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진화의 증거 장장근, 인류 15%는 왜 이 근육이 없을까? 퇴화하는 ‘장장근’의 진화적 미스터리
인간의 신체는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팔뚝과 손목을 잇는 장장근(Palmaris Longus)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0%에서 20%가량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근육으로 알려져 있으며, 평균적으로 약 15%의 인구에서 결손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근육은 현대인에게는 필수적인 기능적 역할을 하지 못해 대표적인 퇴화 근육(Vestigial Muscle) 중 하나로 분류된다.
장장근은 전완부의 척골과 요골 사이를 지나 손목 중앙을 가로질러 손바닥의 건막(Palmar Aponeurosis)에 연결되는 가늘고 긴 힘줄이다. 이 근육의 유무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한 뒤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맞대고 손목을 굽혔을 때, 손목 중앙에 튀어나오는 힘줄이 바로 장장근이다. 이 힘줄이 보이지 않아도 장장근이 없는 사람들은 악력이나 손목 굴곡 기능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장장근이 없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특정 인구에게만 존재하는 장장근은 인류가 직립 보행을 시작하기 전, 나무 위에서 생활하며 팔을 이용해 매달리거나 이동할 때 강력한 악력과 손목 굴곡 능력을 제공했던 중요한 기관으로 추정된다. 장장근의 결손율은 인종별,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아시아인에게는 비교적 흔하게 발견되지만, 터키인이나 아프리카계 인구에서는 결손율이 더 높은 경향을 보였다. 장장근의 존재 여부는 인류 진화 과정에서 환경 변화에 따라 신체 구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진화의 증거로 주목된다.

인류 15%가 결손된 장장근의 해부학적 특징
장장근은 전완부의 천층 굴곡근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하며, 손목 관절의 굴곡을 보조하고 전완부를 회내(Pronation)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해부학적으로 장장근은 다른 손목 굴곡근인 요측수근굴근(Flexor Carpi Radialis)과 척측수근굴근(Flexor Carpi Ulnaris)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근육은 다른 굴곡근에 비해 근육 자체의 크기가 작고, 힘줄 부분이 길게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장장근은 손목을 굽힐 때 손목 중앙에서 비교적 쉽게 관찰된다.
장장근이 없는 사람들은 이 근육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조직이나 지방층이 채워져 있으며, 기능적으로는 나머지 두 개의 주요 굴곡근이 장장근의 역할을 완벽하게 대체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장장근의 결손은 양측성으로 나타나기보다는 한쪽 팔에만 결손되는 경우가 더 흔하며, 일부 연구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결손율이 더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이 근육의 존재 여부는 태아 발생 초기 단계에서 결정되며,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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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타던 시절 조상들에게 장장근이 유용했던 이유
장장근은 영장류 및 포유류의 진화 연구에서 중요한 비교 해부학적 지표로 사용된다. 특히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영장류, 예를 들어 오랑우탄이나 침팬지 같은 유인원들은 장장근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으며, 이는 강력한 파지력(Grasping Power)과 손목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인류의 조상들이 나무를 타거나 매달려 이동하는 생활 방식(Brachiation)을 유지했을 때, 장장근은 손목을 강하게 굴곡시키고 손가락의 악력을 보조하여 가지를 꽉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직립 보행이 시작되고 인류가 땅 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손과 팔의 주된 기능이 매달리기에서 도구 사용과 정교한 조작으로 변화했다. 이 과정에서 장장근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했다. 다른 주요 손목 굴곡근들이 장장근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장장근은 진화적으로 불필요한 기관으로 퇴화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장장근의 결손은 인류가 수직적인 환경에서 수평적인 환경으로 이동하며 겪은 신체적 적응의 결과로 해석된다.
광주바로병원 이영관 병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장장근은 현대인에게는 필수적인 근육은 아니지만, 진화적으로는 나무를 오르내리거나 매달리는 동작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임상적으로는 이 근육이 없어도 다른 굴곡근들이 기능을 대체하므로, 장장근이 없는 것이 신체 기능 저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기능이 퇴화했지만, 현대 의학에서 장장근의 가치
장장근은 비록 현대인에게는 기능적으로 중요성이 낮아졌지만, 의학 분야에서는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다. 장장근의 힘줄은 건 이식(Tendon Graft) 수술 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공여건(Donor Tendon) 중 하나다. 다른 신체 부위의 힘줄이 손상되거나 재건이 필요할 때, 장장근 힘줄을 채취하여 이식하는 데 사용된다. 이는 장장근이 결손되어도 손목 기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환자에게 추가적인 기능적 손실 없이 이식 재료를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장장근 힘줄은 주로 손가락이나 손목의 힘줄 재건술, 안면 마비 환자의 안면 근육 재건술, 또는 인대 손상 복원술 등에 활용된다. 특히 손목 터널 증후군 수술 시에도 장장근 힘줄이 신경을 보호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장장근을 보유한 사람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중요한 의학적 자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미용 성형 분야에서도 장장근의 유무를 확인하는 검사가 시행되기도 하는데, 이는 손목의 외형적 특징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장장근의 결손은 인류가 직립 보행을 선택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 근육은 더 이상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지만, 해부학적 다양성을 보여주며 인류 진화의 역사를 증언한다. 현대 의학은 이 퇴화된 근육을 활용하여 손상된 신체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광주바로병원 이영관 병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현대 의학에서 장장근은 퇴화된 근육임에도 불구하고 건 이식 수술 시 기능적 손실 없이 채취할 수 있는 최적의 공여건으로 사용되고 있다”라며, “이는 진화적 흔적이 현대 의학 발전에 기여하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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