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배상책임 누가 져야 하나? 영국, 미국, 일본의 의료사고 배상제도 비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최근 「의료사고 배상보험·공제 및 형사 특례 정책의 현황과 과제」라는 연구보고서(이하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의료사고를 둘러싼 현행 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의료사고 배상보험·공제 의무가입 정책과 형사 특례 제도와 같은 정부의 주요 정책이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국내외 사례를 통해 개선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의료사고 배상보험·공제 의무화의 문제점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의료사고 배상보험·공제 의무화 정책이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헌법적으로 논란이 될 소지가 있으며, 정책 도입 전에 신중한 검토와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영국은 의료사고 배상을 국가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의료인이 배상금을 부담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 의료사고 배상금이 급증하던 시기에 배상금 상한제를 도입하며 의료 환경을 안정화했다. 일본은 의료사고 배상보험·공제 가입 여부를 의료인의 자율에 맡기고 있으며, 법적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배상보험·공제 가입을 의무화하면서 이를 형사 특례 적용의 조건으로 설정해 의료인의 재정적, 법적 부담을 동시에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연구진은 한국의 상황에서 배상보험·공제와 더불어 운영되고 있는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불제도가 배상보험·공제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명확히 정의하고, 의무가입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발생할 비용과 그로 인한 기대효과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사 특례 제도의 복잡성과 한계
보고서는 정부가 제시한 형사 특례 제도는 조건과 범위가 지나치게 복잡하며, 예외사유가 많아 실제로는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덜기보다는 오히려 소송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연구진은 형사 특례 제도가 의료 민·형사 소송을 줄이고 필수의료의 이탈을 방지하려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에 현재의 특례 제도는 의료사고를 일으킨 모든 의료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방식으로 단순화해야 하며, 고의 또는 중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특례 적용을 배제하는 예외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의료인의 고의 또는 중과실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 조사기관과 조사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법적 다툼을 줄이고 특례 적용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사고 국가 책임 강화의 필요성
보고서는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를 주요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기관은 개설과 동시에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실상 국가 주도의 사회보험 체계에 포함되어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의료인 개인이 부담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비판이다.
연구진은 장기적으로는 의료사고를 국가배상법의 적용 대상으로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단기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안했다.
- 의료행위의 위험도를 재산정하고, 이를 수가에 반영.
- 배상보험·공제료를 국가가 일부 지원.
- (가칭) 의료사고 배상기금을 설립.
-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의 범위를 확대.
이 같은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의료인의 부담을 경감하고 의료사고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료인의 목소리를 반영하라
의료정책연구원은 현행 정책이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는 의료계의 불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에 “형사 특례 제도와 관련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의료사고 배상보험·공제 가입률 증가, 신속하고 적절한 배상, 민·형사 소송 감소, 필수의료 이탈 방지 등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