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한대 이현 교수의 ‘전략과 사회’ 따라잡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 기업의 생존을 가늠하는 핵심 어젠다가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CSR 보고서를 발간하고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전개함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종종 비생산적이거나 단편적인 수준에 머무르곤 한다. 많은 활동이 기업의 핵심 전략과 분리된 채, 외부의 압력에 대응하거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화장술’에 그치기 때문이다.
경영 전략의 대가 마이클 포터(Michael E. Porter)와 마크 크레이머(Mark R. Kramer)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발표한 기념비적인 논고, ‘전략과 사회(Strategy & Society)’를 통해 이러한 접근법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한다. 그들은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대립적 시각에서 벗어나,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공유 가치(Shared Value)’를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쟁 우위의 원천이 된다고 역설한다.
기존 CSR 접근법의 네 가지 한계와 ‘분리’의 오류
포터와 크레이머는 기존에 기업들이 CSR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해 온 네 가지 논리 즉 도덕적 의무(Moral Obligation),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사업 허가(License to Operate), 명성(Reputation)이 모두 불충분하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논리들은 기업 활동과 사회적 이슈를 본질적으로 분리된 것으로 간주하며,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과 막대한 자원 동원 능력을 간과하게 만든다.
도덕적 의무는 ‘옳은 일을 하라’는 당위성을 제시하지만, 상충하는 가치들(예: 현재의 보조금 지급과 미래를 위한 R&D 투자) 사이에서 명확한 전략적 지침을 주기 어렵다. ‘지속 가능성’은 장기적 경제 성과를 강조하며 ‘3중 바닥 라인(Triple Bottom Line)’을 제시하지만 , 그 개념이 모호하여(예: 투명성, 좋은 고용 관행도 지속 가능성으로 포장됨) 단기적 비용과 장기적 이익의 균형점을 찾기 힘들게 한다 .
또한, ‘사업 허가’나 ‘명성’에 초점을 맞춘 접근은 기업의 CSR 아젠다가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압력에 휘둘리게 만들 위험이 크다. 이는 종종 방어적이고 단기적인 대응, 혹은 위기관리용 ‘보험’ 수준의 활동에 그치게 하여, 사회적 문제의 본질적 해결이나 기업의 전략적 이익 창출에 실패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접근법들은 기업의 핵심 전략과 무관하게 분산된 자선 활동의 나열에 그치기 쉬우며, 의미 있는 사회적 영향이나 견고한 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못한다.
두 교수는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대립’이 아닌 ‘상호 의존성’의 관점에서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공적인 기업은 건강한 사회를 필요로 한다. 교육 수준이 높고 건강한 노동력, 투명한 법규와 효율적인 인프라, 그리고 구매력 있는 소비자가 존재하는 ‘건강한 사회’는 기업 활동의 필수적인 기반이 된다 . 마찬가지로, 건강한 사회 역시 성공적인 기업을 필요로 한다. 기업 부문이야말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와 혁신을 일으켜 장기적으로 사회적 조건과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가장 강력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과 사회가 서로의 번영에 의존하며 ‘공유 가치(Shared Value)’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전략의 출발점이다.
가치 사슬과 경쟁 환경이라는 두 개의 렌즈
전략적 CSR을 실천하기 위해, 기업은 먼저 자신과 사회가 만나는 교차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포터와 크레이머는 이를 위한 두 가지 핵심 프레임워크를 제시한다.
첫째는 ‘내부-외부 연결고리(Inside-Out Linkages)’로, 기업의 ‘가치 사슬(Value Chain)’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다. 기업은 채용, 물류, 생산, 마케팅 등 일상적인 경영 활동 전반에 걸쳐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사회적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는 ‘외부-내부 연결고리(Outside-In Linkages)’로, ‘경쟁 환경(Competitive Context)’의 사회적 차원이 기업의 생산성과 전략 실행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다 . 여기에는 인적 자원의 질, 인프라의 가용성, 관련 산업의 존재,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규제 환경 등이 포함된다. 이 두 가지 렌즈를 통해 기업은 수많은 사회적 이슈를 자사와의 관련성에 따라 ‘일반적 사회 이슈’, ‘가치 사슬의 사회적 영향’, ‘경쟁 환경의 사회적 차원’이라는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전략적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대응적 CSR’을 넘어 ‘전략적 CSR’로 나아가기
두 교수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기업의 사회적 참여를 ‘대응적 CSR(Responsive CSR)’과 ‘전략적 CSR(Strategic CSR)’로 명확히 구분한다. ‘대응적 CSR’은 선량한 기업 시민으로서 행동하고(예: 지역 사회 기부), 가치 사슬에서 발생하는 기존 혹은 예상되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는(예: 환경 규제 준수, 공정 노동 관행 도입) 활동을 의미한다. 이는 기업 활동의 기본 전제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차별화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에 진정한 경쟁 우위는 ‘전략적 CSR’에서 나온다. 이는 기업이 자신의 고유한 역량을 활용하여 사회와 기업 모두에게 크고 독특한 혜택을 창출하는 소수의 이니셔티브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구현된다.
