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질량 96프로의 미스터리: 100년 전 시작된 ‘유령 물질’ 추적의 역사
길을 걷던 누군가가 갑자기 뒤에서 잡아당겨지는 강렬한 힘을 느꼈다고 가정해보자.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 힘은 여전히 존재해 그를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있다. 과학자들이 온갖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이 힘의 근원을 촬영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울을 설치해보니 무려 300kg의 질량이 측정됐다. 볼 수 없지만 질량이 존재하는 이 귀신 같은 존재, 이것이 바로 현대 우주론의 가장 거대한 미스터리인 암흑물질(Dark Matter)이다.
현재까지 인류가 이해한 우주는 전체의 4%에 불과하다. 나머지 96%는 암흑물질(약 23%)과 암흑 에너지(약 73%)로 채워져 있다. 특히 암흑물질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별, 행성, 은하를 이루는 일반 물질보다 5배나 더 많이 존재하며, 우주의 구조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암흑물질의 존재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100년에 걸친 추적과 논쟁을 심층 분석했다.

프리츠 츠비키의 역설: 400배 무거운 중력의 발견
암흑물질의 존재는 1933년 스위스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Fritz Zwicky)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그는 지구에서 3억 2천만 광년 떨어진 머리털자리 은하단을 관측했다. 츠비키는 은하단의 질량을 측정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첫 번째는 은하의 움직임을 통해 은하단 전체의 중력을 역산하는 ‘역학 질량’ 측정이었다. 만약 은하단의 중력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면, 은하들은 밖으로 튕겨져 나가야 한다.
두 번째는 은하의 밝기(광도)를 이용해 질량을 추정하는 ‘광도 질량’ 측정이었다. 별의 밝기와 색깔을 통해 그 질량을 추측할 수 있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측정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역학 질량이 광도 질량보다 무려 400배나 더 무겁게 나온 것이다. 만약 광도 질량이 맞다면 은하단의 중력은 너무 약해 은하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지만, 실제 은하단은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츠비키는 결국 인류의 관측 기술로는 볼 수 없는 어떤 물질이 거대한 중력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결론 내리고, 이 보이지 않는 물질을 ‘암흑물질’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당시 학계에서 40~50년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행성 지위 잃었지만… 명왕성과 카론, 태양계 외곽의 이중 행성계가 전하는 우주의 비밀
베라 루빈의 증거: 케플러 법칙을 거부한 은하 회전 속도
암흑물질 논쟁이 다시 불붙은 것은 1960년대였다. 미국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Vera Rubin)과 연구팀은 안드로메다 은하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연구했다. 케플러의 법칙에 따르면, 태양계에서 보듯 질량 중심에 가까울수록 공전 속도는 빠르고, 외부로 갈수록 느려져야 한다. 은하 역시 중심부에 질량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외곽 물질의 회전 속도는 느려져야 마땅했다.
그러나 베라 루빈 팀의 관측 결과, 안드로메다 은하의 중심부든 외곽이든 회전 속도가 거의 동일하게 유지됐다. 이는 은하 외곽에도 막대한 질량이 퍼져 있어야만 가능한 현상이었다. 루빈은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암흑물질의 존재를 지지했다. 그녀의 발표는 천문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츠비키가 제안한 암흑물질 연구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다.

