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보다 잘살았다? ‘남한보다 잘살던 북한는 왜 몰락했나?’
1960년대 초반, 북한의 수도 평양은 남한의 서울보다 훨씬 더 잘 정비되고 산업화된 도시였다. 6.25 전쟁 직후 소련과 중국의 대규모 지원을 받은 북한은 중공업을 중심으로 빠른 재건에 성공하며, 한때 1인당 국민소득에서 남한을 앞지르는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효율성을 선전하며 체제 우위를 주장했고, 남한은 전쟁의 후유증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경제 개발의 초입에 서 있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만에 이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어, 현재 북한은 만성적인 식량난과 에너지난에 시달리는 최악의 빈곤국으로 전락했다. 이 극적인 경제적 역전은 단순한 외부 충격이 아닌, 내부 시스템의 치명적인 오류와 정책 실패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체제 경쟁의 패배를 부른 ‘주체 경제’의 고립주의
북한이 초기 경제 성장의 동력을 잃고 쇠퇴하기 시작한 결정적인 원인은 ‘주체사상’에 기반한 고립적인 경제 정책이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김일성은 자력갱생(自力更生) 노선을 강화하며 대외 의존도를 줄이고 폐쇄적인 경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국제 분업 체제와 세계 시장의 이점을 활용한 남한의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됐다.
계획경제는 단기적으로는 자원의 집중과 동원이 용이했으나, 장기적으로는 비효율성, 혁신 부재, 생산성 저하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낳았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 원리를 무시한 채 국가가 모든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면서, 기업들은 경쟁할 유인이 사라졌고 기술 발전은 정체됐다. 특히 1970년대부터 시작된 중화학공업 중심의 무리한 투자와 서방 차관 도입 실패는 북한 경제에 막대한 부채와 부담을 안겼다.
남한보다 잘살던 북한을 덮친 1990년대의 외부 충격
북한 경제의 몰락을 가속화한 것은 1990년대 초반 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였다. 북한은 오랫동안 이들 국가로부터 저렴한 원유, 원자재, 기술 지원을 받아왔는데, 냉전 종식과 함께 이 지원이 갑작스럽게 중단됐다. 특히 소련의 붕괴는 북한에 대한 ‘우호 가격’ 무역을 종식시키고 경화(hard currency) 결제를 요구하게 만들었다. 이는 북한 산업 전반에 걸쳐 치명적인 충격을 줬다.
공장 가동률은 급격히 떨어졌고, 에너지 공급 부족은 농업 생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규모 기근이 발생했으며, 이 기간 동안 수십만 명의 주민이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시기는 남한 경제가 IMF 외환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회복 궤도에 오른 것과 대비되며, 북한의 취약한 경제 구조가 외부 충격에 얼마나 무력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자원 배분의 왜곡을 심화시킨 선군정치와 핵 개발
김정일 시대에 공식화된 ‘선군정치(先軍政治)’는 북한 경제 몰락 원인의 구조적 고착화를 가져왔다. 선군정치는 군사를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모든 자원을 군부와 국방 산업에 집중시키는 정책이다. 이는 이미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인 계획경제 체제에서 민생 부문(농업, 경공업, 사회 인프라)에 돌아가야 할 자원을 더욱 고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면서,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인 민간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은 뒷전으로 밀렸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이러한 고립을 더욱 심화시켰다. 제재는 북한의 합법적인 무역 경로를 차단하고, 외화 수입을 극도로 제한하여 경제 재건의 기회를 봉쇄했다. 이는 북한 지도부가 체제 유지를 위해 경제적 효율성을 포기하고 군사적 안정만을 추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돈과 욕망의 비즈니스 스토리: 장마당의 확산과 국가 통제의 와해
국가의 공식 경제 시스템이 붕괴하자, 아이러니하게도 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비공식 시장인 ‘장마당’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장마당은 국가의 배급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게 되자 주민들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자생적인 시장이다. 이는 북한 체제 내에서 자본주의적 요소와 개인의 욕망이 발현된 흥미로운 현상으로 풀이된다.
2009년 북한 당국이 화폐 개혁을 단행하여 장마당을 통제하고 사유 재산을 몰수하려 했으나, 이는 오히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주민들의 반발을 초래하며 국가 경제 통제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은 국가의 계획이 시장의 생존 논리를 이길 수 없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장마당 경제는 현재 북한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이 됐으며, 이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장 메커니즘이 북한 경제의 하부 구조를 지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멈춰버린 시계와 구조적 빈곤의 지속
남한보다 잘살던 북한이 최악의 빈곤국으로 몰락한 역사는, 폐쇄적인 독재 체제와 비효율적인 계획경제가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로 평가된다. 경제 발전은 시장의 자율성과 개방, 그리고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대적 흐름을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이름 아래 거부했다.
1970년대 이후 남한이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되어 고도 성장을 이룰 때, 북한은 스스로 문을 닫고 내부 자원만 소진하는 길을 선택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구조적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핵 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편입되는 근본적인 체제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북한 지도부가 군사력 증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어, 경제적 고립과 주민들의 고통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