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닭 씻는 습관: 물방울이 퍼뜨리는 주방 내 ‘캄필로박터균’ 확산 비상
“깨끗하게 씻어야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주방에서 흔히 들리는 소리다. 많은 사람이 생닭을 요리하기 전, 왠지 모를 찝찝함에 흐르는 물에 헹구는 과정을 거친다. 마치 이 행위가 닭 표면의 불순물이나 남아있는 잔여물을 제거해 위생을 확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품 안전 전문가들은 이러한 습관이 주방 전체를 오염시키는 치명적인 실수라고 경고한다. 정작 깨끗하게 하려던 행위가 식중독의 주범인 캄필로박터균(Campylobacter)을 주방 곳곳에 확산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습관은 특히 한국뿐 아니라 서구권 국가에서도 오랫동안 지속돼 왔으며, 보건 당국이 수년째 ‘생닭 세척 금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음에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주방 위생의 딜레마로 남아있다. 생닭을 씻을 때 발생하는 물방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 폭탄이며, 이 물방울이 주방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물방울의 습격: 싱크대 주변 80cm가 오염되는 이유
생닭의 표면에는 캄필로박터균을 비롯해 살모넬라균 등 다양한 식중독 유발 세균이 서식한다. 이 세균들은 닭을 조리하는 과정에서 고열에 의해 사멸하지만, 조리 전 세척 과정이 문제를 일으킨다. 닭을 흐르는 물에 씻을 때, 물줄기가 닭 표면에 부딪히면서 세균이 포함된 미세한 물방울(에어로졸)이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영국 식품기준청(FSA) 등 여러 보건 기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오염된 물방울은 싱크대를 중심으로 최대 80cm까지 퍼져나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곧 싱크대 주변에 놓여 있던 식기, 조리 도구, 채소, 심지어 행주나 손잡이까지 캄필로박터균에 오염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오염된 표면을 만진 후 다른 식품을 만지거나 입에 가져가면 교차 오염(Cross-contamination)이 발생하며 식중독으로 이어진다.
특히 캄필로박터균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세균성 식중독의 원인균 중 하나다. 주로 설사, 복통, 발열 등을 유발하며,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에게는 심각한 합병증(길랭-바레 증후군 등)을 초래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고대 이집트의 피임법: ‘악어 똥’의 역설과 위험한 선택
세균을 죽이는 것은 물이 아닌 ‘열’: 안전한 조리법의 핵심
생닭을 씻는 행위가 세균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확산시키는 행위임이 명확해지면서, 보건 당국은 ‘씻지 않고 바로 조리’하는 것을 최선의 방안으로 권고한다. 캄필로박터균을 포함한 대부분의 식중독균은 70°C 이상의 고온에서 수분 내에 사멸하기 때문에, 닭고기를 내부까지 완전히 익히는 것이 위생상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만약 닭고기의 핏물이나 이물질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물을 사용하는 대신 키친타월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닦아내는 것이 안전하다. 이 과정에서 사용된 키친타월은 즉시 폐기해야 하며, 닭고기를 만진 손은 비누를 사용하여 20초 이상 깨끗하게 씻어야 교차 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닭고기를 손질했던 도마나 칼 등 조리 기구는 다른 식재료를 손질하기 전에 반드시 뜨거운 물과 세제로 소독해야 한다. 특히 나무 도마보다는 세척이 용이한 플라스틱 도마를 사용하고, 가능하다면 육류 전용 도마를 따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 위생 관리의 기본이 됐다.

습관의 고리 끊기: 소비자 인식 개선이 시급한 과제
생닭 세척 습관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눈으로 확인하는 청결’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닭 표면의 점액질이나 핏물을 제거해야만 깨끗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눈에 보이는 청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의 확산 방지가 더 중요하다.
각국 보건 당국은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위해 적극적인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농무부(USDA)는 생닭 세척 시 발생하는 물방울의 확산 범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실험 영상을 공개하며 경각심을 높였다. 해당 영상은 닭을 씻을 때 세균이 주방 표면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를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가정에서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생닭을 씻지 않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는 단순한 조리법 변경을 넘어, 주방 위생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
식품 안전을 위한 4대 원칙 재확인
생닭 세척 금지 외에도, 주방에서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기본적인 4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청결(Clean)’이다. 조리 전후 손을 깨끗이 씻고, 조리 도구를 소독하는 것이다. 둘째, ‘분리(Separate)’다. 생고기, 생선, 가금류 등 날것과 조리된 식품 또는 바로 먹는 식품을 분리 보관하고, 도마와 칼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셋째, ‘익히기(Cook)’다. 모든 육류는 내부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도록 완전히 익혀야 한다. 닭고기의 경우 내부 온도가 최소 74°C에 도달하도록 조리해야 안전하다. 넷째, ‘냉각(Chill)’이다. 조리된 음식은 실온에 오래 두지 말고, 2시간 이내에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하여 세균 증식을 막아야 한다.
생닭을 씻는 행위는 이 4대 원칙 중 ‘청결’과 ‘분리’ 원칙을 동시에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방울로 인해 주방 환경이 오염되고, 이 오염이 다른 식재료로 전파되는 교차 오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방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생닭 세척 습관의 역설을 인지하고, 과감하게 이 습관을 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결국, 식중독 예방은 복잡한 기술이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습관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생닭을 씻지 않는 작은 실천 하나가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수 있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기사
생존의 조건 된 탄소 배출권… 배출권거래제, 산업 지형을 바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