후보 물질들의 탈락: 원자, 마초, 중성미자의 한계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과학자들은 여러 후보 물질을 검토했다. 첫 번째 후보는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데이빗 타이틀러 관측팀과 2003년 나사의 WMAP 관측 결과, 초기 우주의 양성자 및 중성자 비율을 분석했을 때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은 암흑물질이 가진 질량의 2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암흑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이 아니라는 뜻이다.
두 번째 후보는 ‘마초(MACHOs, Massive Compact Halo Objects)’였다. 이는 갈색 왜성, 어두운 행성, 백색 왜성, 블랙홀 등 너무 어두워서 보기 힘든 천체들을 일컫는다. 하지만 1991년 관측 결과, 마초 전체의 질량은 은하 질량의 10% 수준에 그쳤다. 게다가 중성자별이나 갈색 왜성은 가시광선은 방출하지 않아도 X선이나 적외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어떠한 빛의 파장으로도 관측할 수 없다’는 암흑물질의 특성과 모순됐다.
세 번째 후보는 ‘중성미자(Neutrino)’였다. 중성미자는 전기를 띠지 않고 물질을 그대로 통과하는 특성을 가져 암흑물질의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중성미자는 암흑물질이 가진 질량의 6.66%에 불과한 것으로 측정됐으며, 결정적으로 중성미자의 속도는 빛의 속도에 가까워 ‘차가운 암흑물질(Cold Dark Matter)’이라는 우주 구조 형성 가설과 충돌했다.
총알 은하단과 중력렌즈: 암흑물질 존재의 빼박 증거
2006년 나사의 찬드라 X선 관측선이 총알 은하단(Bullet Cluster)을 관측하면서 암흑물질의 존재는 결정적인 증거를 얻게 됐다. 총알 은하단은 두 개의 은하단이 충돌한 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중력렌즈 효과를 이용해 질량 분포를 측정한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은하단 내 가스(붉은색)는 충돌 지점에서 정체됐지만, 은하(푸른색)는 가스 영역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중력렌즈로 측정한 질량 중심은 가스가 아닌 은하들이 모여 있는 곳에 훨씬 크게 나왔다. 이는 은하들을 둘러싼 암흑물질이 다른 물질이나 심지어 같은 암흑물질끼리도 충돌하지 않고 유령처럼 통과해 지나갔음을 의미한다. 이 관측을 통해 암흑물질은 ‘관측할 수 없으며’, ‘다른 물질과 충돌하지 않고 뚫고 지나가며’, ‘전기를 띠지 않는다’는 특성이 확립됐다.
또한, 1985년 카를로스 프랭크 연구팀이 제안한 ‘차가운 암흑물질’ 가설 역시 우주 거대 구조 관측을 통해 강화됐다. SDSS(슬론 디지털 전천 탐사)의 우주 지도와 코스모스 프로젝트의 3차원 암흑물질 지도는 은하들이 균일하지 않고 필라멘트 구조를 띠고 있음을 보여줬다. 밀레니엄 시뮬레이션 결과, 오직 우주 초기부터 존재했던 차가운 암흑물질의 거대한 중력만이 현재와 같은 필라멘트 모양의 우주 거대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음이 입증됐다.
암흑물질 대 수정 뉴턴 역학: 현대 물리학의 기둥을 건드리는 논쟁
암흑물질의 특성이 명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WIMP, 액시온 등)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암흑물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수정 뉴턴 역학(MOND, Modified Newtonian Dynamics)’ 이론이 여전히 과학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모데하의 밀그룹 등으로 대표되는 수정 뉴턴 역학은 은하급 이상의 거대한 사이즈에서는 기존의 중력 이론(뉴턴 역학 및 상대성 이론)이 작동하지 않으며, 중력 이론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정 뉴턴 역학은 암흑물질의 존재를 배제하고도 150개가 넘는 은하의 회전 속도를 설명하는 성과를 냈다. 그들은 암흑물질이 100년 동안 발견되지 않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으며, 인류가 중력을 잘못 이해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수정 뉴턴 역학은 총알 은하단의 중력렌즈 관측 결과나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 형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또한, 현대 물리학의 기둥인 상대성 이론을 특정 조건에 따라 계속 수정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간결하고 아름다운 이론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근본적인 비판에 직면한다. 현재까지는 암흑물질 가설이 수정 뉴턴 역학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의 지지를 훨씬 더 많이 받고 있다.
인류는 암흑물질의 특성을 많이 알아냈지만, 현재까지도 그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우주 질량의 73%를 차지하는 암흑 에너지와 함께, 암흑물질은 현대 물리학이 풀어야 할 가장 거대한 숙제로 남아 있다.

[본 기사는 다른 유튜버 분이 제작하신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정리하여 기사화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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