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리스크가 기업 가치 좌우하는 시대
최근 기업 경영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사회(S)’ 영역, 특히 인권 경영의 중요성이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한 윤리적 책임으로 여겨졌던 인권 문제가 이제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 경영 과제로 자리매김했다.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과 미국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UFLPA) 등 강력한 해외 법규들이 연이어 발효되거나 논의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내 인권 침해에 대한 기업의 책임 범위가 대폭 확장됐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도 해외 시장 진출 및 유지를 위해 인권 리스크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실제로 2024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수출 기업의 40% 이상이 이미 해외 바이어로부터 인권 실사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권 문제가 더 이상 기업의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 됐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과연 우리 기업들은 이러한 인권 경영 압박 속에서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을 모색해야 할까?

글로벌 규제 강화와 국내 기업의 발등에 떨어진 불
전 세계적으로 인권과 노동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EU의 CSDDD는 기업이 공급망 전반에 걸쳐 인권 및 환경 실사를 의무적으로 수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며, 위반 시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법안이다. 또한, 미국의 UFLPA는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의 강제 노동 연루 가능성을 전제로 수입을 금지하며, 기업이 직접 강제 노동과 무관함을 입증해야 하는 입증 책임을 부과한다.
이러한 해외 규제들은 국내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된 대기업 뿐만 아니라, 해외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중견기업들까지도 바이어의 요구에 따라 복잡한 인권 실사 절차를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는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기업 경쟁력과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부상했다.
과거 사례에서 배우는 인권 경영의 중요성
인권 경영의 실패는 기업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브랜드 이미지 실추를 초래할 수 있음을 과거의 여러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한때 아동 노동 문제가 불거진 글로벌 의류 기업은 대규모 불매 운동에 직면했고, 강제 노동 논란에 휩싸인 기술 기업은 투자자들의 외면과 법적 제재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인권 문제가 단순히 윤리적 관점을 넘어, 투자 결정, 소비자 구매 심리, 나아가 기업의 시장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리스크 요인임을 보여준다. 이제 기업들은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뿐만 아니라, 제품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에서의 인권 존중 여부까지도 소비자와 투자자의 주요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법무법인 CNE 최청희 대표변호사는 “최근 인권 리스크는 기업의 평판을 넘어 재무적 건전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중대 요소로 부상했다”며, “선제적인 인권 영향 평가와 투명한 정보 공개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기업 방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선제적 대응 나선 국내 주요 기업들
글로벌 인권 경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주요 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모든 1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인권 실사를 의무화했으며, 인권 침해 우려가 있는 경우 즉각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LG전자 또한 공급망 내 인권 침해 발생 시 신속하게 이를 조사하고 시정하는 절차를 마련하며, 협력사 행동 강령에 인권 관련 조항을 강화했다.
이들 기업 외에도 많은 국내 기업들이 자체적인 인권 영향 평가를 실시하고, 협력사 대상의 인권 교육을 의무화하며, 인권 침해 신고 채널을 구축하는 등 적극적인 인권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해외 규제에 따르는 것을 넘어, 기업 스스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내부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권 경영,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핵심 동력
인권 경영은 더 이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의 일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적인 전략적 선택이 됐다. 투명하게 인권 문제를 공개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소비자, 투자자, 규제 당국으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된다. 이러한 신뢰는 곧 브랜드 가치 상승, 투자 유치 용이성, 그리고 안정적인 공급망 유지로 이어져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력이 된다.
글로벌 공급망 환경 변화에 맞춰 기업들은 인권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인권 경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규제를 준수하는 것을 넘어, 기업의 미래 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시장 기회를 창출하는 길이다.
신한대학교 대학원 사회적경제학과 김만수 교수는 “인권 경영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제는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과 가치 사슬 전반에 통합되어야 할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며, “선제적 인권 리스크 관리가 곧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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