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화석 은행나무, 학문과 성장의 상징으로 한국을 물들이다
가을의 전령이자 도시의 풍경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은행나무. 한국의 거리를 걷다 보면 ‘가로수’로 가장 흔하게 마주치는 이 나무는, 사실상 시간을 초월한 역사의 증인이자 동양 철학의 깊은 상징을 품고 있다. 단순한 가로수를 넘어, 고즈넉한 ‘절’의 뜨락과 유서 깊은 ‘향교’의 마당을 묵묵히 지키고 선 은행나무는, 우리에게 ‘학문과 성장의 상징’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공자의 가르침이 서린 이 나무는 어떻게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과학적 별칭과 인문학적 상징성을 동시에 지니게 되었는가. 그 장구한 역사와 이중적 의미를 파헤쳐 본다.

시간을 견뎌낸 ‘살아있는 화석’
은행나무(Ginkgo biloba)를 설명하는 가장 압도적인 키워드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이는 식물학적 분류에서 현존하는 그 어떤 종과도 유연관계가 먼, 독립적인 ‘문(Division)’을 형성할 정도로 태고의 혈통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수억 년 전, 공룡이 거닐던 시대부터 그 모습을 거의 바꾸지 않은 채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이다. 빙하기를 비롯한 수차례의 대멸종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 경이로운 생명력은, 은행나무가 단순한 식물을 넘어 경외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이러한 불멸에 가까운 생명력은 한국의 역사적 공간과 결합하며 더욱 특별한 의미를 띤다. 전국의 수많은 고찰(절)과 유생들이 학문을 닦던 향교에 수백 년, 혹은 천 년을 훌쩍 넘긴 은행나무 노거수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속세의 흥망성쇠와 왕조의 교체를 묵묵히 지켜보며 한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는, 그 자체로 역사의 산 증인이자 시간을 초월한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국의 ‘시’ 속에서 은행나무가 자주 등장하는 것 역시, 이러한 영겁의 시간과 변치 않는 가치를 상징하는 시적 장치로서 기능했기 때문이다.
암수 딴그루, 생명과 고뇌의 이중주
은행나무의 생물학적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암수 딴그루’, 즉 암나무와 수나무가 명확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이는 종족 번식을 위한 자연의 섭리이지만, 현대 도시 환경, 특히 ‘가로수’로서의 역할에 있어서는 심각한 딜레마를 안겨준다. 가을이 깊어지면 ‘오래된 암나무’에서 떨어지는 은행 열매는 특유의 ‘심한 냄새’를 유발하며, 이는 매년 반복되는 사회적 논쟁거리가 된다. 이 고약한 냄새의 원인은 열매의 외종피에 포함된 특정 성분 때문이지만, 시민들의 일상에 직접적인 불쾌감을 초래한다.
이로 인해 현대의 조경 및 도시 계획에서 ‘암나무 수나무 구분’은 매우 중요한 실무적 과제가 되었다. 가로수용 묘목을 생산할 때부터 유전자 감식 등을 통해 수나무만을 선별하여 식재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간 자라온 암나무 가로수들을 일괄적으로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인 비용과 생명 윤리 문제에 부딪힌다. 결국 이 ‘냄새’ 문제는 은행나무가 지닌 풍요와 생명력(열매)이라는 이면의 대가이며, 인간이 자연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공자의 가르침, ‘행단’에 깃들다
은행 나무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가지는 가장 숭고한 상징성은 ‘학문’의 영역에서 비롯된다. 제공된 자료에 명시된 바와 같이, “공자가 은행 나무 아래에서 강단(행단)을 열었다”는 사실은 은행 나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유래’이다. ‘행단(杏壇)’이라는 말은 본래 살구나무 제단을 의미하지만,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설이 함께 전해지며 은행나무는 유교적 학문의 성전(聖殿)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 ‘행단’의 고사로 인해 은행 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닌, 스승의 가르침과 배움의 열정이 깃든 공간, 즉 ‘학문과 성장의 상징’으로 격상되었다. 전국 각지의 ‘향교’나 서원에 거대한 은행 나무가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는 단순한 조경을 넘어, 공자의 유지를 받들어 학문에 정진하겠다는 유생들의 다짐을 상징하는 표상이었다. 매년 가을, 향교 마당을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잎은 학문의 결실과 성숙을 의미하는 시각적 은유로 기능했다.
한국의 사찰이나 향교에 식재된 은행 나무는 단순한 경관적 요소를 넘어선다. 특히 향교의 은행 나무는 공자가 ‘행단’에서 강학한 역사를 재현하는 상징물이며, 이 나무 아래에서 유생들은 ‘살아있는 화석’이 상징하는 영원불변의 진리와 ‘성장’하는 학문의 자세를 동시에 배웠다.
학문과 성장의 상징, 시가 되다
은행 나무가 ‘학문(學文)’의 상징이라면, 동시에 그것은 ‘성장(成長)’의 상징이기도 하다. 곧게 뻗어 올라가는 줄기와 풍성하게 퍼지는 가지는 배움을 통해 끊임없이 자라나는 지성과 인격을 의미한다. 또한, 봄에 싹을 틔우고 가을에 장엄하게 낙엽을 떨구는 은행나무의 순환은, 지식이 쌓이고 무르익어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학문의 영속적인 과정을 상징한다. 이러한 상징성 덕분에 은행나무는 수많은 ‘시’와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어왔다.
‘한국의 시’에 등장하는 은행 나무는 때로는 역사의 무상함을, 때로는 굳건한 선비의 절개를, 그리고 때로는 학문적 성찰의 매개체로 그려졌다. 시인들은 은행 나무의 장엄함 속에서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느끼는 동시에, ‘살아있는 화석’으로서의 영원성을 통해 시간의 극복을 노래했다. 이처럼 은행 나무는 한국인의 정서 속에 깊이 뿌리내린 문화적 아이콘이며, 문학적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해왔다.
한국의 풍경을 지배하는 두 얼굴
오늘날 은행 나무는 ‘절’, ‘향교’와 같은 전통적 공간에서부터 가장 현대적인 공간인 ‘가로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풍경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이 나무는 극단적인 두 얼굴을 동시에 지닌다. 한편으로는 공자의 숨결이 깃든 ‘학문과 성장의 상징’으로 숭배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한 냄새’를 풍기는 ‘암나무’로 인해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은행나무가 지닌 숙명과도 같은 이중성이다.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경이로운 타이틀과 ‘가로수’라는 친숙한 역할 사이에서, 은행 나무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이 고대의 생명체가 지닌 깊은 문화적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혹은 단지 도시의 편의라는 잣대로만 이들을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은행나무는 그저 서 있는 나무가 아니라, 수억 년의 시간과 수천 년의 인문학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한국의 땅에 뿌리내린 거대한 상징 그 자체이다.
은행 나무는 ‘살아있는 화석’답게 공해와 병충해에 강해 ‘가로수’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민들이 제기하는 ‘암나무 열매 냄새’ 문제는 분명한 관리의 영역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을 이유로 ‘학문과 성장의 상징’이자 한국 ‘향교’ 문화의 핵심인 은행나무의 역사적 가치까지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공존을 위한 세심한 구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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