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예방 차원 수술 보장 논란: ‘예방’과 ‘치료’ 사이의 실손보험 딜레마
2013년,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암 발병 위험을 줄이기 위해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는 소식은 전 세계적인 충격을 안겼다. 이는 단순한 유명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BRCA1과 같은 유전자 변이를 가진 고위험군 환자들에게 ‘선제적 건강 관리’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80%에 육박하는 유방암 발병 확률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예방적 절제술은 생존율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의학적 선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냉혹하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이 고난도의 수술이 사적 영역인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에서는 ‘치료’가 아닌 ‘예방’ 또는 ‘미용’ 목적으로 분류돼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소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의학적 발전과 보험 제도의 기준이 충돌하는 첨예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유전적 고위험군, 예방적 절제술의 의학적 정당성
예방적 유방 절제술(Prophylactic Mastectomy)은 BRCA1, BRCA2 유전자 변이 등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유방암 발병 위험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통상적으로 BRCA 유전자 변이 보유자는 평생 유방암 발병 위험이 50~8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예방적 절제술을 시행하면 발병 위험을 9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강력한 의학적 근거가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질병을 예방하는 차원을 넘어, 이미 ‘질병의 씨앗’을 안고 사는 환자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치료적 행위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이 의료계에서 지배적이다. 특히 암 발병 전 수술을 통해 환자가 겪을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비용을 장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은 예방적 절제술의 가치를 높이는 요인이다.
하지만 실손보험 약관은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만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암이 ‘발병’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되는 예방적 수술은 아직 ‘치료’의 범주에 포함되기 어렵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로 인해 고위험군 환자들은 수천만 원에 달하는 수술 비용을 오롯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는 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보험 가입자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료를 꾸준히 납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모순을 낳는다.
오상희 인카금융서비스(주) 다이렉트서울엠트리지점장은 “실손보험 약관이 예방적 의료 행위를 보장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는 것은 보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라며, “하지만 유전자 변이 고위험군의 예방적 절제술을 단순 예방이 아닌 ‘적극적 치료’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거 객관적인 의학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실손보험의 ‘치료’ 정의와 유방암 예방 차원 수술의 사각지대
한국의 실손보험은 원칙적으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요양급여 또는 ‘의료급여법’에 따른 의료급여를 받은 항목 중 본인 부담금과 비급여 항목 일부를 보장한다. 문제는 예방적 수술이 이 기준에서 벗어날 때 발생한다. 보험사는 약관에 따라 ‘건강검진, 예방접종, 인공유산 등 예방 목적의 의료 행위’는 보장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보험사 입장에서 유전자 변이 보유자에게 지급을 시작하면, 이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무한한 보장을 의미하며, 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또한, 모든 고위험군 환자에게 예방적 수술 비용을 지급할 경우, 보험료 인상 압박으로 이어져 일반 가입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반면, 환자들은 유전자 변이 자체가 이미 ‘질병 상태’로 봐야 하며, 발병을 막기 위한 행위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치료’라고 주장한다. 특히 유방암 예방 차원 수술 후 시행되는 유방 재건술의 경우, 외형 복구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미용 목적으로 분류돼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의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금융감독원 등 감독 기관의 분쟁 조정 사례에서도, 유전자 변이의 위험도를 인정하여 보험금 지급을 권고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는 개별 사례에 국한될 뿐 명확한 통일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보험사와 가입자, 첨예한 대립 속 합리적 협의의 필요성
이러한 갈등은 단순히 보험사와 가입자 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현대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비용 분담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보험사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가입자는 정당한 보험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핵심은 ‘유전자 변이 보유’라는 특수한 상황을 어떻게 정의하고 보장 범위에 포함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합리적인 협의를 위해서는 제3의 기관인 정부나 금융 당국이 나서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를 들어, BRCA 변이 보유자 중에서도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고위험군에 대해서는 예방적 수술을 ‘치료의 연장선’으로 인정하고, 최소한의 보장 범위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실손보험의 본래 취지인 국민의 의료비 부담 경감에 부합하며, 동시에 보험사의 예측 가능한 재정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미래 지향적 의료 시스템을 위한 정책적 과제
미래의 의료 시스템은 유전자 검사 기술의 발달로 ‘발병 후 치료’에서 ‘발병 전 예방’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될 것이다. 유방암 예방 차원 수술 논란은 이러한 전환기에 한국 사회가 겪는 진통이다. 현재의 실손보험 약관은 낡은 기준에 머물러 있어, 새로운 의학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보험업계와 의료계, 금융 당국은 협의체를 구성하여 유전자 변이와 같은 고위험군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예방적 수술의 보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보험금을 지급할지 말지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고위험군 환자에게는 공공의료 차원에서 일부 지원을 확대하거나, 실손보험 내에서도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부분적으로 보장하는 ‘절충형 모델’을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환자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안전망을 제공하고, 보험사에게는 무분별한 지급을 막아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게 하는 상생의 길이다. 유방암 예방 차원 수술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개인의 생명권과 사회적 비용 분담이라는 두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 할 수 있다.
오상희 인카금융서비스(주) 다이렉트서울엠트리지점장은 “BRCA 변이 고위험군에게 무분별하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전체 보험 재정 건전성을 해치고 일반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공 부문에서 유전자 검사를 지원하고, 실손보험은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부분적으로 보장하는 절충형 모델 도입을 통해 국민의 생존권과 보험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