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의원급 기관에 확대 적용된 ‘실손24 의원급 의무화’ 시스템… 의료계가 제기한 “EMR 연동 비용과 보안 사고 책임” 쟁점에 대해 보험개발원 회신
지난 10월 25일부터 의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스템’, 일명 ‘실손24’의 이용이 사실상 의무화되며 의료 현장의 관심이 뜨겁다. 환자가 요청할 경우, 병원이 실손보험 청구 서류를 전자적으로 보험사에 전송해야 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소비자 편의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보험업법 개정에 따른 조치이나, 이를 시행해야 하는 일선 의료기관들은 시스템 연동 문제, 비용 부담, 그리고 보안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등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러한 현장의 우려를 반영해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최근 금융위원회를 통해 실손24 시행과 관련된 구체적인 질의를 전달했다. 금융위원회는 해당 질의를 시스템의 구축 및 운영 주체인 보험개발원으로 이송했으며, 보험개발원은 지난 11월 4일 자로 의협의 질의에 대한 공식 답변을 회신했다. 본지는 보험개발원이 의협에 전달한 ‘실손보험청구전산화(실손24)시행 관련 질의에 대한 회신’ 문건을 입수하여, 이번 의무화 시행의 핵심 쟁점들을 상세히 분석했다.

“EMR 미사용 기관” 등 법령상 예외 사유 명확히 규정
의료계의 첫 번째 관심사는 ‘의무화’의 예외 범위였다. 모든 의원급 기관이 예외 없이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질의에, 보험개발원은 보험업법 및 관련 하위 법령에 규정된 ‘정당한 사유’를 명확히 제시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요양기관이 실손24 시스템 이용 요청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사유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첫번째가 의료기관이 업무 정지 처분을 받은 경우다. 「의료법」에 따른 의료업 정지처분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시스템 사용이 어려운 경우는 의무에서 배제된다. 둘째, 요양기관이 폐업 또는 휴업을 신고한 경우에도 당연히 예외가 적용된다.
가장 핵심적인 예외 조항은 전산 시스템 사용 여부다. 현행 규정상 「의료법」에 따른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의료기관이나, 「국민건강보험법시행령」에 따른 요양급여비용 심사청구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 약국의 경우, 실손24 전산 전송 의무가 면제된다. 즉, EMR을 사용하지 않고 수기 차트를 이용하는 극소수의 기관은 이번 의무화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되는 셈이다.
이 외에도 실손24 전산시스템 자체의 장애나 보수·점검, 해킹 등 전자적 침해행위 발생, 또는 현재 시스템 연계를 위한 구축 및 보완 작업을 진행 중인 경우(금융위 고시) 등도 정당한 예외 사유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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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선택권은 보장… “기존 종이 서류 청구 방식도 병행”
이번 의무화 조치가 환자들의 보험금 청구 방식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실손24 시스템 도입의 목적은 환자의 편의 증진에 있으며, 기존의 청구 방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추가’하는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보험개발원은 회신을 통해 “소비자(환자) 입장에서는 ‘실손24’ 시행 이후에도 직접 보험사에 서류를 제출할 수도 있고, 실손24를 통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즉, 병원에 서류 전송을 요청하는 것이 번거롭거나, 민감한 진료 기록이 전자적으로 전송되는 것을 원치 않는 환자는 기존처럼 병원에서 진료비 영수증, 세부내역서 등 관련 서류를 종이로 발급받아 사진을 찍거나 팩스를 이용해 보험사에 직접 청구하는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의료기관이 환자의 ‘전송 요청’을 받았을 때 거부할 수 없도록 한 의무이지, 환자에게 ‘전산 청구’를 강제하는 조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대 난관 ‘EMR 연동’, “업체에 요청” 혹은 “프로그램 교체”가 해법
의료 현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제기된 것은 EMR 연동 문제다. 현재 전국의 의원급 의료기관은 수십 종에 달하는 각기 다른 상용 EMR 혹은 자체 개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만약 현재 사용 중인 EMR 프로그램이 실손24와 연계되어 있지 않다면, 의무 이행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협은 이처럼 EMR이 미연동된 의료기관의 구체적인 의무 이행 방안 제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보험개발원은 두 가지 방안을 권장했다. 첫째는 현재 이용 중인 EMR 업체에 실손24 참여(연동)를 요청하는 것이고, 둘째는 실손24에 이미 참여 중인 다른 EMR 프로그램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EMR 연동의 책임과 부담이 일선 의료기관 및 EMR 소프트웨어 업체에 있음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의무는 시행되었으나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연동을 지원하지 않는 경우, 해당 의원은 잠재적인 법령 위반 상태에 놓이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EMR 프로그램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한 의료 IT 업계 관계자는 “실손24의 취지는 좋으나, 전국 수만 개의 의원이 사용하는 EMR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하다”라며 “상용 EMR 업체가 아닌 자체 개발 시스템을 쓰거나, 오래된 버전을 유지보수하며 사용하는 소규모 의원들의 경우 시스템 연동 요청이나 교체 자체가 막대한 행정적,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의무화 시행에 앞서 EMR 표준 연동 규약이나 중소 의원에 대한 기술 지원이 선행되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전했다.
