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지속되는 세포의 흔적: 미세키메리즘, 우리의 건강 비밀과 이중적 역할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생명의 여정은 출산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유전적으로 다른 가족의 작은 조각들을 몸속에 지니고 살아가는 생물학적 현실에 놓여 있다. 바로 ‘미세키메리즘(Microchimerism)’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임신 기간 동안 태아의 세포는 태반을 넘어 모체로 이동하고, 반대로 모체의 세포 역시 태아에게 전달된다. 이 세포들은 순환하며 갑상선, 간, 폐, 뇌, 심장 등 모체의 주요 장기에 자리 잡아 수십 년간 지속되거나 심지어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며, 모체와 자손, 그 후손들 사이에 평생의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22일, Phys.org는 이처럼 우리 것이 아닌 세포가 인류 건강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노터데임 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 연구진의 보고를 보도하며, 미세키메리즘 연구의 현주소와 미래 과제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수십 년 동안 그 존재가 알려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희귀한 세포들이 우리 몸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몸속의 이방인: 미세키메리즘 세포의 복잡한 역할
미세키메리즘은 임신 외에도 장기 이식이나 수혈을 통해 발생할 수 있지만, 가장 흔하고 지속적인 형태는 임신을 통해 태아와 모체 간에 세포가 교환되는 경우다. 노터데임 대학교 인류학과 소속 생물인류학자 크리스틴 조이 추아(Kristine Joy Chua)는 “이 세포들은 우리 몸 전체 세포의 1% 미만을 차지할 정도로 극도로 희귀하며, 검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모체 세포와 태아 세포가 유전적으로 유사한 DNA를 공유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이들을 분리하고 식별하는 것 자체가 큰 난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세키메릭 세포들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하지 않다. 이 세포들은 상처 치유, 조직 재생, 그리고 면역 시스템 조절에 기여하는 등 이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그러나 동시에 전신 경화증이나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 그리고 백혈병을 포함한 일부 암이나 임신 합병증과의 연관성도 보고됐다. 즉, 미세키메리즘 세포는 건강에 이로운 방어군이 될 수도 있고, 질병 발생의 위험 인자가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
연구 컨소시엄, 과학계의 회의론에 맞서다
이처럼 세포가 희귀하다는 점은 과학계 내에서 이 세포들이 인류 건강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회의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미세키메리즘 연구자들은 꾸준히 연구를 지속했고, 추아 박사가 공동 주도한 다학제 간 컨소시엄인 ‘미세키메리즘, 인류 건강 및 진화 프로젝트(Microchimerism, Human Health & Evolution Project)’는 최근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미세키메리즘 연구를 진전시키기 위해 현장에서 가장 시급한 핵심 질문들을 도출한 첫 번째 간행물이다.
연구팀은 미세키메리즘 분야의 선도적인 전문가 2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연구 커뮤니티가 직면한 핵심 과제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구체적으로는 미세키메릭 세포의 명확한 정의, 이 세포들이 체내에 존재하며 지속되는 이유 규명, 실험실 내 검출 및 채집을 위한 표준화된 프로토콜 확립, 그리고 건강 및 질병에서의 기능과 역할 분석이 그것이다. 이러한 핵심 과제 제시를 통해 연구의 방향성을 명확히 확립하려는 움직임이다.

진단과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 줄기세포 유사 성질 활용
최근 첨단 기술의 발전은 미세키메리즘 연구의 난제를 우회할 수 있는 자신감을 연구자들에게 불어넣었다. 전문가들은 미세키메릭 세포의 줄기세포 유사 성질을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이 세포들이 특정 장기 세포로 변형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갑상선이나 간 손상 환자에게 조직 복원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는 재생 의학 분야에 새로운 치료 도구를 제공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추아 박사는 또한 이 세포들이 임신 합병증의 위험을 예측하는 생체 표지자(바이오마커)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 세포들의 양이나 표현형에 기반하여, 자간전증, 자연 유산 및 태반 기능 장애와 같은 특정 임신 합병증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바이오마커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미세키메리즘이 모성 건강과 개입 방식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나아가, 미세키메릭 세포의 연구는 질병, 특히 면역 관련 질환이 가족 내에서 어떻게 대물림되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질병이 개인의 몸에서 시작되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한다면, 이러한 합병증을 예방하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건강을 추구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의 미래와 윤리적 과제
미세키메리즘 연구는 방법론적 제약 외에도 여러 추가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연구진들은 임신 중인 개인으로부터 생체 시료를 채취하는 것과 관련된 윤리적 제약, 공식적인 동의 문제, 그리고 이를 전 세계적인 규모로 해결해야 하는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연구 우선순위를 임신과 여성 건강 전반으로 확대하고, 연구 커뮤니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컨소시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새로운 협력을 구축하고, 미래 연구자들을 위한 표준화된 연구 방법을 교육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여 미세키메리즘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추아 박사는 “임신 결과는 우리의 생물학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 환경의 산물이기도 하다”며, 인류학자들이 이 연구에 합류하여 임신 및 세대 간 건강에서의 미세키메리즘의 역할을 규명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생물학적 메커니즘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신체의 반응을 형성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