첫째, ‘가치 사슬 혁신’이다. 제품이나 운영 방식에서 사회적 혜택과 기업 경쟁력 향상을 동시에 가져오는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토요타(Toyota)가 자동차 배출가스에 대한 사회적 우려에 대응하여 하이브리드 엔진 기술 ‘프리우스’를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이브리드 엔진은 기존 차량 대비 유해 오염 물질을 10% 수준으로 낮추고 연료는 절반만 소비하면서 , ‘2004년 올해의 차’에 선정되는 등 토요타에게 압도적인 기술적 경쟁 우위를 안겨주었으며, 포드(Ford) 등 다른 경쟁사들이 이 기술을 라이선싱하게 만들었다.
둘째, ‘경쟁 환경 투자’를 통해 공유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기업 성장에 제약이 되는 사회적 요인에 투자하여 경쟁 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미국 내 45만 개가 넘는 IT 일자리 공석이라는 심각한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 이는 미국 전체 학부생의 45%가 재학 중인 커뮤니티 칼리지의 IT 교육 과정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기술이 낙후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5천만 달러 규모의 5개년 이니셔티브를 통해 커리큘럼 개발, 교수 연수 프로그램, 직원 자원봉사자 파견 등을 지원했다. 이는 지역 사회의 고용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 인재 풀을 확충하는 전형적인 ‘공유 가치’ 창출 사례다.
셋째, 가장 고도화된 전략은 ‘가치 제안에 사회적 차원을 통합’하는 것이다. 기업의 핵심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 자체에 사회적 요소를 내재화하는 것이다. 홀 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은 ‘유기농, 자연, 건강식품’을 판매한다는 가치 제안을 실현하기 위해, 100여 개의 유해 성분을 스크린하여 제품을 선별하고 , 내부에서 제조하는 베이커리에도 표백하지 않은 밀가루만 사용한다. 또한, 포춘 500대 기업 중 유일하게 전력 사용량의 100%에 해당하는 재생 가능 풍력 에너지 크레딧을 구매하고 , 동물복지재단을 설립하는 등 가치 사슬 전반을 사회적 가치와 연계하여, 프리미엄 가격을 정당화하고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강력한 경쟁 우위를 구축했다.
‘기업 사회 통합(Corporate Social Integration)’을 향한 여정
포터와 크레이머의 통찰은 CSR을 더 이상 ‘비용’이나 ‘의무’가 아닌, ‘장기적 경쟁력을 위한 투자’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기업은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대신, 각 기업은 자사의 핵심 전략과 역량에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사회적 이슈를 식별하고, 그 문제 해결에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가장 큰 ‘공유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네슬레(Nestlé)가 1962년 인도 모가(Moga) 지역에 처음 진출했을 때, 그곳은 전기나 의료 시설조차 없는 극심한 빈곤 지역이었고, 농부들은 소수의 병든 버팔로에서 겨우 자급자족할 우유만 생산했다 . 네슬레는 CSR이 아닌 사업을 위해 그곳에 갔지만 , 고품질 우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자사의 가치 사슬을 구축하기 위해 , 지역 사회의 경쟁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했다. 네슬레는 냉장 집유 시설을 짓고, 수의사, 영양사, 농학자를 파견하여 기술을 이전했으며 , 농부들이 관개용 우물을 팔 수 있도록 금융 지원을 제공했다. 그 결과, 오늘날 모가 지역은 인근 지역보다 5배나 많은 의사를 보유하고, 대부분의 가정에 전기와 전화가 보급되는 등 생활 수준이 극적으로 향상되었으며 , 네슬레는 중개인 없이 고품질의 우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핵심 기지를 확보했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하는 것을 넘어, 기업 전략과 사회적 가치가 분리 불가능하게 하나로 융합되는 ‘기업 사회 통합(Corporate Social Integration)’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길이야말로 기업과 사회가 지속 가능한 번영을 함께 이루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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