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의사 참여율 1% 미만… ‘재택의료 활성화’ 위한 현실적 대안 시급
2024년,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 1천만 명 시대를 맞이하며 노인 인구 비중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공식 진입했다. 이에 따라 노쇠, 질병, 장애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국민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돌봄이 필요한 국민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돌봄통합지원법)이 2026년 3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의 핵심 축인 ‘일차의료 방문·재택의료’가 현장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실태가 드러났다.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비판까지 받는 지나친 시설 입소 중심의 돌봄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 정작 의료 시스템의 불참으로 시작부터 좌초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일차의료 방문·재택의료 활성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는 , 초고령사회의 필수 의료 전략인 재택의료가 왜 현장에서 외면받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텅 빈 현장, 1% 미만의 ‘유명무실’ 참여율
통합 돌봄의 성공은 환자가 집에서도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등 여러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처참한 수준이다. 토론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일차의료 의과 방문진료 수가사업’의 현실은 충격적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전국 3만 7천여 개의 의원급 의료기관 중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기관은 1,118개소에 불과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중 실제로 방문진료를 수행하고 비용을 청구한 기관은 단 241개소로, 전체 의원 수 대비 0.6%에 불과했다.
정혜민 서울시립보라매병원 공공의학과 과장이 제시한 자료에서도 2024년 9월 기준 청구기관은 303개소로, 전체 의원의 약 0.8% 수준에 머물렀다. 2019년 12월 시범사업이 시작된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방문진료 혜택을 받은 환자는 총 2만 3천여 명에 불과하며 , 이는 추계되는 잠재적 방문진료 대상자(약 50만~150만 명)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지역 불균형도 심각해, 방문진료 청구 의원의 52%, 방문 횟수의 61%가 서울과 경기 지역에 집중되어 , 정작 병원 접근성이 낮은 지방의 환자들은 서비스를 이용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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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없고, 사람 없고, 돈 안 된다”… 의사들이 외면하는 이유
그렇다면 일차의료 현장의 의사들은 왜 방문진료를 외면하는가? 토론회 발제자들은 현장의 구조적 한계를 일제히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개원가의 83%~85% 이상이 의사 1인이 진료하는 ‘단독 개원’ 형태라는 점이다. 이충형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외래 진료나 입원 치료를 의사 혼자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택의료 역시 의사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단독 개원의가 환자 발굴, 이동, 일정 조율, 행정업무, 그리고 진료까지 모두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장 의견에 따르면, 의사들은 “점심시간 외에는 방문할 시간이 없고” , “간호조무사 등 동행 인력에 대한 수가가 없어 인건비를 공제하면 오히려 적자 구조”라고 호소한다.
2025년 설문조사 결과, 사업 미참여 의사들은 ‘지원 인력 부족(20.0%)’, ‘낮은 수가(18.7%)’, ‘복잡한 행정절차(18.7%)’ 등을 주요 장애 요인으로 꼽았다. 여기에 의료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과 위험 부담이 높다는 점도 의사들의 참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대한재택의료학회 박건우 이사장은 “방문 및 재택의료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하며 , “병원에 못 오시는 분들이 분명 늘어나는데, 병원은 그저 오라고만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오라 말고 찾아가야 한다”고 현 의료체계의 변화를 강력히 촉구했다.

‘지원센터’와 ‘투트랙’, 해법은 있다
이처럼 암울한 현실 속에서, 토론회는 ‘지속가능한’ 재택의료 모델을 제안하는 데 집중했다. 핵심은 ‘의사 개인’의 희생에 기댈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
정혜민 과장은 지역의사회가 중심이 되는 ‘방문진료센터’ 모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미 전주시의사회 통합돌봄지원센터 등에서 효과가 검증된 이 모델은 , 지역의사회가 일종의 ‘허브’ 역할을 맡는 방식이다.
센터가 환자 발굴, 일정 조율, 행정 지원, 다직종(간호사, 사회복지사) 연계 등을 총괄하고 , 개별 의원 의사들은 주 1~2회 ‘세션제’ 등으로 유연하게 진료에만 참여할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이충형 이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투트랙(Two-track)’ 전략을 제안했다. 첫째, 중증 환자 및 상급병원 퇴원 환자를 대상으로는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 다학제 팀을 완비한 ‘고기능 재택의료센터’가 전담한다. 둘째, 비교적 경증이거나 기존 외래 환자가 거동이 불편해진 경우에는, 단독 개원의가 ‘재택의료지원센터’의 도움과 방문간호센터 등 지역 자원과의 협력을 통해 관리하는 모형이다.
이 이사는 “방문진료의원 5,000개소, 재택의료센터 500개소를 목표로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만의 몫 아니다… 다직종 협력과 정부 의지
궁극적으로 재택의료 활성화는 의사만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회장은 “재택의료는 외래 및 입원 의료와 함께 국민 건강을 지탱하는 제3의 축”이라며 , “의원급 간호인력의 82%를 차지하는 간호조무사에게 제도 안에서 분명한 역할과 합리적 보상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공적인 재택의료는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등 다직종의 상시 협력 모델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도 시급하다. 토론회에서는 ▲비현실적인 방문진료 수가 현실화 ▲간호조무사 등 동행 인력 가산 및 다직종 패키지 수가 도입 ▲의료법 제33조 등 관련 법적 근거 명확화 ▲환자 본인부담금 완화 ▲국민 대상 홍보 강화 ▲의대 교육과정 내 방문진료 실습 포함 등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쏟아졌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반드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세밀한 정책 설계와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지역사회 의료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일차의료기관이 통합 돌봄 지원 체계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26년, ‘돌봄통합지원법’이라는 배는 이미 항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배의 핵심 동력인 ‘의료’가 탑승하지 못한 상태다. ‘모두를 위한 돌봄’이라는 목표가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1% 미만이라는 절망적인 참여율을 끌어올릴 정부와 의료계의 과감한 결단과 시스템 구축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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