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모발 성장 메커니즘, 60년 정설 뒤집혀
수십 년간 생물학 교과서는 인간의 머리카락이 모낭 깊은 곳에 있는 분열 세포의 증식 압력에 의해 위로 ‘밀려 올라온다’고 가르쳐 왔다. 이는 머리카락 성장을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설이었다. 그러나 1월 18일(현지시간) SciTechDaily가 보도한 런던대학교와 로레알 연구혁신팀의 공동 연구 결과는 이 오랜 정설이 잘못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머리카락이 수동적으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모낭 주변 조직의 협응된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힘에 의해 위로 ‘끌려 올라간다’는 혁신적인 인간 모발 성장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이 발견은 탈모 치료 및 재생 의학 분야에 새로운 접근 방식을 열 전망이다.

교과서의 오류: ‘밀어내기’가 아닌 ‘끌어올리기’의 발견
연구를 이끈 퀸 메리 대학교의 이네스 세케이라 박사는 “우리의 결과는 모낭 내부의 매혹적인 움직임을 드러낸다”며 “수십 년 동안 머리카락은 모구(hair bulb)의 분열 세포에 의해 밀려난다고 가정됐지만, 우리는 대신 주변 조직이 마치 작은 모터처럼 작용하여 머리카락을 능동적으로 위로 잡아당기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기존의 이해와 달리, 머리카락 성장의 주된 동력은 모낭 세포의 단순한 증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살아있는 인간 모낭을 배양하고 첨단 3D 라이브 이미징 기술을 사용해 모낭 내부의 개별 세포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머리카락 샤프트를 둘러싸고 있는 외근초(Outer Root Sheath, ORS) 세포들이 아래로 나선형으로 움직이면서, 이 움직임이 머리카락을 위로 끌어올리는 힘을 생성하는 영역과 일치함을 확인했다. 이는 머리카락이 자라는 과정이 단순한 생화학적 과정이 아닌, 복잡한 기계적 과정임을 시사한다.
세포 분열 차단 실험, 정설을 논파하다
연구팀은 이 새로운 인간 모발 성장 메커니즘을 검증하기 위해 결정적인 실험을 수행했다. 만약 머리카락이 세포 분열의 압력으로 자란다면, 세포 분열을 막았을 때 성장이 멈추거나 크게 둔화돼야 한다. 그러나 모낭 내부의 세포 분열을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은 거의 동일한 속도로 계속 자랐다. 이는 기존의 ‘밀어내기’ 가설이 틀렸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결과다.
반면, 연구진이 세포의 수축과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단백질인 액틴(Actin)을 교란했을 때, 머리카락 성장률은 80% 이상 급격히 감소했다. 이 실험 결과는 머리카락 성장이 세포의 증식보다는 외근초 세포들의 협응된 이동과 수축력, 즉 ‘당김 힘’에 의해 주도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했다. 로레알 첨단 연구팀의 니콜라 티소 박사는 “정적인 이미지는 단지 고립된 스냅샷을 제공할 뿐이지만, 3D 타임랩스 현미경 기술은 모낭 내부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생물학적 과정을 밝혀내는 데 필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역시 모낭 외층의 협응된 움직임과 연결된 이 당김 힘이 관찰된 머리카락 이동 속도를 설명하는 데 필요함을 확인했다.

탈모 치료의 새로운 지평: 기계적 환경을 표적으로
이번 연구는 단순한 생물학적 호기심을 넘어, 탈모 치료 및 조직 재생 의학 분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탈모 치료 연구는 주로 세포 분열을 촉진하거나 특정 생화학적 신호를 조절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그러나 새로운 인간 머리카락 성장 메커니즘의 발견은 모낭의 ‘기계적 환경’을 표적으로 삼는 새로운 치료 전략의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팀은 모낭의 물리적 환경과 생화학적 환경 모두를 목표로 하는 치료법을 설계하는 데 이 기계적 힘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로레알 팀의 토마스 본쉬뢰글 박사는 “머리카락 성장이 세포 분열만으로 구동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대신 외근초가 머리카락을 능동적으로 위로 당긴다”고 강조했다. 이는 모낭의 물리적 힘을 조절하거나, 액틴과 같은 수축 단백질의 활동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탈모를 치료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연구에 사용된 3D 이미징 기술은 다양한 약물과 치료법을 살아있는 모낭에 직접 시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여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생물학의 새로운 흐름: 생물리학적 접근의 중요성
이번 연구는 생물학에서 생물리학(Biophysics)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미시적인 규모에서 작용하는 기계적 힘이 우리가 매일 보는 장기의 형태와 기능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모낭의 세포 역학을 직접 관찰하고 기계적 힘의 중요성을 입증한 이 연구는, 머리카락 성장을 단순히 세포 증식의 결과로 보던 과거의 관점에서 벗어나, 조직 내 세포 간의 상호작용과 물리적 힘의 역동적인 조절을 통해 이해해야 함을 강조한다.
연구진은 이 새로운 지식이 모낭 질환을 연구하고 조직 공학 및 재생 의학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탈모의 근본 원인을 세포의 생화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모낭 조직 자체의 기계적 기능 부전으로도 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 향후 맞춤형 치료법 개발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