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영국을 강타한 기이한 현상, ‘울핏의 녹색 아이들’ 전설, 그 진실은?
12세기 중반, 잉글랜드 서퍽주 울핏(Woolpit) 마을은 평화로운 농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두 아이로 인해 이 평화는 산산조각 났다. 피부가 온통 비현실적인 녹색이었고, 그들이 내뱉는 말은 마을 사람들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미지의 언어였다. 이들은 마치 땅속에서 솟아난 듯 보였으며, 오직 콩깍지 외에는 어떤 음식도 거부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단순한 지역 괴담을 넘어, 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사학, 민속학, 심지어 과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울핏의 녹색 아이들’ 전설의 시작이다. 이 기이한 이야기는 과연 단순한 중세의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설명 가능한 역사적 사건이었을까?

12세기 울핏 마을, 충격적인 발견의 기록
녹색 아이들 사건은 12세기 후반의 역사가인 월터 오브 코크셸(Walter of Coggeshall)과 윌리엄 오브 뉴버그(William of Newburgh)의 기록을 통해 전해진다. 이들의 기록에 따르면, 헨리 2세 통치기(약 1154년~1189년)에 울핏 마을 근처의 늑대 함정(Wolf-pits) 근처에서 한 남매가 발견됐다. 이들은 옷차림도 낯설었으며, 피부색은 풀잎처럼 녹색이었다. 아이들은 마을로 옮겨져 리처드 드 칼네(Richard de Calne)라는 기사의 보살핌을 받게 됐다. 처음에는 그들이 제공하는 어떤 음식도 먹지 않고 굶주림에 시달렸으나, 우연히 발견한 콩깍지를 먹고 생명을 유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점차 마을 음식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특히 소년은 병약하여 오래 살지 못하고 사망했다. 하지만 소녀는 살아남아 점차 녹색 피부가 사라지고 일반적인 피부색으로 돌아왔다. 소녀는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마침내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이 기록은 단순한 구전이 아닌, 당시 지식인들에 의해 문서화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신뢰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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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피부와 미지의 언어: 아이들의 증언과 미스터리
영어를 배운 소녀는 자신이 남동생과 함께 ‘성 마틴의 땅(St. Martin’s Land)’이라는 곳에서 왔다고 증언했다. 이 땅은 영원한 황혼이 지배하는 곳이었으며, 모든 것이 녹색이었다고 한다. 소녀는 자신들이 길을 잃고 동굴을 지나 밝은 빛을 따라갔다가 울핏 마을에 도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증언은 당시 사람들에게 지하 세계 혹은 요정의 나라에서 온 존재라는 해석을 낳았다.
아이들이 사용했던 미지의 언어 역시 큰 미스터리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 언어가 플랑드르어(Flemish)의 변형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12세기 헨리 2세 시절, 플랑드르 이민자들이 박해를 받아 고립된 지역으로 숨어들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들이 지하 동굴이나 깊은 숲속에 고립된 플랑드르 공동체 출신이었다면, 그들의 언어가 울핏 주민들에게는 미지로 들렸을 수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역시 ‘녹색 피부’다. 이 녹색 피부가 단순한 상상이나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목격됐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의 분석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녹색 피부에 대한 가장 유력한 의학적 해석은 철분 결핍성 빈혈, 즉 클로로시스(Chlorosis)다. 이 질환은 특히 중세 시대에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흔히 발생했는데, 심각한 빈혈은 피부를 창백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미세한 녹색조를 띠게 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이들이 햇빛이 차단된 지하 환경이나 매우 고립된 곳에서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로 지냈다면, 피부색이 일시적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후 정상적인 식사를 통해 피부색이 돌아왔다는 소녀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지하 세계’ 혹은 ‘질병’: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해석
‘울핏의 녹색 아이들’에 대해 현대 학계는 크게 두 가지 주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첫째는 앞서 언급된 ‘역사적/의학적 해석’으로, 아이들이 실제로 울핏 근처의 고립된 지역, 예를 들어 광산이나 동굴에 갇혀 지내던 이민자 집단의 후손이며, 햇빛 부족과 철분 결핍으로 인해 녹색 피부를 갖게 됐다는 주장이다. 특히 울핏 근처의 세인트 마틴 교회가 있던 버리 세인트 에드먼즈(Bury St Edmunds) 지역에는 당시 플랑드르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다 길을 잃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둘째는 ‘민속학적/신화적 해석’으로, 이 이야기가 중세 유럽의 일반적인 요정 이야기나 지하 세계에 대한 믿음이 투영된 결과라는 주장이다. 아이들의 증언, 즉 ‘영원한 황혼의 땅’이나 ‘지하 세계’를 통해 왔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문화적 상상력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 해석은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보다는, 중세 사람들이 낯선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록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이 전설은 12세기 영국의 사회적 혼란, 이민자 문제, 그리고 미지의 것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공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로 분석된다. 녹색 피부는 의학적 현상이었을지 몰라도, 그들이 겪은 고립과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전설이라는 옷을 입고 8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울핏의 녹색 아이들’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이후 수많은 문학과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이 이야기는 외계인, 이세계(異世界), 그리고 고립된 문명에 대한 현대적 상상력의 원형 중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미지의 존재가 갑작스럽게 나타나 기존 사회에 충격을 주는 서사는 SF나 판타지 장르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됐다.
중세의 기록가들이 목격한 현상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화적 배경과 지식의 한계로 인해 이야기는 신비화됐다. 현대에 와서야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분석을 통해 이 전설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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