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담배를 처방했던 시대: 스트레스 해소제로 둔갑했던 치명적인 권고
1930년대 미국 뉴욕의 한 병원 진료실. 만성적인 불안감과 집중력 저하를 호소하는 환자에게 의사는 청진기를 내려놓고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의 신경을 진정시키고 생각을 명료하게 하는 데는 이것이 최선입니다. 하루 세 개비씩 규칙적으로 피우세요.” 의사가 처방한 것은 다름 아닌 담배였다. 오늘날 공중 보건의 최대 적(敵)으로 규정되는 담배가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의학적 권위를 등에 업고 환자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집중력 향상을 위한 ‘치료제’로 권장됐던 충격적인 역설이 존재했다.
이처럼 과거 의사들이 담배를 처방했던 시대는 과학적 증거 기반의 현대 의학이 확립되기 전, 인류가 얼마나 치명적인 오판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에피소드를 넘어, 과학적 사실과 대중적 믿음, 그리고 거대 산업의 마케팅이 얽혀 공중 보건을 어떻게 위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니코틴, ‘만병통치약’으로 오해받다
담배가 의학적으로 사용된 역사는 매우 길다. 16세기 유럽에 처음 전파됐을 때, 담배는 신대륙에서 온 신비로운 약초로 여겨졌다. 초기 유럽 의사들은 담배가 소화 불량, 두통, 심지어 천식에까지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특히 스페인의 의사 니콜라스 모나르데스(Nicolás Monardes)는 담배가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 질병이 65가지가 넘는다고 기술했다. 담배 연기를 이용한 매우 이례적인 치료법도 있었다. 심지어 18세기 조지 왕 시대에는 물에 빠진 익사자를 소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담배 연기 관장(smoke enema)이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니코틴의 일시적인 각성 및 진정 효과는 의학계와 대중에게 긍정적으로 해석됐다. 니코틴이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일시적으로 집중력을 높이고 긴장을 완화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의료 전문가들은 이러한 효과를 근거로 담배가 신경쇠약(Neurasthenia)이나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안정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일부 담배 회사들은 의사들이 특정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내며, 담배의 해악이 아닌 ‘건강 증진 효과’를 강조했다. 이는 의료계의 권위가 상업적 이익과 결합하여 대중의 건강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오용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의학적 권위가 마케팅 도구로 전락하다. ‘의사들이 가장 많이 피우는 담배’
담배 제조사들은 의사들의 권고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는 의사들이 담배 광고의 주요 모델로 등장했다. 특히 R. J. 레이놀즈(R. J. Reynolds) 담배 회사가 카멜(Camel) 담배를 홍보하며 펼친 “더 많은 의사들이 카멜을 피운다(More Doctors Smoke Camels)”는 캠페인은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광고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 광고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고, 그 결과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카멜 담배가 다른 담배보다 목에 덜 자극적이라고 주장했다.
의사들뿐 아니라 치과의사, 과학자 등의 전문가 집단도 광고에 동원됐다. 담배 회사들은 이러한 전문가의 권위를 이용해 담배가 목에 자극이 적고, 심지어 비만에도 좋은 ‘다이어트 제품’이나 ‘만병통치약’처럼 건강에 유익하다는 허위 사실을 대대적으로 유포했다. 의료계의 지지가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골적인 의료 전문가 활용 광고는 1950년대 초반 미국 의사협회지(JAMA)가 담배 회사들의 이러한 행태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취할 때까지 성행했다.
과학적 증거의 등장과 치명적인 오판의 종식
그러나 이러한 치명적인 오판의 시대는 과학적 증거가 쌓이면서 막을 내렸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50년에 찾아왔다. 1950년은 담배 흡연과 폐암 등 치명적인 질병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3편의 핵심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된 해였다. 영국의 과학자 리처드 돌(Richard Doll)과 오스틴 브래드포드 힐(Austin Bradford Hill)은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흡연과 폐암(Smoking and Carcinoma of the Lung)’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흡연이 폐암의 중요한 원인임을 통계적으로 증명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어니스트 윈더(Ernest Wynder)와 에바츠 그레이엄(Evarts Graham)이 폐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조 연구를 통해 흡연이 폐암의 발병 요인임을 밝혔다.
과학자들은 니코틴이 주는 일시적인 각성 효과 뒤에 감춰진 심각한 유해성을 밝혀냈고, 공중 보건에 대한 위협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1958년 정부의 공식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커졌고, 1964년에는 미국 공중보건국장(Surgeon General) 보고서가 발표되며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치명적인 해악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대중의 인식을 급격하게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담배 회사들은 더 이상 의사의 권위를 광고에 활용할 수 없게 됐으며, 정부와 공중 보건 당국은 담배 규제 정책을 강화했다. 담배가 만병통치약으로 오해받고 의사가 이를 처방했던 시대는 과학적 사실과 산업적 마케팅의 부도덕한 결합이 낳은 공중 보건 역사의 암흑기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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