보안·비용 쟁점… “시스템은 안전, 연계 비용은 보험사 지원”
의료계의 가장 큰 우려는 단연 ‘보안’과 ‘비용’ 문제다. 의협은 의원의 노후 장비나 외부 해킹으로 보안 사고 발생 시, 의료기관에 일방적으로 귀책사유가 전가될 것을 우려하며 면책 및 지원 방안을 물었다.
보험개발원은 우선 ‘실손24’ 시스템 자체의 보안성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쳤다. “데이터 암호화, 전자서명 및 암호화 전송(SSL) 등을 통해 정보보안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시스템 자체적으로 악성코드 검사를 수행하는 등 보안사고 방지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또한, 전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보 유출이나 전송 오류 등 법적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전송대행기관(보험개발원)이 금융감독원의 정기·수시 IT 검사 및 금융보안원의 취약점 점검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개인정보 누출 배상책임 보험’과 ‘전자금융거래 배상책임보험’에도 가입을 완료한 상태라고 밝혔다.
다만 이 답변은 ‘시스템’과 ‘전송대행기관’의 보안 노력에 중점을 둔 것으로, 의협이 질의한 ‘의료기관 내부의 노후 장비’로 인한 사고 시 책임 귀속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면책 규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EMR 유지보수비, 업데이트비 등 지속적으로 발생 가능한 비용의 지원 주체에 대한 질의도 있었다. 이에 대해 보험개발원은 “실손24 연계와 관련한 시스템 유지보수에 필요한 비용은 유지보수 계약에 따라 현재 보험사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보험개발원과 EMR 업체(혹은 자체EMR병원) 간의 유지보수 계약을 통해 비용이 지원되는 구조임을 설명한 것이다.
분쟁 발생 시 ‘실손전산시스템운영위원회’ 통해 조정
마지막으로, 향후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관계기관 간 분쟁이나 의견 조정을 위한 장치도 마련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보험업법에 따라 구성된 ‘실손전산시스템운영위원회’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이 위원회에는 5개 의약단체(의협, 병협, 치협, 한의협, 약사회)가 참여하고 있어, 시스템 운영 및 개선, 관계기관 간 의견 조정 등을 협의하게 된다. 의료 현장의 목소리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네트워크 장애 등 기술적 오류 대응은 실손24 전용 콜센터(1811-3000)와 EMR 업체가 조치 중이다.
최청희 법무법인 CNE 대표변호사는 “이번 실손24 의무화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이해관계의 충돌을 보여준다”며, “소비자 편익 증대와 데이터 표준화라는 공익적 목적이 크지만, 민감한 개인 의료정보를 다루는 일선 의료기관에 법적 의무와 책임을 부과하는 만큼, 보안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보험개발원이 개인정보 누출 배상책임 보험에 가입했다고 밝혔으나 , 이는 전송대행기관의 책임 범위이며, 만약 의원급 기관의 노후 장비나 내부 관리 부실로 인한 유출 시 책임은 여전히 해당 의료기관이 질 수 있어, 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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