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양조 증후군, 탄수화물이 알코올로 변하는 희귀 질환, 내 뱃속이 술 공장이 됐다는 환자들의 고통과 진실
평범한 직장인 김 모(45) 씨는 얼마 전 억울하고 황당한 일을 겪었다. 퇴근길 음주단속 현장에서 혈중알코올농도 면허 취소 수치에 해당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맹세코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경찰과 주변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는 그날 저녁 식사로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을 뿐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만취 상태가 되는 기이한 현상, 바로 ‘자동 양조 증후군(Auto-brewery Syndrome)’이 그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양조장, 장(腸)내 미생물의 반란
자동 양조 증후군, 또는 장 발효 증후군이라 불리는 이 질환은 말 그대로 사람의 뱃속이 거대한 양조장으로 변하는 희귀 질환이다. 일반적인 소화 과정에서 장내 미생물은 음식물을 분해하여 영양소를 흡수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 증후군을 앓는 환자의 장내에는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Saccharomyces cerevisiae)’와 같은 효모균이나 특정 박테리아가 비정상적으로 과잉 증식해 있다.
이 미생물들은 환자가 섭취한 탄수화물(당분)을 먹이 삼아 발효 과정을 일으키는데,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다량의 에탄올이 생성된다. 밥, 빵, 면 요리 등 우리가 흔히 먹는 탄수화물이 위장관을 통과하며 술로 변하는 셈이다. 생성된 알코올은 소장에서 혈류로 빠르게 흡수되어 뇌와 간으로 전달된다. 결과적으로 환자는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도 혈중알코올농도가 치솟으며, 안면 홍조, 어눌한 말투, 비틀거림 등 전형적인 만취 증상을 보이게 된다.
비에비스나무병원 홍성수 병원장(소화기내과 전문의)은 “자동 양조 증후군은 단순한 소화 불량이 아닙니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져 특정 진균이 우점종이 됐을 때 발생합니다. 일반인은 소량의 알코올이 장에서 생성돼도 간에서 충분히 해독할 수 있지만, 이 환자들은 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알코올이 지속적으로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숙취에 시달리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습니다. 특히 항생제 장기 복용이나 기저 질환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발병할 확률이 높습니다.”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의 꿈’: 어둠이 아닌, 더 선명한 감각의 세계를 만나다
사회적 낙인과 가정 파탄의 위기
이 질환이 무서운 점은 신체적 고통보다 사회적, 심리적 타격이 더 크다는 데 있다. 환자들은 자신이 술을 마시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가족들조차 “몰래 숨어서 술을 마시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라고 의심하기 일쑤다. 직장에서는 업무 중 술 냄새를 풍긴다는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하고, 운전 중에는 음주운전으로 오해받아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도 한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 증후군을 앓던 여성이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됐다가, 엄격한 통제 하에 탄수화물 섭취 실험을 거쳐 무죄를 입증받은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드물지만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환자들은 육체적 질병과 더불어 억울함이라는 정신적 고통까지 이중고를 겪는다.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생리 현상으로 인해 ‘거짓말쟁이’ 혹은 ‘알코올 중독자’로 낙인찍히는 과정에서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을 앓게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진단의 어려움과 치료를 위한 험난한 여정
자동 양조 증후군은 진단 자체가 매우 까다롭다. 일반적인 혈액 검사나 내시경으로는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확진을 위해서는 병원에 입원하여 철저히 통제된 환경에서 탄수화물을 섭취한 뒤, 시간대별로 혈중 알코올 농도와 혈당을 측정하는 부하 검사가 필요하다. 더불어 내시경을 통해 채취한 장액에서 원인균을 배양해내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치료 과정 또한 환자에게는 고행에 가깝다. 가장 핵심적인 치료법은 ‘탄수화물 제한’이다. 원인균의 먹이가 되는 설탕, 밀가루, 쌀 등 탄수화물 섭취를 극도로 줄이는 고단백·고지방 식이요법을 장기간 유지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항진균제를 투여하여 장내 효모균을 제거하고, 유산균 등 프로바이오틱스를 통해 무너진 장내 세균총을 복원하는 치료가 병행된다. 최근에는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하여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재건하는 ‘대변 미생물 이식술(FMT)’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청희 법무법인 C&E 대표변호사는 이 질환에 대해 “자동 양조 증후군 환자의 음주운전 혐의는 법적으로 매우 논쟁적인 사안입니다. 고의적인 음주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본인이 질환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아 사고를 냈다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환자로 진단받은 경우, 치료가 완료되어 의학적으로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운전을 포함한 정밀 기계 조작을 엄격히 금지해야 하며, 이를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낼 제도적 장치 마련도 시급합니다.”라고 밝혔다.
질병을 질병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할 때
우리 몸속 미생물의 세계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많다. 자동 양조 증후군은 인간과 미생물의 공생 관계가 깨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단순히 ‘술 취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그들이 겪고 있는 내면의 전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밥 한 공기를 먹는 것만으로 만취의 공포에 떨고 있을지 모른다. ‘내 뱃속이 술 공장이 됐다’는 그들의 호소는 취중진담이 아니라, 살려달라는 구조 신호일 수 있다. 희귀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체계적인 진단 시스템 확립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기사
상속포기 vs 한정승인, 수천만 원 빚 폭탄 맞는 최악의 상황 피하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