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두암과 여포암의 명확한 차이와 발생 기전 이해가 완치의 첫걸음
흔히 ‘착한 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갑상선암은 국내 암 발생률 1위를 다툴 만큼 흔한 질환이다. 높은 생존율 덕분에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갑상선암의 복잡성을 간과한 위험한 인식일 수 있다. 갑상선암은 단일 질환이 아니며, 세포의 기원과 성질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전체 갑상선암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유두암’과 ‘여포암’은 발생 원인인 기전부터 전이 경로, 진단 방법까지 판이한 양상을 보인다. 이 두 암종의 명확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환자의 예후를 결정짓는 첫걸음이 된다.

방사선과 유전자가 만든 유두암, 요오드 결핍이 부른 여포암
두 암종은 ‘왜 생기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부터 다르다. 전체 갑상선암의 약 90%를 차지하는 유두암(Papillary Thyroid Cancer)의 가장 강력하고 잘 알려진 위험 인자는 ‘방사선 노출’이다. 특히 어릴 때 머리나 목 부위에 방사선 치료를 받았거나, 원자력 사고 등으로 다량의 방사선에 노출된 경우 발병 위험이 현저히 증가한다.
유전적 요인 또한 유두암 발생의 핵심 열쇠다. 한국인 갑상선 유두암 환자의 경우, 약 70~80%에서 ‘BRAF(브라프)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된다. 이 돌연변이는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신호 전달 체계를 교란시켜 암세포를 만든다. 이외에도 RET/PTC 유전자 재배열 등이 유두암 발병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여포암(Follicular Thyroid Cancer)은 식습관, 특히 ‘요오드(Iodine) 섭취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오드는 갑상선 호르몬을 만드는 주원료인데, 이 요오드 섭취가 만성적으로 부족한 지역에서 여포암과 여포 선종의 빈도가 높게 나타난다. 한국은 김, 미역 등 해조류를 즐겨 먹는 요오드 충분 지역이기에 여포암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식습관이 서구화되거나 요오드 섭취가 극단적으로 제한될 경우 발병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여포암은 RAS 유전자 돌연변이나 PAX8-PPARγ 유전자 재배열이 흔하게 발견되어, 유두암과는 다른 유전적 경로를 밟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갑상선 호르몬의 핵심 원료, 한국인의 요오드 딜레마를 해부하다. 양날의 검으로 돌아오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림프절을 노리는 유두암
현미경으로 봤을 때 유두(젖꼭지) 모양을 닮은 유두암은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특징이 있다. ‘거북이 암’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면 10년 생존율이 98% 이상에 달할 만큼 예후가 좋다.
그러나 느리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유두암은 크기가 작더라도 목 주위의 림프절(임파선)로 전이되는 경향이 강하다. 림프절 전이가 발생하면 수술 범위가 커지고, 수술 후 방사성 요오드 치료가 추가로 필요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림프절 전이가 있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생존율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두암은 초음파상에서 불규칙한 경계나 미세 석회화 소견 등 비교적 뚜렷한 특징을 보여 진단이 용이한 편이다.

혈관을 타고 뼈와 폐로 침투하는 여포암의 기습
유두암에 이어 두 번째로 흔한 여포암은 림프절보다는 혈관을 타고 이동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를 ‘혈행성 전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여포암은 진단 당시 이미 폐나 뼈, 뇌 등 먼 장기로 전이된 경우가 유두암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
여포암은 유두암보다 평균적으로 발병 연령대가 조금 더 높으며, 원격 전이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 유두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초기에 발견된다면 유두암과 마찬가지로 매우 높은 완치율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여포암의 진단 과정이 유두암보다 훨씬 까다롭다는 데 있다.
김종민 서울 민병원 병원장(내분비 외과 전문의)은 “많은 환자가 갑상선암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유두암과 여포암은 발생 기전과 전이 경로 자체가 다르다”며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유두암이 방사선 노출이나 특정 유전자 변이와 연관되어 림프절로 번지는 경향이 있다면, 여포암은 혈관 고속도로를 타고 폐나 뼈로 날아가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여포암 진단 시에는 목뿐만 아니라 전신 뼈 스캔이나 흉부 CT 등을 통해 원격 전이 여부를 면밀히 살피는 과정이 필수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세침흡인검사의 한계와 수술적 진단의 딜레마
임상 현장에서 의료진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여포암의 진단이다. 갑상선에 결절(혹)이 발견되면 보통 주사기로 세포를 뽑아내는 세침흡인세포검사를 시행한다. 유두암은 세포 모양이 특이하여 이 검사만으로도 진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포암 세포는 정상 세포나 양성 종양인 ‘여포 선종’과 모양이 거의 흡사하다.
여포암을 확진하기 위해서는 종양을 감싸고 있는 캡슐(피막)이나 혈관을 암세포가 뚫고 나갔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는 세포만 뽑아내는 세침검사로는 확인할 수 없다. 결국 여포암 의심 소견이 나오면 진단과 치료를 목적으로 수술을 먼저 진행해야 한다. 떼어낸 조직을 정밀 분석하여 침범 사실이 확인되면 그때서야 ‘암’으로 확진되고, 그렇지 않으면 ‘양성 종양’으로 판명된다. 이는 환자들이 수술 전까지 암 여부를 확신하지 못한 채 수술대에 오르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수술과 방사성 요오드 치료, 그리고 평생 관리
두 암종 모두 치료의 근간은 수술이다. 암의 크기, 위치, 전이 여부 등을 고려하여 엽절제술이나 전절제술을 시행한다. 여포암의 경우 수술 전 악성 여부가 불분명하여 엽절제술을 먼저 시행했다가, 조직검사 결과 암으로 판명되면 남은 갑상선을 제거하는 2차 수술을 진행하기도 한다.
수술 후 재발 위험이 높으면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시행하여 잔존 암세포를 제거한다. 또한 갑상선 전절제술 환자는 평생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부족한 호르몬을 보충하는 것을 넘어, 암세포 재성장을 자극하는 갑상선 자극 호르몬(TSH) 수치를 낮추기 위함이다.
김경래 서울 민병원 내과 대표원장(내분비내과 전문의)은 수술 후 환자들의 생활 습관에 대해 조언을 덧붙였다. 그는 “한국인은 요오드 섭취가 충분한 편이지만, 갑상선암 수술 후 ‘몸에 좋다’는 속설만 믿고 다시마나 요오드 엑기스 등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앞두고 있다면 엄격한 저요오드 식이를 지켜야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의 지침에 따른 균형 잡힌 식단과 꾸준한 호르몬제 복용, 그리고 정기적인 추적 관찰이다”라고 당부했다.
결국 유두암이든 여포암이든, 갑상선암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태도는 ‘과도한 공포’를 버리고 ‘정확한 지식’을 갖추는 것이다. 두 암종의 발생 원인과 특성을 이해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이어간다면, 갑상선암은 충분히 정복 가능한 질병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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