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끝나지 않은 역사: 인권 운동으로 승화된 피해자들의 목소리
‘위안부’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 속에서 일본군이 아시아 전역에서 수많은 젊은 여성을 조직적이고 강제적으로 동원하여 성노예로 삼았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과거를 일컫는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오늘날까지 그 영향이 지속되며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이자 전시 성폭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강력히 규정되고 있다. 피해자들이 수십 년간의 침묵을 깨고 용기 있는 증언을 시작하면서 이 비극의 실체가 전 세계에 알려졌고, 이는 단순한 배상을 넘어 역사적 진실 규명과 정의 실현을 위한 끈질긴 투쟁의 상징이 됐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오랜 고통 속에서도 고(故) 김학순 할머니께서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면서 역사의 물꼬를 텄다. 할머니의 용기 있는 외침은 다른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는 큰 용기가 됐고, 이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인권 운동으로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듬해인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일 주제의 집회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기록하게 됐다. 이 시위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가장 핵심적인 목소리가 됐으며, 국내외 인권 단체들과 수많은 시민, 그리고 미래 세대들이 연대하며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수호하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 됐다.
국제사회 역시 유엔 인권기구를 비롯해 미국, 유럽 의회 등 여러 국가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도의적 책임을 강력히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며 인권적 연대를 표명해 왔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와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등 세계적인 인권 단체들 또한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강제성’을 부정하고 ‘민간업자의 개입’만을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여, 이 문제가 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로 남아있는지 강한 의문을 품게 한다. 과연 우리는 이 끝나지 않은 역사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위한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까?

참혹했던 일본군 ‘위안부’ 시스템의 실체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일본군에 의해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운영됐던 군대 성노예 시스템을 지칭한다. 일본군이 점령했던 한반도,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미얀마, 네덜란드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거짓 취업, 납치, 또는 가족을 인질로 잡는 등 다양한 강제적인 방법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위안소’라는 이름의 시설에서 군인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했으며, 하루에도 수십 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하는 비참한 생활을 강요받았다.
열악한 위생 상태, 강제적인 피임 및 낙태, 영양 부족, 그리고 극심한 성폭력과 물리적 폭력에 시달렸으며, 대부분은 살아남더라도 평생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육체적 상처, 사회적 낙인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이는 명백한 전시 성폭력 및 반인도적 범죄로, 국제법상 어떠한 정당성도 인정될 수 없는 인류에 대한 만행이 됐다.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자발적 매춘’이라는 주장은 이 시스템의 본질을 왜곡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지우려는 파렴치한 시도에 불과하다.
120년 전 러시아 정벌 의미 담긴 정로환의 숨겨진 역사
침묵을 깬 용기: 수요시위와 피해자들의 외침
오랜 침묵과 사회적 금기를 깨고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면서 역사의 물꼬를 텄다. 이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피해자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최초의 공식적인 증언이 됐다. 할머니의 용기는 이후 다른 생존자들이 자신의 아픔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이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인권 운동으로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듬해인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꾸준히 이어져 왔다.
시위 현장에는 ‘소녀상’이 자리하여 침묵하는 증인이 됐고, 할머니들은 물론 학생, 시민 단체 회원,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단일 주제 집회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 시위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현재에도 이어지는 인권 유린에 대한 경고와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와 정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위를 넘어 피해자들의 삶과 투쟁이 살아 숨 쉬는 역사 교육의 장이 됐다.

국제사회의 외면과 압력, 그리고 일본의 대응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특정 국가만의 국지적인 문제가 아닌 인류 보편의 여성 인권 문제이자 전시 성폭력이라는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에 인식되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현 유엔 인권이사회)는 1996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통해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법적 배상을 권고했으며, 이는 국제사법 기구의 첫 공식적인 권고가 됐다. 2007년 7월에는 미국 하원이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와 책임 인정을 촉구하는 결의안(HR 121)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고, 유럽 의회 또한 2007년 12월 유사한 결의안을 채택하며 국제적인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군에 의한 강제성’을 부인하거나 ‘민간 업자의 개입’을 주장하며 역사 왜곡을 지속하고, 자국의 교과서에 관련 내용을 축소하거나 삭제하는 등 진정성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체결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문구로 오히려 피해자들의 고통을 지우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합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역시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운영돼 논란을 낳았고, 결국 한국 정부가 사실상 합의 파기를 선언하는 등 문제 해결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태도는 피해자들의 상처를 깊게 하고, 진정한 미래 지향적 관계 구축을 가로막는 요인이 됐다.
역사적 진실과 미래 세대의 과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그들의 용기 있는 투쟁은 영화 ‘귀향'(2016), ‘아이 캔 스피크'(2017), 다큐멘터리 ‘그리고 싶은 것'(2015)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며 역사 교육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히 피해자들의 아픔을 조명하는 것을 넘어, 전쟁 상황에서의 여성 인권 유린, 전쟁 범죄의 심각성, 그리고 역사 정의 실현의 중요성이라는 보편적 메시지를 통해 현대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는 또한 피해자 중심의 역사 서술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를 위한 교훈을 제공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미래 세대에게는 이 비극적인 역사를 정확히 인지하고,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것을 넘어 공감과 연대의 정신으로 계승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다시는 인류에게 이와 같은 반인도적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수호하고,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넘어 현재 진행형인 인권 운동의 중요한 축이다. 피해자들이 경험했던 고통과 억압은 모든 인류가 기억하고, 반성해야 할 역사적 교훈이 됐다. 진정한 해결은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사죄와 법적 배상, 그리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가능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일 양국만의 외교적 문제가 아닌, 전쟁과 여성 인권, 그리고 역사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다루는 국제적 과제로서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끝까지 존중되고, 정의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함께 기억하고 연대해야 한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기사
[반려동물] 솜사탕 외모 비숑 프리제, 짖음·분리불안 해결과 빛나는 털 관리 비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