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들판의 기억: 흙 한 줌에 담긴 어린 시절의 계절, 당신의 고향은 안녕하신가요?
서미숙 작가의 신작 에세이집 ‘사라지는 들판의 기억’이 지난 5월 8일 전자책으로 출간되어 주목받고 있다. 이 책은 대장동 들판에서 보낸 작가의 유년 시절과 사계절의 풍경, 그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개발로 인해 사라진 고향 들판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담아낸 이 에세이는 현대인들에게 잊고 살았던 자연과의 교감, 공동체의 온기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논과 밭, 대부둑과 논두렁, 김장날과 달집 태우기 등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농촌 풍경과 문화를 생생하게 복원해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당신의 기억 속에도 사라진 고향의 풍경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추억을 되살려보는 건 어떨까?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던 들판의 사계절 이야기
봄이 오면 한강 물줄기가 대부둑을 넘어 논을 채우는 물소리로 들판은 깨어났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마른 논에 물이 스며드는 풍경은 매년 반복되는 생명의 시작을 알렸다.
여름 들판은 짙은 초록의 벼 잎이 햇살 아래 키를 키우며 살아있는 피부처럼 움직이고 숨을 쉬었다. 장맛비가 내리면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흐려지고 벼 이랑 사이로 고요한 물결이 흘렀다.
가을 들판은 황금빛 벼 이삭이 바람에 따라 출렁이는 풍경으로 변모했다. 콤바인 소리는 들판 전체에 울리는 축제의 북소리와 같았으며, 콤바인이 지나간 자리마다 한 해의 노고가 드러났다.
겨울 들판은 고요했지만 생명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눈이 내려 흰빛으로 덮인 들판 위로 기러기 떼가 내려앉고, 아이들은 볏짚으로 썰매를 만들어 눈 위를 미끄러지며 웃음꽃을 피웠다.

대부둑과 논두렁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삶의 교실
대부둑은 들판으로 들어가는 첫 문이었다. 한강 물줄기가 논으로 퍼질 때 마을은 숨을 쉬기 시작했다.
봄이 오면 어른들은 물꼬를 트고 아이들은 장화를 신고 둑 위를 걸었다. 물소리는 마치 오래된 노랫가락처럼 들판을 불렀다. 지금은 콘크리트 벽 너머로 자취조차 찾기 어렵지만, 마음의 풍경 속에서 대부둑은 여전히 존재한다.
논두렁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뻘밭을 맨발로 뛰놀고, 숨은 참게를 찾고, 짚단으로 새총을 만들며 하루를 보냈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던지고 논길로 달려가던 발걸음은 도시의 골목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논두렁은 어른 없이도 배우고 익히는 교실과 같았으며, 놀이로 시작된 하루는 해 질 녘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로 끝이 났다.

사라진 풍경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기억의 힘
개발의 물결에 밀려 그 들판은 이제 사라졌다. 논을 가르던 고랑은 도로로 덮였고, 벼 이랑 대신 콘크리트 기둥이 자라났다. 그러나 작가가 사라진 들판을 자꾸 떠올리는 이유는 그곳이 단지 땅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자라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소를 몰던 아버지의 굽은 등, 새벽마다 물꼬를 열던 할머니의 손, 논두렁을 뛰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함께 사라졌다.
무엇을 지켰어야 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죄책감도 마음 한 켠에 남아있지만, 돌아갈 수 없다면 그 마음만이라도 남겨야 한다. 비록 들판은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숨 쉬던 생명과 시간은 마음속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다. 사라진 풍경은 결국 우리 안에 살아있으며, 그 마음이 잊히지 않는 한 들판은 사라지지 않는다.
흙 한 줌에 담긴 이별과 재회, 우리가 간직해야 할 기억의 씨앗
이사 가는 날 아침, 작가는 이사 전날 밤 혼자 논둑길을 걸었다. 벼도 물도 빠진 빈 논이었지만 그 위엔 작가가 보았고 뛰었고 웃었던 계절들이 누워 있었다. 흙 한 줌을 손에 쥐었을 때, 그 흙은 차가운데 이상하게 따뜻했다. 작가는 그 흙 한 줌을 작은 항아리에 담아 새집으로 가져왔고, 비가 내릴 때마다 흙 위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며 들판과 다시 만난다.
사라진 들판을 따라 써 내려간 이 기록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흙을 밟고 자연과 함께 숨 쉬던 나날은 이제 사진 한 장, 기억 한 줄로 남았지만 그 조각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오른다. 이 기록을 남기는 일은 단지 과거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약속이다. 당신도 그 들판을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다.
서미숙 작가의 ‘사라지는 들판의 기억’은 이제 e-book으로 만나볼 수 있다. 당신의 마음속에도 사라진 들판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기억의 씨앗을 다시 심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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