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 캡슐, 가루약… 제형에 따라 약효가 달라지는 이유, 제형의 비밀과 약물 흡수율의 관계. 당신의 약은 안전한가?
아침 식사 후 복용하는 혈압약, 갑작스러운 두통에 삼킨 진통제, 아이에게 먹이는 달콤한 시럽. 우리는 매일 다양한 모양과 형태의 약을 접한다. 이 모든 약은 특정 성분을 담고 있지만, 왜 어떤 약은 단단한 알약(정제)이고, 어떤 약은 부드러운 캡슐이며, 또 어떤 약은 고운 가루약일까?
단순히 복용 편의성을 위한 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 제형(Dosage Form)은 약물이 체내에서 흡수되고 작용하는 속도와 효율, 나아가 부작용 발생 여부까지 결정하는 핵심적인 과학적 설계의 결과다. 약의 제형은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약효를 극대화하고 약물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교한 전달 시스템이다.

약효 발현의 첫 단계: 제형이 결정하는 ‘용출’과 ‘흡수’
약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먼저 소화기관을 거쳐 혈액 속으로 흡수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약 성분이 녹아 나오는 속도, 즉 ‘용출(Dissolution)’이다. 제형은 이 용출 속도를 직접적으로 조절한다. 예를 들어, 가루약이나 액제(시럽)는 이미 미세하게 분해돼 있거나 액체 상태이므로 위장관에서 빠르게 용출돼 흡수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는 급성 통증이나 신속한 효과가 필요한 경우(예: 해열제)에 유리하다.
반면, 단단한 정제는 위액이나 장액에 의해 서서히 분해돼야 성분이 용출된다. 캡슐은 젤라틴 등의 외피가 먼저 녹은 후 내부의 가루나 과립이 용출되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제형이 단단할수록 흡수까지 시간이 더 걸리지만, 이는 약물 성분을 보호하고 흡수 위치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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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효를 지속시키는 첨단 기술: 서방정과 장용정
현대 의약품 제형 기술의 꽃은 약효의 지속 시간과 작용 위치를 정교하게 조절하는 ‘특수 제형’이다. 대표적인 것이 서방정(Sustained-release tablet)과 장용정(Enteric-coated tablet)이다.
서방정은 약물 성분이 체내에서 일정 시간 동안 천천히 방출되도록 설계된 제형이다. 일반 정제처럼 한 번에 많은 양이 흡수되면 혈중 농도가 급격히 높아져 부작용 위험이 커지거나, 약효가 금방 사라져 자주 복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서방정은 특수 코팅이나 매트릭스 구조를 통해 약물이 8시간 또는 12시간에 걸쳐 꾸준히 방출되도록 해 복용 횟수를 줄이고 약효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만성질환 치료제에서 특히 많이 활용된다.
장용정은 위(胃)에서는 녹지 않고 장(腸)에서만 녹도록 특수 코팅된 약이다. 이는 두 가지 목적으로 사용된다. 첫째, 위산에 약해 약효가 떨어지는 성분(예: 일부 항생제)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둘째, 약물이 위벽을 자극해 속 쓰림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는 경우(예: 아스피린) 위를 통과시켜 장에서 흡수되게 함으로써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처럼 제형은 약물의 안정성과 환자의 순응도를 동시에 높이는 역할을 한다.

캡슐과 가루약: 성분 보호와 복용 편의성
캡슐은 주로 약물의 냄새나 맛이 강하거나, 성분 자체가 불안정하여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가 필요할 때 사용된다. 캡슐 외피는 보통 젤라틴으로 만들어져 위에서 비교적 빠르게 녹기 때문에, 내용물은 정제보다 빨리 용출되는 경향이 있다. 캡슐은 액체 상태의 약물이나 서로 섞이면 안 되는 여러 성분을 분리하여 담을 때도 유용하다.
가루약(산제)은 위에서 용출 과정이 거의 필요 없어 흡수 속도가 가장 빠르다. 특히 알약을 삼키기 어려운 소아나 노인, 연하 곤란 환자에게 필수적인 제형이다. 다만, 가루약은 정제나 캡슐에 비해 공기나 습기에 노출되기 쉬워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고, 약물 특유의 쓴맛을 감추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제형을 임의로 변경하면 안 되는 이유
제형의 과학적 설계는 복약 지도를 따를 때만 온전히 효과를 발휘한다. 환자들이 약을 먹기 힘들다는 이유로 정제를 쪼개거나, 캡슐을 열어 가루만 복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약효를 심각하게 변질시키고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서방정이나 장용정은 절대 임의로 쪼개거나 부수면 안 된다. 서방정을 쪼개면 약물이 설계된 시간 동안 천천히 방출되지 않고 한 번에 모두 방출돼 혈중 농도가 급상승하여 독성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이는 약물 과다 복용과 동일한 위험을 가져온다.
장용정 역시 코팅이 손상되면 위산에 의해 약 성분이 파괴되거나, 위벽을 자극하여 심각한 속 쓰림이나 위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약국이나 병원에서 ‘분할 가능한 정제’로 명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형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여 복용하는 것이 약효와 안전성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환자 맞춤형 제형 선택의 중요성
의약품 개발자들은 약물 성분의 화학적 특성, 목표 질환, 환자의 연령 및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적의 제형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에게는 복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입안에서 녹는 구강붕해정이나 피부에 붙이는 패치(경피 흡수제) 형태가 선호된다. 이는 경구 투여가 어렵거나, 간 대사를 피하여 전신 순환 효과를 높이기 위함이다.
결론적으로, 알약, 캡슐, 가루약 등 제형의 차이는 복용의 편의를 넘어 약효 발현의 정교한 매커니즘을 담고 있다. 환자들은 자신이 복용하는 약의 제형이 가진 특성을 이해하고, 약사나 의사의 복약 지도를 철저히 따르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현명한 방법이다. 임의로 제형을 변경하는 행위는 약의 과학적 설계를 무시하고 안전성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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