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에서 사회연대경제로: 연대와 협동의 가치를 찾아서
우리나라 사회에서 사회적경제는 지난 수년간 눈에 띄는 양적 성장을 이뤘다. 수많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이 설립돼 일자리 창출과 사회 서비스 제공에 기여했다. 특히 취약계층의 고용 확대와 지역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성장 뒤에는 사회적 가치 실현의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됐다.
기존 경제 시스템 안에서 시장 메커니즘과 경쟁해야 하는 구조적 제약은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본연의 혁신적 잠재력을 위축시키는 주된 요인이 됐다. 정부 지원에 대한 높은 의존성, 자립을 위한 재정적 압박은 사회적 가치와 이윤 추구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을 야기했다. 이에 따라 단순히 기존 경제 시스템을 보완하는 역할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반의 전환을 모색하는 ‘사회연대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져왔다.

시장경제의 그림자: 사회적 가치와 이윤의 갈등
기존 사회적경제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특정 조직 형태에 집중하며, 시장 내에서 ‘착한 기업’을 육성하는 데 주력했다. 정부는 인증이나 지정을 통해 이들 조직에 재정 및 행정적 지원을 제공했으나, 이는 동시에 시장의 효율성과 경쟁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한계를 노출했다. 많은 사회적경제 조직은 생존을 위해 이윤 추구와 사회적 가치 실현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해야 했고, 자본의 논리에 포섭될 위험에 놓이기도 했다. 실제 운영 과정에서 본래의 사회적 목적이 희석되거나, 인증 유지를 위한 형식적인 활동에 치중하는 ‘미션 드리프트(Mission Drift)’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가치 실현보다는 정부 지원금 확보를 위한 외형 성장에 몰두하거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반 영리기업과 다를 바 없는 경영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진정한 사회 혁신보다는 시장 친화적인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했다. 또한, 사회적경제의 성과가 주로 고용률이나 매출액 같은 경제적 지표로 평가되면서, 근본적인 불평등 해소나 사회 구조적 문제 해결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향도 나타났다. 사회적경제 금융 또한 초기 단계에서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투자를 지향했으나, 점차 상업적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변모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적경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부분적 보완재’ 역할에 머무르며, 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에는 한계를 보인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양극화 문제나 기후 위기와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한 사회적경제의 기여가 미미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글로벌 위기 속 새로운 대안: 연대와 협동의 가치
한편, 현재 세계는 기후 위기, 양극화 심화, 민주주의 위기, 팬데믹과 같은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전 지구적 문제는 기존의 성장 중심 자본주의 경제 모델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유엔(UN)과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들도 사회연대경제(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SSE)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한 핵심 동력으로 주목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ILO는 2022년 국제노동총회에서 사회연대경제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며 그 잠재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사회연대경제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응답 차원에서 강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사회연대경제는 단순히 특정 조직 형태를 넘어 생산, 분배, 소비, 금융, 돌봄, 에너지, 주거 등 경제 활동 전반을 연대와 호혜, 민주적 거버넌스, 생태적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 위에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이에 사회연대경제는 시장의 효율성 논리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지역 공동체와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상호 의존적이고 포용적인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본의 논리가 아닌 사람과 지구를 우선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공동자원(Commons)’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물, 토지, 지식, 데이터 등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고 공유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자원의 사유화와 무분별한 착취를 지양하고, 공동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출자해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전기를 생산하며, 그 수익을 공동체에 환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독일의 슈나이딕(Schönau) 주민 발전소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돌봄 서비스에서는 시민들이 상호 돌봄 체계를 구축해 지역 내 취약계층의 삶의 질을 높이고, 먹거리 분야에서는 로컬푸드 시스템과 꾸러미 사업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등 다양한 실천 방안이 사회연대경제의 핵심 요소로 주목됐다. 주거 분야에서는 주거 협동조합을 통해 저렴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고, 윤리적 금융 기관은 사회적 가치 투자를 우선시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 사회적 공정성과 생태적 책임을 동시에 추구하며, 지역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회연대경제는 물과 같은 공공재를 시장의 상품으로만 보지 않고,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로 인식하며, 이를 통해 근본적인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 전체의 복리 증진을 추구한다. 이는 기존 사회적경제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더 포괄적이고 시스템적인 변화를 지향하는 진화된 형태인 것이다.

사회연대경제로의 전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법적 토대 등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로 이룬 경제성장의 이면에서 소득 불평등 심화와 사회 갈등 증가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최근에는 인구감소와 기후 위기까지 새로운 현안으로 부상하며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러한 복합적 위기 속에서 해외 각국은 불평등 감소, 양질의 일자리 창출, 사회통합의 대안으로 사회연대경제에 주목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 등은 이미 관련 법률을 제정하여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사회적기업 육성법」, 「협동조합 기본법」 등을 통해 사회연대조직의 활동을 지원해왔는데, 정부가 2024년 6월 10일 발표한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 또한 사회적 가치 실현과 임팩트 금융 확대 등 긍정적 요소를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개별법 체계의 한계로 인해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조직에 대한 공통의 법적 근거가 없어 법 간 중복이나 충돌이 발생하고,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각에서 정부의 방안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시장 효율성 위주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파편적인 법률 체계를 넘어 사회연대경제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지원 기반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정태호 의원 대표발의로 2025년 9월 5일 발의된 ‘사회연대경제기본법안’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법안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 다양한 사회연대경제 조직을 포괄하는 공통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고, 관련 정책을 체계적으로 수립·시행하며, 이를 통해 조직 간의 협력과 연대에 기반한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하고,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을 목표로 한다. 올바른 방향성이다.
그러나, 기본법 제정이라는 법적 토대 마련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즉, 진정한 사회연대경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생태계 전반의 자율성과 연대성을 강화할 추가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과 동시에 교육 시스템에 연대와 협동의 가치를 포함하고, 지역 단위의 실험과 혁신을 적극 지원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 또한 전개될 필요가 있다. 또한 공공 조달 시스템에서 사회연대경제 조직의 참여를 확대하고, 전용 금융 상품을 개발하는 등 실질적인 정책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시민들의 인식을 높이고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캠페인과 교육 프로그램 역시 필수적이다.
이처럼 사회연대경제로의 전환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시대적 과제이며, 이는 단순히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것을 넘어, 연대와 협동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에 정부, 시민사회, 학계, 그리고 책임 있는 기업 모두가 심도 깊은 논의와 적극적인 실천에 나서야 한다. 사회연대경제는 우리나라 사회가 직면한 기후 위기, 양극화, 공동체 해체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더 정의롭고 포용적이며 생태적인 미래를 여는 초석이자, 우리 사회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재구성하는 거대한 전환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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