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 병원 수요 급증… 그러나 ‘의료시설 용도변경’은 전문 지식과 경험 요구하는 복잡한 미로
“병원” 간판 뒤의 복잡한 행정 절차
우리 주변 상가 건물에 새로운 병원이나 의원이 들어서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의료 서비스 접근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어있는 상가에 진료 장비를 들이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것만으로 ‘병원’ 간판을 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환자용 병상을 갖춘 ‘병원급’ 의료기관 또는 요양원, 실버타운과 같은 ‘실버시설’을 운영하려 한다면, 눈에 보이는 공사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 핵심에는 ‘의료시설 용도변경’이라는 과정이 있다. 용도변경이란, 건축물대장에 등재된 건물의 공식적인 사용 목적을 다른 용도로 변경하는 행위를 뜻한다. 현행법상 건축물의 실제 사용 용도는 반드시 건축물대장의 용도와 일치해야 한다. 만약 해당 관청의 허가나 신고 절차 없이 기존 근린생활시설이나 업무시설에서 의료 행위를 할 경우, 이는 명백한 불법으로 ‘위반건축물’로 적발되어 이행강제금 부과 등 심각한 법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애초에 병원 전용으로 설계되어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면, 이 용도변경 절차는 병원급 의료기관 개설의 첫 번째이자 가장 험난한 관문이 된다.

‘신고’ 아닌 ‘허가’… 겹겹이 쌓인 법규의 산
용도변경 절차는 크게 ‘신고’와 ‘허가’로 나뉜다. 건축법은 시설의 위험도나 특성에 따라 9개의 ‘시설군’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상위 시설군에서 하위 시설군으로 변경할 경우는 ‘신고’ 대상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허가’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상업용 건물이 속한 ‘근린생활시설군’이나 ‘업무시설군’에서 ‘교육 및 복지시설군’에 속하는 의료시설로 변경하는 것은 상위 시설군으로의 변경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아, 까다로운 허가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문제는 이 허가 과정이 단 하나의 법률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 건축물의 용도변경과는 달리, 병원이나 실버시설의 용도변경은 수많은 법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고도의 전문 분야다. 가장 기본이 되는 건축법 외에도, 의료기관의 시설 기준을 규정하는 의료법, 요양시설 기준을 담은 노인복지법,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소방법, 그리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국토법과 각 지자체 조례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여기에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른 편의시설 기준, 주차장법, 하수도법 등 기타 관련 법규까지 만족시켜야 하므로, 다년간의 경험과 전문 지식 없이는 첫 삽을 뜨기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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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소방, 승강기… 병원이 갖춰야 할 필수 조건
의료시설 용도변경 허가를 위한 핵심 체크리스트는 건물의 구조적 안전성과 환자의 편의성, 그리고 재난 시 대피 능력을 보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첫째, 소방안전 기준은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는 부분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상주하는 시설의 특성상, 화재 시 신속한 대피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2개소 이상의 피난계단 확보는 필수적이며, 환자용 침대가 이동할 수 있도록 복도의 유효 폭을 최소 1.8m 이상 확보해야 한다. 또한 스프링클러, 자동화재탐지설비, 비상방송설비, 방화문 및 방화셔터, 그리고 화재 확산을 막는 층별 방화구획 기준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둘째, 장애인 편의시설이다. 이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법’에 따라 법적 기준을 준수해야 하며, 때로는 지자체별로 추가적인 가이드라인이 존재하기도 한다. 주 출입구의 접근성, 내부 이동 동선, 전용 화장실 설치 등 모든 환자가 차별 없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셋째, 주차장 문제다. 법정 주차대수 기준은 주차장법과 지자체 조례에 따라 정해지며, 예를 들어 연면적 150㎡당 1대와 같은 구체적인 기준을 따라야 한다. 또한 전체 주차대수의 일정 비율(예: 3%) 이상을 장애인 전용 주차구획으로 확보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넷째, 승강기 요건이다. 일반 상가에 설치된 승객용 승강기로는 병원 허가를 받기 어렵다. 응급 환자나 침대에 누운 환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최소 1600Kg급 이상의 ‘스트레처용(침대용)’ 병원 승강기 설치가 요구된다. 이는 기존 건물의 승강기 통로(샤프트) 확장이나 구조 변경을 수반할 수 있어 가장 큰 비용과 난이도를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전재호 한신부동산 중개 행복큐산업 부장(02-987-8080)은 “많은 건축주가 용도변경을 단순한 인테리어 변경으로 오인하고 접근했다가 막대한 추가 비용과 시간 손실을 겪는다”라며, “특히 소방, 주차, 승강기 기준은 기존 건물의 구조적 한계와 맞물려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반드시 계약 전 건축, 소방, 보건소 등 유관기관과의 면밀한 사전협의와 전문가의 타당성 검토가 선행되어야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13단계의 험난한 여정, ‘용도변경’의 A to Z
의료시설 용도변경의 실제 과정은 최소 수개월이 소요되는 복잡한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1단계 ‘가능성 검토’다. 앞서 언급된 모든 법규를 현장 조사를 통해 검토하고, 지자체 건축과, 보건소, 소방서와의 사전 협의를 거쳐 기본 계획을 수립한다. 이 단계에서 ‘불가’ 판정이 나면 프로젝트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가능성이 확인되면 의뢰 및 계약 후 2단계 ‘서류 작성 및 허가 신청’에 들어간다. 수많은 설계 도서와 법규 검토 서류를 구비하여 관할 지자체에 용도변경 허가를 신청한다.
3단계 ‘공사 착수 및 시설 보완’이다. 허가서(또는 신고필증)가 교부되면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법에서 요구하는 소방, 위생, 전기, 장애인 편의시설 등을 완벽하게 설치 및 보완해야 한다.
공사가 완료되면 4단계 ‘사용승인 및 완비 증명’ 절차를 밟는다. 사용승인 서류를 작성해 신청하면, 담당 공무원의 현장 확인 및 검토가 이루어진다. 특히 소방시설 완비 증명서 발급은 필수이며, 모든 기준을 통과해야 최종 ‘사용승인서’를 교부받을 수 있다.
마지막 5단계 ‘등록 완료’ 다. 사용승인을 바탕으로 건축물대장의 용도가 공식적으로 변경된다. 이 변경된 건축물대장을 가지고 관할 보건소에 ‘의료기관 개설신고(허가)’를 마쳐야 비로소 합법적인 의료기관으로 운영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전문성 확보가 성패를 가른다
이처럼 의료시설 용도변경은 건축, 법률, 행정, 의료 정책이 복합적으로 얽힌 특수 분야다. 상업용 부동산 임대차 실무에서도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핵심 사항으로 꼽힌다. 건물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소유주나 성공적인 개원을 꿈꾸는 의료인 모두에게 이 과정은 거대한 장벽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병원 개발 및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다년간 축적된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복잡한 법규 검토와 행정 절차를 일반 건축사무소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내 최다 실적을 내세우며 의료 및 실버시설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들의 경쟁력이다.
고령화 사회가 심화될수록 병원, 요양병원, 요양원 등 의료 및 실버시설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첫걸음은, 기존 시설을 안전하고 합법적인 의료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용도변경’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성민 하이메디파트너스 대표는 “용도변경 허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설 이후의 운영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야간 응급 진료시 발생하는 소음이나 출입 문제로 기존 상가 세입자들과 분쟁이 생길 수 있고, 전문 위탁업체를 통해 처리해야 하는 의료 폐기물 문제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러한 운영 규약과 비용 부담 주체를 임대차 계약 단계에서부터 세심하게 조율하는 것이 성공적인 병원 운영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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