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약분업 파기 선언, 정부·국회 ‘정책 폭주’ 규탄, 3대 의료악법 저지 위한 전국의사대표자 궐기대회 개최
16일, 싸늘한 추위가 맴도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이 흰 가운을 상징하는 함성으로 뒤덮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의사 대표자들은 ‘국민건강수호 및 의료악법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열고,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의료 정책들을 ‘3대 의료 악법’으로 규정하며 총력 저지를 선포했다.
이날 집회는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를 중심으로 대한개원의협의회,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등 의료계 핵심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이들은 환자를 돌봐야 할 진료실을 떠나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설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국회와 정부의 ‘입법 폭주’와 ‘정책 폭주’라고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의사들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강행되는 정책들이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절박함이 현장을 가득 메웠다.

성분명 처방 강행, “의약분업 파기 선언”으로 규정
이날 궐기대회에서 가장 격앙된 반발을 불러일으킨 쟁점은 ‘성분명 처방 강제화’ 입법 시도였다. 의사들은 이를 환자 안전을 볼모로 잡는 행위이자 의사의 전문적인 처방권을 송두리째 빼앗으려는 시도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정부가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의 책임을 방기한 채, 그 핑계 뒤에 숨어 성분명 처방을 강제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동일 성분이라는 이유로 의사의 판단 없이 약제가 대체된다면 환자 안전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반문하며 , “이는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를 깨뜨리는 명백한 의료악법”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의료계는 이 법안이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이후 20여 년간 지켜온 원칙을 정면으로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김 회장은 “성분명 처방 강행은, 곧 의약분업 파기 선언”이라고 천명하며, 만약 악법이 강행될 경우 의약분업 파기를 포함한 모든 대정부 투쟁 수단을 총동원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최정섭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회장 역시 “의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처방한 약이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재고떨이 약으로 임의조제될 수 있다”며, 이는 “국민을 담보로 실험하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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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실험 대상 아니다”… 한의사 엑스레이 허용 결사반대
‘한의사 엑스레이 사용 허용’ 시도 역시 의료계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의사들은 고도의 의학적 전문성이 필요한 진단 영역에 비전문가인 한의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방조하는 것이라며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박상호 범대위 한방X-ray저지위원회 위원장은 “엑스레이 영상 판독과 방사선 안전 관리는 현대의학의 고유 영역이며 환자의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X-ray 장비가 휴대폰처럼 손쉽게 바꿔 쓸 수 있는 물건이냐”고 반문하며, “부정확한 사용과 판독으로 진단 시기를 놓치거나 불필요한 방사선 노출이 유발될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특히 의료계는 과거 한의사가 68회 초음파 검사를 하고도 자궁내막암을 오진한 사례를 상기시키며, 국민의 생명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정섭 회장은 “현대 서양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면 다시 의과대학에 편입하여 의사 자격증을 따면 된다”고 일축하며, 학문적 영역 침탈과 면허 체계 훼손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장에 참석한 한 개원의는 “이 문제는 단순히 직역 간의 갈등이 아니라, 이원화된 면허체계의 근간을 지키는 문제”라며 “환자 안전은 현대의학의 고유한 진단 영역에서 요구되는 고도의 전문성과 직결된다. 교육 과정의 표면적 유사성만으로 이 경계를 허무는 것은 국민 건강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라고 현 상황의 심각성을 전했다.

검체검사 위수탁 개악, “일차의료 붕괴” 경고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 역시 ‘일차의료 말살 정책’으로 규정되며 강력한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정부가 공정성과 투명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이 제도가 일선 의료기관과 필수의료의 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이는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일차의료기관의 생존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정부 스스로 발주한 연구 용역에서조차 현행 시장 질서를 고려한 자율적 계약이 최선이라고 결론 내렸다”며, “정부가 연구 결과마저 무시하고 의료계와 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약속까지 저버린 채 32일방적으로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복기 범대위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 역시 “정부의 일방적인 제도 개악으로 일선 의료기관과 필수의료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즉각적인 정책 폭주 중단과 합리적인 대화를 요구했다. 35
“마지막 외침”… 정부·국회 외면 시 ‘총력 투쟁’ 엄중 선포
궐기대회에 참여한 의사 대표자들은 이날 결의문을 통해 이 세 가지 사안이 “국민 건강과 안전을 외면하고 전문가의 목소리를 짓밟는 국회와 정부의 정책 폭주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처참한 결과물”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를 향해 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모든 의료악법의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또한 “만약 국회와 정부가 우리의 이 마지막 외침마저 외면한다면, 14만 전체 의사 회원들의 울분과 의지를 한데 모아 거침없는 총력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엄중히 선포했다.
김교웅 의장은 “시대가 우리를 의료 전문가 대신 투쟁의 전문가로 훈련시키고 있다”고 개탄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환자와 의사가 함께 미소 짓는 멋진 모습’이며, 그날이 올 때까지 담대한 마음으로 함께해달라”고 호소했다.
현장에 참석한 또다른 의사는 “이번 집회는 의료계가 느끼는 위기의식과 절박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의사들이 지키려는 ‘의권’은 특권이 아니라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전문가의 양심이자 국민 생명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것이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의료계를 정책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일방적 통보가 아닌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진정한 소통에 나서지 않는 한, 의료 현장의 혼란과 갈등은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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