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그 이름의 기원, ‘게’라고 묘사한 질병은 라틴어 ‘Crab’에서 유래, 수천 년간 인류의 공포를 상징하다
인류가 마주한 가장 치명적인 질병 중 하나인 ‘암(Cancer)’. 우리는 이 단어를 당연하게 사용하지만, 그 이름이 ‘게(Crab)’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명칭이 질병의 생물학적 특성이 아닌, 하나의 강력한 시각적 묘사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포크라테스는 당시 인류를 괴롭히던 이 정체불명의 종양을 관찰하며, 그 끈질기고 파괴적인 모습이 “마치 게가 모래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다”고 기록했다. 이 직관적인 묘사는 단순한 관찰을 넘어, 이후 수천 년간 인류가 이 질병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대한 은유의 시작이었다.

‘게’, 은유의 시작
모든 것은 이름에서 시작된다. 암을 ‘게’라고 부르기로 한 고대의 결정은, 그 질병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통찰 혹은 깊은 공포를 담고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포착한 ‘모래 속으로 파고드는 게’의 이미지는 놀라울 정도로 다층적이다.
첫째, ‘파고든다’는 행위이다. 이는 질병의 침습성(invasiveness)을 정확히 짚어낸다. 게가 모래를 파고들며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듯, 암 역시 주변의 정상 조직을 침범하고 파괴하며 자라난다. 일단 파고들기 시작한 게를 모래 밖으로 꺼내기 어렵듯, 인체에 뿌리내린 암을 제거하는 것 역시 고대인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둘째, ‘게’라는 생물 자체의 특성이다. 게는 단단한 외피(껍데기)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즉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의 완고함을 상징했다. 또한, 게의 집게발은 주변을 붙잡고 놓지 않는 끈질김을 연상시킨다. 히포크라테스는 어쩌면 종양에서 뻗어 나간 혈관이나 조직의 모습이 게의 다리를 닮았다고 보았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시각적 유사성은 ‘게’라는 단어 속에 응축되어, 라틴어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암’의 공포스러운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명칭을 넘어선 ‘공포’의 상징
이름은 현실을 규정한다. 암이 ‘게’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이 질병은 단순한 의학적 상태를 넘어 인류의 의식 속에서 하나의 ‘적대적 생명체’로 의인화되었다. 이 질병은 더 이상 신체의 기능 부전이 아니라, 몸속에 숨어들어 모래를 파헤치는 ‘게’라는 이질적인 침입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은유는 질병에 대한 인류의 태도를 ‘전쟁’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암과 싸운다(Fight Cancer)”고 말하며, 환자는 ‘전사’가 되고 의료진은 ‘무기(치료법)’를 개발한다. 이 모든 투쟁적 언어의 기저에는 ‘게’라는 은유가 깔려 있다. 게를 잡거나 죽여야만 모래(신체)가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물론 이러한 은유는 질병 극복에 대한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게’라는 은유는 환자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안겨주었다. 자신의 몸이 외부의 적에게 점령당했다는 공포감, 그리고 그 ‘게’를 박멸하지 못했을 때의 패배감은 질병의 고통만큼이나 환자를 괴롭히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히포크라테스의 묘사 하나가 수천 년 뒤 후손들의 심리적 투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고대의 묘사, 현대 의학에 남긴 흔적
현대 의학은 분자생물학과 유전체학의 눈부신 발전을 통해 암이 ‘외부에서 침입한 게’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세포가 변이되어 통제 불능 상태로 증식하는 ‘내부의 반란’임을 밝혀냈다. 이제 우리는 암세포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면역체계가 스스로 암을 인지하도록 유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라는 고대의 은유는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히포크라테스가 묘사했던 ‘파고드는’ 속성은 ‘전이(metastasis)’라는 현대 의학 용어로 이어졌다. 암이 단단한 껍질을 가진 것처럼, 많은 고형암은 치료에 강력히 저항하는 특성을 보인다. ‘게’의 다리처럼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는 모습은 원격 전이의 공포와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우리가 사용하는 현미경과 유전자 시퀀서는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도구이지만, 우리가 마주한 질병의 근본적인 행태는 그가 묘사한 ‘모래 속으로 파고드는 게’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는 질병 자체가 가진 속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이름이 우리의 인식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게’라는 이름표, 그 너머를 향하여
질병의 이름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게’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 이름은 인류가 수천 년간 암에 대해 느꼈던 무력감과 공포, 그리고 그 침습적 특성에 대한 직관적인 통찰의 산물이다. 히포크라테스의 관찰은 의학의 아버지다운 예리함으로 질병의 본질 일부를 꿰뚫어 보았다.
이제 우리는 이 질병을 ‘게’라는 단순한 은유 너머에서 바라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암은 정복해야 할 외부의 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몸의 일부가 길을 잃은 현상이기도 하다. ‘게’와의 싸움이라는 대결 구도를 넘어, ‘길을 잃은 세포’를 다시 정상 궤도로 돌려놓거나, 우리 몸의 시스템(면역)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질병을 관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게’라는 이름의 유래를 아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이 질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히포크라테스가 던진 ‘모래 속의 게’라는 화두는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는 그 은유를 극복하고 새로운 이해로 나아가야 하는 역사적 과제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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