야 한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기사
사계절의 비밀, 태양 거리 아닌 ‘지구 자전축 23.5도 경사’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