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대신 소리와 촉각으로 설계된 ‘시각장애인의 꿈’: 선천적·후천적 차이와 뇌의 경이로운 재구성
우리는 흔히 “어제 꿈에서 무엇을 ‘보았냐'”고 묻는다. 비장애인들에게 꿈은 시각적인 영상의 파노라마, 즉 ‘눈으로 보는 영화’와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중도에 빛을 잃은 시각장애인들의 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단순히 칠흑 같은 어둠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그들의 꿈은 소리와 냄새, 촉각과 미각이 빚어낸 4차원의 교향곡에 가깝다.
최근 덴마크와 미국 등지의 수면 연구 결과들은 ‘시각장애인의 꿈’이 인간의 뇌가 감각 정보를 처리하고 재구성하는 놀라운 적응력의 산물임을 증명하고 있다.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선천적, 후천적 시각장애인이 경험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알아본다.

‘본다’는 것의 재정의: 시각이 없어도 꿈은 존재한다
꿈은 뇌가 깨어 있는 동안 수집한 정보들을 정리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시각장애인 역시 비장애인과 똑같이 렘(REM) 수면 단계를 거치며 매일 밤 꿈을 꾼다. 차이는 뇌가 꿈을 ‘건축’하는 재료에 있다. 비장애인의 뇌가 시각 피질(Visual Cortex)에 저장된 이미지 정보를 주로 활용한다면, 시각장애인의 뇌는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비시각적 감각 정보를 총동원하여 꿈의 서사를 완성한다. 이는 결핍이 아닌 ‘다른 방식’의 풍요로움이다.
그들의 꿈속에서는 친구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고, 바람의 결이 피부에 생생하게 닿으며, 갓 구운 빵의 냄새가 공간을 채운다. 즉, 그들은 눈이 아닌 온몸의 감각으로 꿈을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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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시각장애: 소리와 촉각으로 쌓아 올린 4D의 세계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선천적 시각장애인의 경우, 뇌 속에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꿈속에서 시각적 형상을 전혀 보지 못한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연구진이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의 꿈은 시각적 요소가 배제된 대신, 청각(약 93%), 촉각(약 67%), 후각 및 미각(약 19%)의 비율이 비장애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들에게 ‘꿈을 꾼다’는 것은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울림을 듣고 바닥의 질감을 느끼는 체험이다. 예를 들어, 바다에 가는 꿈을 꿀 때 비장애인은 푸른 파도를 떠올리지만, 선천적 시각장애인은 파도 소리의 웅장함, 짠내 섞인 바람,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의 감촉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이는 인간의 뇌가 시각 정보가 차단되었을 때, 다른 감각 영역을 활성화하여 정보 처리의 공백을 메우는 ‘교차 양상 가소성(Cross-modal Plasticity)’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뇌파 측정 결과, 이들이 꿈을 꿀 때 시각 피질이 활성화되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는데, 이는 시각 피질이 시각 정보 처리가 아닌 다른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데 활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후천적 시각장애: 서서히 흐려지는 기억의 필름
반면, 정상 시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사고나 질병으로 시력을 잃은 후천적 시각장애인의 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는다. 시력을 잃은 직후, 이들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선명한 시각적 꿈을 꾼다. 뇌 속에 저장된 과거의 시각적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시각적 자극이 뇌로 유입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꿈속의 이미지는 낡은 사진처럼 서서히 흐릿해진다.
연구에 따르면, 대략 5~7세 이전에 시력을 잃은 경우에는 성인이 되었을 때 꿈에서 시각적 형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선천적 시각장애인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반면 7세 이후에 시력을 잃은 경우에는 시각적 꿈이 더 오랫동안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각적 기억의 해상도가 낮아지고, 그 자리를 청각이나 촉각 등 다른 감각 정보가 대체해 나가는 과정을 겪는다. 이는 뇌가 현재 자신이 처한 감각적 환경에 맞춰 꿈의 형식을 최적화하려는 적응의 결과로 해석된다.
악몽의 역설: 생존을 위한 뇌의 치열한 시뮬레이션
흥미로운 점은 시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에 비해 악몽을 꾸는 빈도가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다. 덴마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선천적 시각장애인은 일반인보다 약 4배 더 자주 악몽을 꾼다고 보고되었다. 그 내용은 주로 길을 잃거나, 자동차에 치이거나, 맨홀에 빠지는 등 ‘안전’과 관련된 주제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협 시뮬레이션 이론(Threat Simulation Theory)’으로 설명한다. 시각장애인들은 깨어 있는 동안 보이지 않는 환경 속에서 수많은 위험 요소와 맞닥뜨려야 한다. 따라서 뇌는 잠을 자는 동안 이러한 현실의 위협 상황을 가상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잦은 악몽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험난한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뇌의 치열한 생존 훈련인 셈이다.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 뇌의 가능성
결론적으로 ‘시각장애인의 꿈’은 결코 불완전하거나 공허하지 않다. 오히려 시각이라는 지배적인 감각에 가려져 있던 인간의 다른 감각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강력하게 세상을 그려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선천적 장애인은 소리와 감촉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건축하고, 후천적 장애인은 기억과 현재의 감각을 융합하여 적응해 나간다.
눈이 아닌 뇌와 마음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그들의 꿈은, 인간의 정신이 가진 무한한 유연성과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대변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이러한 뇌과학적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장애를 ‘결핍’이 아닌 ‘다름’으로 이해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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