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의견들이 모여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대한의사협회, ‘인공임신중지 명칭 개선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강력 반대…사회적 합의 부재 우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11448)’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남인순 의원의 개정안은 “낙태죄에 관한 헌법불합치 결정의 후속조치로서 인공임신중절의 허용 한계에 관한 부분을 삭제하는 한편,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인공임신중지’로 변경하고, 수술 뿐만 아니라 약물에 의한 방법으로 인공임신중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한편, 인공임신중지에 대한 보험급여가 적용되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의협은 해당 법안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와 상충되며 의료 현장에 혼란을 야기하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의협은 이에 각 산하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를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용어 변경의 실효성 부족 지적
의협은 개정안에 포함된 용어 변경에 대해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의학적, 법률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용어를 굳이 ‘인공임신중절수술’에서 ‘인공임신중지’로 바꾸려는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의협은 이러한 용어 변경이 특별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거나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하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 위배 주장
의협은 이번 개정안이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배치된다고 역설했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2010헌바402 결정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며 낙태 처벌 조항이 합헌임을 명확히 했다. 또한, 2019년 4월 2017헌바127 결정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이는 낙태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려는 취지가 아니었다고 의협은 해석했다.
당시 헌재는 낙태죄 조항의 단순 위헌 선고 시 발생할 법적 공백을 우려했으며,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낙태 금지 자체를 위헌으로 보지 않았다. 따라서 개정안이 인공임신중절의 허용 한계를 전적으로 삭제하고 임신 주수나 태아 및 임부의 생존 가능성과 무관하게 중절을 허용하는 것은 그동안의 헌법재판소 결정에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의협은 지적했다.
사회적 갈등 유발 가능성 경고
의협은 인공임신중절을 무제한으로 허용할 경우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일부 시민단체와 종교계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고 생명윤리를 둘러싼 논란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부합하도록 ‘태아의 권리’와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법적·윤리적 균형점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 의료계의 의학적 의견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 허용 여부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며, 출산 및 양육의 부담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임신중절 허용을 통해 국가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의료 현장의 혼란 방지 대책 촉구
개정안이 의료인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인공임신중절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나 후유증에 대한 의료인의 법적 책임이 모호해지고 법적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크다고 의협은 밝혔다.
다수의 국민이 생명윤리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에 반대하는 만큼, 의료인 역시 이러한 신념에 따라 중절을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이에 대해 의료법상 진료 거부 등으로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건강보험법 취지 위배 및 재정 부담 우려
의협은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국민건강보험법의 본래 목적과 충돌하며,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질병 예방, 진단, 치료, 재활, 출산, 사망 및 건강 증진에 대한 보험 급여를 명시하고 있으나, 임신중절은 이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에서 예외적으로 급여하는 임신중절수술은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른 의학적 필요성에 기반한 것이며, 이는 개인의 판단에 의한 중절과는 명백히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출산 장려 정책에 따라 피임 시술은 급여 대상이 아닌 반면, 생식 기능 회복 시술은 급여 대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인공임신중절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경우 현행 정책과의 모순이 발생한다고 봤다.
또한, 의협은 연간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보험 급여 적용은 국민적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고 밝혔다. 의학적 판단이 아닌 개인 선택에 따른 의료 행위는 시행 건수를 예측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워 정부의 재정 예측을 크게 초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명시된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약물 낙태 허용의 안전성 문제 제기
의협은 약물에 의한 낙태 허용에 대해서도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 임신중절 의약품 도입의 주된 명분 중 하나가 불법적인 자가 투여 위험 감소라 할지라도, 해당 약물이 부작용에 대해 완벽한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약물 오남용 및 합병증으로 산모 건강이 위협받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5년에 해당 약물을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하고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사용 중이라 하더라도, 국내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자연 유산 유도 의약품이 부재하다. 해외에서 사용되는 ‘미프진’ 등의 약물은 해외 직구를 통해 국내로 수입하는 것이 약사법상 금지돼 있다. 의협은 이러한 상황에서 임신중절 의약품을 도입하고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는 것은 오히려 약물 오남용을 부추기고 임부의 건강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 강조
의협은 이번 개정안이 인공임신중절을 단순히 ‘권리 보장’과 ‘보험 적용’의 틀로만 다루고 있어 예방적이고 통합적인 접근 방식이 부재하다고 비판했다. 성교육, 피임 지원, 사전 상담 등 사전 예방 및 상담 교육과 같은 포괄적인 방안 없이 의료적 조치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 부합하고, 의료계의 전문적인 견해가 반영되며, 다양한 사회 집단 간 충분한 논의를 거쳐 인공임신중절의 허용 범위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후 입법 및 제도화가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의협의 최종적인 입장이다.
의협은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사회에 미칠 광범위한 영향을 고려하여 충분한 검토와 숙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특히,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의료 현장의 목소리와 국민적 합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혼란을 최소화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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