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한 번으로 비만 완치?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를 뛰어넘은 비만 치료제, 글로벌 시장 지형도 구조적 재편 신호탄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지형도가 구조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오랫동안 세계 최고 매출을 지켜온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비만 치료제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 비만 치료제가 단순한 블록버스터를 넘어 글로벌 제약 산업의 패권을 거머쥐는 핵심 열쇠가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현재 비만 치료제의 대표적 한계로 꼽히는 ‘요요 현상’과 ‘근육 감소’를 극복하려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 경쟁이 전례 없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항암제 시대 종식: 51조원 비만 치료제의 압도적 독주
면역 항암제가 주도했던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판도가 비만·대사 질환 치료 패러다임으로 급격히 이동했다는 잠정 집계가 나왔다. 블룸버그 컨센서스에 따르면, 일라이 릴리의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는 지난해 연간 매출 약 358억 달러(약 51조 5000억원)를,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는 약 356억 달러(약 51조 2000억원)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미국 MSD(머크)의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의 작년 잠정 매출 315억 달러(약 45조 3000억원)를 모두 뛰어넘는 기록이다. 이는 블록버스터(연간 매출액 10억 달러 이상 의약품) 중에서도 압도적인 글로벌 매출 1위였던 키트루다가 1, 2위를 모두 비만 치료제에 내주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만 치료제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독주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현재 주사 형태인 GLP-1 계열 치료제는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경구용(먹는 약) 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5일 알약 형태의 ‘먹는 위고비’가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거쳐 출시됐으며, ‘먹는 마운자로’로 불리는 오포글리프론 역시 FDA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투약 편의성이 개선되면서 시장 침투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요요 현상과 근육 감소, 현행 비만 치료제의 두 가지 한계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을 이끌고 있는 GLP-1 계열 약물들은 혁신적이지만 두 가지 뚜렷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요요 현상’이다. 환자가 약물 투여를 중단하면 식욕이 되살아나고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환자들이 평생 약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경제적, 육체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둘째는 ‘근육 감소’다. 체중 감량이 이루어질 때 지방뿐만 아니라 근육까지 함께 빠지면서 건강 악화 및 기초대사량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두 가지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차세대 비만 치료제 개발 경쟁의 핵심 목표가 됐다.

“주사 한 번에 비만 완치” 목표, 유전자 치료제로 패러다임 전환
차세대 비만 치료제의 선두에는 비만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유전자 치료제’가 있다. 미국의 일부 바이오 기업들은 인체가 스스로 비만 조절 호르몬을 생성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는 방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요요 현상 자체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접근이다.
미국 바이오 기업 ‘프랙틸 헬스’가 개발 중인 유전자 치료제 ‘레쥬바(Rejuva)’가 대표적이다. 레쥬바는 인체가 수년간 스스로 GLP-1 호르몬을 생성하도록 설계됐다. 특수 카테터를 이용해 췌장에 약물을 직접 주입하면 인슐린 분비 세포가 지속적으로 GLP-1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고지방식을 먹인 쥐 대상 실험에서 레쥬바 1회 투여만으로 35일 만에 체중이 최대 29%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연구팀은 올해 안으로 인체 임상시험 착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근육량 보존과 내장 지방 표적하는 신개념 치료제 개발 현황
체중 감량 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근육 감소 부작용을 막기 위한 ‘표적 치료’ 연구 역시 활발하다. 미국 ‘웨이브 라이프 사이언스’는 지방 저장을 유도하는 유전자 ‘INHBE’의 활동을 억제하는 주사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 약물은 임상 1상에서 12주 투여 결과 내장 지방은 9% 줄어들고 근육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이례적인 효과를 보였다.
‘애로우헤드 파마슈티컬스’ 또한 같은 INHBE 유전자를 겨냥한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임상 1상 중간 결과, 24주 동안 투여받은 참가자들의 내장 지방이 평균 15.6%까지 줄어들었다. 이처럼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것을 넘어, 건강한 방식으로 지방만 선택적으로 표적하고 근육량을 보존하는 맞춤형 치료법이 차세대 비만 치료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비만 치료제 글로벌 시장 지형도 변화 속 난제와 전망
업계는 한 번 투약으로 수년간 지속적인 효능을 볼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가 차세대 비만 치료의 대안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GLP-1 약물의 높은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가 적지 않은 만큼, 지속적인 비용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가 시장의 수요를 흡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치료제의 접근성을 높여 비만 치료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잠재력을 가진다.
다만, 비만을 해결하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 난도가 매우 높으며,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남아있다. 일각에서는 유전자 치료를 통해 인체 내에서 고농도의 GLP-1이 장기간 생성될 경우, 아직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블록버스터 의약품 패권이 항암제에서 비만 치료제로 넘어간 현 시점에서, 제약사들은 GLP-1 약물의 시장 확대를 지속하는 동시에 유전자 치료제의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게 됐다.

